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미-이란 무력충돌.... 그리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결말






미국과 이란의 최근 무력충돌을 봤을 때, 저는 미국이 이란을 신속하게 제압하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상정해 한반도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이 모든 힘을 동원해 이란을 신속하게 제압하면 미국과 서방에 도전하는 기축국가들이 심대한 타격을 받고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할 것이지만 만약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란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수렁에 빠지고 각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약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한가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군사기지가 이란의 공격받은 상황에서 미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란에게 평화와 번영을 호소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방금 전에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입니다.

트럼프의 발표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기쁜 소식이다. 미국인의 인명피해가 전혀 없다.
  2. 솔레이마니는 정말 나쁜놈이다. 죽어도 싸다.
  3. 지금 이란문제는 전임 오바마 대통령 때문이다.
  4. 이제부터 이란에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할것이다.
  5. 나토랑 유럽이 중동문제를 알아서 해라. 미국은 석유가 많이나서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6. 이제 이란 너네도 이제 나쁜짓 하지 마라.






다른 의미로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미래에 오늘을 미국의 패권이 기울기 시작한 날로 기록할 것입니다. 미국이 중동의 강소국에게 굴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군사적 공격을 받았음에도 반격하지 않은것도 모자라 동맹국가에게 지역안정의 역할을 떠넘기고 공격자에게 "평화와 번영"을 호소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트럼프가 한 연설은 미국의 건국 이후에 가장 멍청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미국이 이렇게 한다고 이란이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상대로 진행중인 대리전을 그만둘리 없습니다. 이란은 중동에서 최초로 미국을 굴복시킨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미국이 무력사용을 포기한 시점에서 기세가 오른 이란은 지금까지 하던 모든 수단을 계속 쓸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기는 커녕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중동의 일은 유럽이 알아서 하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습니다. 이제 중동에서 미국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중동 각지에서 미국에 대한 비정규전과 대리전이 횡횡할 것입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고립되고 사우디같은 친미국가들도 미국에 점점 거리를 둘것입니다. 이 자리를 러시아나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수니-시아파 갈등부터 국가간의 갈등, 부족간의 갈등까지 중동은 답이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겁니다. 물론 트럼프식 논리라면 미국은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동의 석유는 필요 없으니까요.

하지만 트럼프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이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는데에 중동의 석유는 필요없을지 몰라도 동맹의 지지와 적들의 두려움은 필요하다는 것 말입니다. 동맹의 지지는 앞으로 서서히 잃을 것이고 적들의 두려움은 오늘 확실히 잃었습니다.





이제 오늘 일이 한반도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란이 자국의 기지를 미사일 수십발로 공격해도 보복하지 못하는 미국이 수소폭탄을 가진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ICBM을 시험한다고 무슨 보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은 이제 미국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중국도 이제 미국의 경제적 역량은 무서워할지 몰라도 군사력은 무서워하지 않을겁니다. 대만이나 남사군도 어딘가에서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이 있다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지 않을겁니다.

이런 식이라면 동북아와 동남아의 질서는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입니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 여우가 설치는 법입니다. 고만고만한 나라들끼리 서로 투쟁하는 세상은 한국같은 나라에게 더욱 고단한 곳이 될겁니다.




이제 오늘 일이 미국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중동문제를 유럽에 맞기고 도망가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면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국의 군사기지가 미사일공격을 받아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논리로 북핵문제도 대륙간 탄도탄만 적당히 해결한 다음에 핵문제는 중국과 일본, 한국에 넘기고 대서양과 태평양사이의 안락한 대륙으로 도망가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미국은 귀찮은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도 힘만 적당히 유지하고 있으면 적과 동맹이 자신을 존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일은 역사에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동의 거문도까지 스토커처럼 쫒아다니며 러시아를 봉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대영제국은 없었습니다. 힘의 균형이 깨졌다는 이유만으로 유럽대륙에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대영제국은 없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이해관계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때로는 위신을 위해 비합리적인 전쟁을 무릅쓰지 않고는 패권국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트럼프가 가는 길, 그리고 아마도 상당수의 미국인이 바라는 길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는 패권국이 아니라 그냥 캐나다의 업그레이드버전이 되는 길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누구도 캐나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가 지역 안보와 이해관계를 미국이 아니라 지역 강대국에 의지할 겁니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함대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활보하고, 수많은 나라가 ICBM기술과 핵무기로 무장할 겁니다.

앞으로 달러는 기축통화가 아니라 엔화나 스위스 프랑같은 안전자산 정도로 치부될 겁니다.

그때서야 미국인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닳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면 정말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잃은 것을 되찾을 용기조차 잊어버렸을 때 미국과 서구문명의 몰락 뿐 아니라 문명이라는 것 자체의 쇠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트럼프의 발표를 보면서 내 노후를 비롯해 앞으로 수십년동안 세계가 평온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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