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탁월한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이다. 미제스는 시장은 자원과 재화를 가장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가장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장에 개입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정도에 따라 비효율을 만들거나 완전히 실패할 뿐이며, 그런 모든 시도는 개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을 권력자와 소수의 선택으로 대체하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제스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비판적일 것이라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하다. 이 책의 내용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비판하려고 쓴 게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는 간섭주의(interventionism)를 비판하려고 쓴 글이다. 한마디로 양극단 사이에 중도의 길이 있다는 교리에 대한 비판이다.
현재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국가라도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최저임금제, 누진적 세금, 특정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국가의 독점, 특정 상품 가격의 고정, 이 모든 것이 시장에 개입하여 어떤 공공의 목적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제스는 이런 시도가 포괄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정부가 인기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화두가 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이 있었다.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진작되면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이다. 미제스는 이런 논리를 50년 전에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임금을 시장가격 이상으로 고정하면 실업이 일어날 뿐이다. 특히 노조 같은 집단의 보호 영역 밖에 있는 약자부터 도태되기 시작한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만약 국가가 돈을 찍어 노동자의 지갑에 직접 나눠준다고 하자. 코로나 사태 때문에 미국에서 시행 중인 조치이다. 이는 급격한 물가상승을 유발할 뿐이고 실질적인 구매력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끝난다.
화폐를 찍어내지도 않고, 최저임금제도로 임금의 하한선을 고정하지도 않고, 그냥 기업에서 세금을 걷어 노동자의 지갑에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 아랫돌을 빼서 윗돌에 얹은 것이다. 정확하게는 아랫돌 10개를 빼서 7개 정도만 윗돌에 올린 것이다. 정부 관료제의 비효율성을 통과한 후 나오는 부는 처음 거둬들였을 때보다 줄어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줄여 일자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가격통제는 어떤가? 예를 들어 물가 안정을 위해 라면을 100원 이상에 팔지 못하도록 하면 어떤가. 원가를 100원 이하로 만든 저질 라면만 시장에 공급된다. 원가가 100원이 넘는 모든 라면을 시장에서 강제로 내쫓은 것이고 라면시장 선택의 폭과 공급이 동시에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다.
라면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의료시장을 보자. 한국의 모든 의료서비스에서 보험 항목의 적자를 보충할 비보험 항목과 부대 사업을 없애고 지금처럼 의료서비스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라고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의사는 은퇴하거나 최대한 일을 줄일 것이다. 병원은 문을 닫을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공산권과 전체주의 국가에서 예전과 지금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만약 보험 의료항목의 적자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의료서비스를 구성하는 비용을 모조리 통제해야 한다. 의료인의 인건비와 의료장비와 약품의 가격까지 모두 국가가 지정하고 통제해야 한다. 결국, 모든 의료분야는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 이렇듯 한 분야의 가격통제는 자기 강화적으로 확대되어 최종적으로 전체주의적 통제경제체제를 만든다.
화폐를 풀어 경제를 진작시킨다는 케인스학파의 주장은 어떤가? 이들은 화폐 부족이 '인위적인' 현상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부족한 상태인 화폐를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면 '유효수요'가 만들어져 경제가 성장한다고 한다. 어떤 견지에서 봐도 "화폐"는 인위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다. 실제 재화와 용역이 희귀한 것이다.
극장표를 많이 찍는다고 해서 극장 좌석이 늘어나지 않는다. 극장 좌석은 재화와 용역을 통해 극장을 세우거나 확장할 때만 늘어난다. 케인스학파는 원인과 결과를 바꿔서 생각한다. 화폐를 인위적으로 공급할 때 생기는 현상은 명확하다. 시장에 유용 가능한 화폐가 늘어났다는 착각을 일으켜 불필요하거나 무모한 투자가 늘어나고 퇴출당하여야 할 기업이 존속한다. 최종적으로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여 실질 소득이 예전으로 회귀하는 동안만 경제가 좋아질 뿐이고 이후에 급격한 불황이 찾아온다.
이런 이론은 실증적인 어떤 검증으로 증명된 바도 없고 증명을 시도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케인스학파가 정부와 학계에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유는 이전부터 정부가 해오던 인기영합적 인플레이션 정책을 추후에 합리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케인스 이론은 1930년도의 MMT 이론이다.
미제스는 직접적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는 어차피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제스가 말하는 것은 자유로운 정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입주의적 경향이다.
미제스가 보기에 이는 천천히 진행되는 전체주의화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우선 지식인 사이에서 간섭적인 모든 경제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고 자유로운 정부를 파괴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자명한 사실, 실질 소득이 늘어나려면 생산성이 향상해야 한다는 것, 모든 간섭은 결국 상품가격의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 등으로 모든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이 책은 40년도 더 된 미제스의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정부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반박을 40년 전에 강의록에서 들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직도 정부는 인기영합적인 시장개입정책을 남발하고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정부 실패를 시장실패로 몰아세운다. 그 강도는 한국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제스의 말대로라면 이 끝에는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만 있을 뿐이다. 경제적 자유 없이 정치적 자유도 없으니 여러분의 자유도 자식 때쯤은 사라지거나 극히 위축될 것이다.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뭔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금 이 시기에 미제스의 말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요약
1. 자유를 위한 계획: 사회주의로 가는 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두 제도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없애겠다는 논리로 간섭주의(interventionism)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은 몰수적 조세제도를 통해 이윤을 제한하고, 경기를 조절한다는 이유로 금융완화정책과 신용팽창을 일으키고, 노동자를 보호한다며 최저 임금제도를 실시한다. 그들은 방만한 정부 지출을 옹호한다. 그러나 불황은 신용팽창의 여파이고, 대량 실업은 시장가격 이상으로 임금을 확정하려는 모든 시도가 유발한 것이다. 이윤에 의한 경제 운영을 간섭하는 인위적 조치는 많은 부작용을 유발할 뿐이다. 이윤이 없다면 기업가들은 소비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추측한다고 해도 그에 따라 공장을 조정하고 확장할 수단이 없게 된다.p.29
사회주의자들의 계획은 완전히 틀린 것이고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간섭주의를 내세우며 선택의 자유를 보존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중간 타협점은 없다.
2. 중도주의의 끝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은 이득의 분배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어느 것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가장 잘 공급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다.p.35 간섭주의는 몇 가지 계획을 통해 사회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유 가격의 상한을 정해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에게 우유를 공급하려고 시도한다고 가정하자. 우유를 생산가격 이하로 고정하면 낙농업자는 우유 생산을 포기하거나 다른 대체품(치즈, 버터)을 생산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우유 공급은 더 부족해져 가격은 더 오른다. 만약 우유의 생산가격을 낮춰 가격 상한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하려면 우유의 생산에 필요한 다른 자원(예를 들면 사료, 소의 가격)의 가격도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가격 통제 범위는 자기 강화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실수를 역사에서 여러번 반복적으로 볼 수 있다.
이자율을 낮춰 신용을 확대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경제호황을 만들어내지만 추후에 가차 없는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몰수적인 조세제도와 외환 통제 또한 기대한 효과를 만들어 내기보다 훨씬 큰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간섭주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모시키는 방법이다.p.41
3. 불간섭주의인가, 독재인가
간섭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자유라는 이름을 독점하고 진정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을 보수주의자, 고전주의자, 혹은 더 모욕적인 이름으로 낙인찍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 없이도 정치적 자유가 보존될 수 있고 그 역도 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의 필연적 결과이다. 만약 개인이 시장에서 자유로이 사고팔 수 없다면 헌법에 뭐라고 적혀 있건, 그들은 전능한 정부의 선한 은총에 종속되는 실질적인 노예로 변한다.p.49
간섭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시장의 '자동적'인 힘을 자신들의 '의식적' 계획과 대비시켜 자신의 우월함을 강조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동주의인가 의식적 행동인가가 아니고, 각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 대 정부의 전제적인 행동이다.p.54
이런 자들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기능의 탁월함에 대한 이 모든 열렬한 찬양은 간섭주의자 개인 자신의 신격화에 대한 어설픈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p.54 이들은 관료제를 자신의 숙주, 혹은 초기 개종자로 삼는데, 영국 페이비언협회와 독일 사회정치연합이 그랬다. 관료로서 정부의 권한과 관료의 증가가 바로 선이기 때문에다.
불간섭주의의 의미는 시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독재자에게 굴복하도록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4. 돌을 빵으로 만든다는 케인스학파, 5. 케인스와 세이의 법칙
케인스학파는 이자율이란 '지불수단'의 인위적인 희소성으로 인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본다. p.59 지불수단, 즉 돈은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된 것이므로 돈의 희소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자율도 인위적이라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화폐를 인위적으로 희소하지 않게 추가로 공급하면 케인스 본인에 말대로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팽창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조달된 자금으로 공공지출을 하면 '유효수요'가 증가하여 실업이 줄어들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 이론은 학문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전혀 신빙성 없는 것으로 케인지언들은 자신에 대한 반박을 무시하거나, 일반화하거나, 동문서답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케인지언들은 또한 자신들이 세이의 시장법칙(Say's Law of Markets)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불황이 전반적인 상품의 과잉생산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을 기각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상품은 화폐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품으로 지급되는 걸 증명했다. 따라서 절대적인 과잉생산이란 있을 수 없으며 상품 상호 간의 상대적인 생산의 부조화가 있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과잉생산을 한 생산자는 손해를 보고 과소생산을 한 사람은 이익을 본다. 상호 이익과 손해는 상계됨으로 과잉생산 때문에 불황이 온다는 것은 미신이다.
세이의 시장 법칙을 존중하는 경제학에 따르면 불황은 통화공급의 부족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신용팽창을 통해 그들이 단정하는 통화 부족을 제거하려는 시도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였다. p.74
케인스의 이론, 즉 신경제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정치권에서 시행되고 있던 무책임한 재정, 통화정책을 합리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그의 책이 그렇게 빨리 성공한 이유이다. 정부와 집권당은 이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 없이 무책임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6. 인플레이션과 가격통제
위의 우유 가격통제의 예와 같이, 가격통제는 자기 강화적으로 확대된다. 그런데도 이런 시도가 반복되는 이유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왜곡된 이유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의 증가하는 것이나 현재는 상품가격과 임금이 상승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결국 화폐가 흔해져서 상품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라는 본질을 왜곡하여 통화량의 증가와 상품가격의 상승을 분리하여 대응하려는 시도를 정당화하게 된다. 결국 정부는 적자재정을 지속하고 돈을 풀면서 상품가격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7. 연금문제의 경제적 측면
연금은 자유 노동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의 부작용을 제거하겠다는 시도의 일종이다. 이 제도는 현재의 화폐로 노동자와 고용주에게 징수하여 미래에 화폐로 지불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시도는 끊임없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납입 총액과 같은 상품 가치로 연금을 수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이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전체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임금소득자의 자유를 제한한다.
연금은 특이한 성격을 갖는 감춰진 임금 인상으로 시장가격 이상으로 임금을 고정할 때 발생하는 모든 부작용을 일으킨다.
8. 진보주의 철학에 대해 말하다.
마르크스 이론은 초반과 후반, 양립할 수 없는 교리를 내놓았다. 초반(1848년 공산당 선언)에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완성하고 부르주아로부터 모든 생산수단과 자본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반(1872년 개정)에는 자본주의가 고도화하여 스스로 붕괴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늘 한쪽에는 공산주의자, 다른 한쪽에는 사회주의자, 뉴딜 정책입안자, 그리고 케인지안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목은 이 두 분파 모두의 공통목적, 즉 총체적인 중앙계획과 시장경제의 완전 제거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강구하는 수단에 대한 논쟁이다. 그것이 마르크스 가르침을 옳게 참조하고 있는 두 분파 간의 불화다.p.10
이들은 공정하고 신뢰에 기반한 화폐 정책을 '구식, 반동적, 전통적, 빅토리아 시대'라고 폄훼한다.
9. 이윤과 손실
불균형을 제거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 기능이다. 기업가의 활동은 어떤 수단과 방법이 시장의 요구를 맞출 수 있을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구매와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매일 반복되는 국민투표로 기업가들을 선출한다.p.115 이윤이 많다고 기업가를 비난하는 것은 시장의 불균형을 제거하고 소비자를 만족시켰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가 A와 B 중, A는 생산비용을 B의 절반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이윤이 높다면 이를 비난해야 하는가? 제품을 생산할 때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며 만들지 않았다고 비난해야 하는가?
이렇듯 이윤이 과도하다고 낙인찍고 효율적인 기업가에게 차별적인 세금을 부과하여 처벌함으로써 사람들은 스스로 해를 가한다.p.121
현 사회는 다양한 가격통제 수단을 통해 잠재적 이윤의 일부를 몰수하거나, 임금 결정의 지불능력을 저해하는 노동조합을 지지하거나, 다양한 세금을 통해 초과이윤을 몰수하려 한다. 이런 행동의 결과는 경제적 피폐와 대혼란뿐이다. 기업의 이윤과 손실이 없는 비사회주의 제도와 같은 것은 결코 없다. 자본주의 제도에서 이윤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파괴적일 뿐이다. p.145
이윤 동기를 비난하는 많은 속물들은 자기 자신을 의료X선을 개발한 선구자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수녀들과 비교하는 자기기만을 저지른다.p.141 그 자신이 물질적인 행복에 관심이 없다는 듯, 인간의 물질적 여건을 개선하는 기업가들의 이윤 동기를 탐욕적이라고 비난한다..
미국 노동자가 유럽보다 월등한 임금을 받는 것은 그들이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견고한 개인주의'를 지켜온 덕분이다.
10. 임금, 실업, 인플레이션
자본주의하에서, 임금은 결국 소비자가 지불한다. 구매자들은 노동자가 치른 노력과 수고, 일하는 데에 쏟은 시간의 길이에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상품에 값을 치르는 것이다.p.148
임금이 시장이 지불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높이도록 강요하는 모든 제도는 잠재 노동력의 실업을 유발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편법으로 신용팽창이 남용된다. 신용팽창은 생산 확대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증가했다는 환상을 만든다. 따라서 무모하거나 비효율적인 계획이 실행되고, 이에 따라 인위적인 붐이 만들어진다. 이런 붐이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기 전까지는 임금소득자의 실질 임금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이때 일시적으로 실업 문제가 개선되나 이는 임금 인상이 지속하며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신용팽창 압력을 일으키고 거품이 꺼질 때 큰 피해를 유발한다..
또한, 임금 인상을 통해 구매력을 올려서 경기를 북돋울 수 있다는 주장(소득주도성장)은 의사(疑似) 인플레이션주의다. 강제적인 임금상승이 실업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식의 소비증가는 필연적으로 전반적인 물가상승, 똑같은 내용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화폐단위의 구매력을 떨어뜨린다.p.153 이 유사인플레이션은 임금 인상의 결과가 아니라 임금 인상을 위해 사용하는 통화팽창의 결과이다. 이런 논의를 주장하고 강화하는 노조는 이 정책의 부정적 결과에 책임이 있다. 서구의 경제와 생활 수준의 극적인 향상은 자본축적의 결과이다. 자본감소를 겨냥하는 모든 정책은 반노동적이고 반사회적이다.
11. 경제학의 현주소, 12. 추세는 변할 수 있다, 13. 자유주의의 미래
요즘 학계에 분별없는 자칭 '진보적' 주장이 남발되고 있다. 특히 경제학 분야는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자신의 도덕성과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인듯한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유능한 인재가 경제학 분야를 멀리하고 법이나 사업으로 진출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또한, 관변학자들은 정부의 전체주의적 정책만을 계획으로, 시장의 결정을 무계획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런 추세는 바뀔 수 있다. 인간의 노예 상태를 부르는 이런 추세는 강한 저항에만 저지되거나 바뀔 수 있다. 이 물결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인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대중은 뒤를 따를 것이다.
또, 일반 대중의 지적 능력을 얕잡아볼 필요도 없다. 실질 임금을 올리는 유일한 수단은 1인당 자본투자량을 늘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노동자에게 이해시키는 것, 시장을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올릴 뿐이라는 것을 소비자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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