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처칠은 제 2차 30년전쟁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단절된 두차례의 큰 전쟁이 아니라 유럽의 지정학적 응력에 의해 일어난 패권다툼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경험한 대정치인에 걸맞는 통찰력입니다.
결과가 훨씬 참혹하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2차세계대전이 본격적인 전쟁이고 1차세계대전은 전초전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지진이 1차세계대전이라면 이에 따른 여진이 2차세계대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의 결과가 지금 보고있는 세계질서입니다. 유럽 열강의 몰락과 팍스아메리카나의 탄생과 번영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돌고돈다고 하던가요... 2차세계대전을 유발했던 수많은 불길한 징조가 201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경제-정치관련 수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유발한 내부의 응력과 역학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경제상황과 국제정세는 또다른 커다란 지정학적 충돌을 낳는 것일까요?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1차세계대전 직후 : 1920년대 초중반
모든 주요국가가 전쟁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했던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풀린 막대한 화폐를 보증할만한 금이 있을리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열강은 만성적인 화폐부족사태(디플레이션)가 일어납니다. 각국은 정상적인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위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대응했지만 전쟁중에 풀린 돈과 전후복구에 필요한 화폐수요를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습니다.
게다가 각국은 전쟁이전의 통화가치(금과의 교환비율)대로 복귀한 것이 아닙니다. 각국 사정에 맞춰 제멋대로 통화가치를 정한 상태로 복귀합니다. 영국은 이전의 통화가치로 복귀했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통화가치를 하락시킨 비율로 금본위제에 복귀합니다.
결과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같이 통화가치를 하락시킨 나라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 효과를 얻는 반면 영국처럼 전쟁 전의 통화가치로 금본위제에 복귀한 나라는 지속적인 금유출과 국제수지적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균형은 각국 무역을 위축시키고 보호무역을 유발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실패는 주요국가의 만성적인 정치불안을 유발합니다.
미국은 특수한 경우였습니다. 1차세계대전동안 급격히 늘어난 금보유량과 광대한 영토와 자원에 대한 개발수요..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같이 경기를 팽창시킬 동력이 충분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넘어서는 공급과잉이 경기과열을 일으킵니다. 그 거품이 꺼진것이 1929년 미국발 경제위기입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2차세계대전 직전까지
미국발 경제위기는 가뜩이나 취약한 당시 세계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그나마 유지되던 자유무역이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이런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모든 주요국가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합니다.
- 금본위제를 다시 포기하고 자국 화폐가치를 절하는 환율전쟁을 시작함
- 보호무역을 강화함
- 배타적 경제블록을 형성함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킵니다. 수입품에 평균적으로 4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는 법입니다. 1933년에 금본위제를 다시 포기하고 대대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시작합니다. 보호무역정책을 쓰면서 막대한 자국내 역량을 바탕으로 경제를 재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이탈하고 오타와에서 영연방국가들간의 배타적인 관세협정을 맺습니다. 영연방국가를 묶어 배타적인 경제블록을 만든것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외환통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금의 유출을 막았지만 영국처럼 블록화할 식민지도 없고 미국처럼 막대한 내부수요도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처럼 확장적으로 돈을 푸는 정책을 머뭇거립니다. 결국 이 때문에 극심한 사회혼란을 유발합니다. 그 혼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 아실겁니다. 극단적으로 권위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정치체제가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재빠르게 금본위제를 이탈하고 매우 공격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의 평가절하를 실시하여 가장 먼저 경제위기를 모면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으킨 엔저와 공격적인 수출정책은 구미열강들과 극심한 갈등을 유발합니다.
각국의 경제블록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대만-만주국을 묶어 경제블록화를 시도하지만 이런 경제블록은 원자재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가공판매하는 일본의 경제모델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번영을 이끌었던 영미권과의 협력(영일동맹과 테프트-가츠라협약으로 대표되는..)이 약화되고 힘으로라도 원자재공급지를 확보하고 경제블록을 형성할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집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바와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 1차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로 복귀하여 균형재정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경기침체를 유발
- 미국발 경제위기가 극단적인 디플레이션과 경제위기를 유발
- 각국이 각자도생하는 과정에서 보호무역과 통화전쟁이 일어남
- 보호무역과 통화전쟁에서 불리한 국가들에서 국수주의적 정치체제가 나타남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이 해결하지 못한 지정학적 문제에 의해 유발되었을 뿐 아니라 1차세계대전이 유발한 경제적인 문제에 의해서도 유발되었습니다.
경기침체에 미국발 경제위기가 본격적인 세계경제위기를 유발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극단적인 환율전쟁과 재정정책이 시행되며...... 그래도 해결이 안되자 보호무역과 정치불안이 일어나는 과정이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과도 비슷할까요? 비슷한 경제상황과 비슷한 각국의 대응...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전자"까지 있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1930년대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도전자였다면 지금은 중국, 북한, 이란이 도전자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중국과 북한의 코앞에 있는 나라입니다. 이전의 충돌이 한반도를 교묘하게 피해갔다면 이번 충돌은 한반도를 피해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만약 충돌이 일어난다면 말입니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충돌(경제-외교전쟁으로 끝나던 열전으로 번지던..)에서 우리가 살아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음 글에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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