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금족쇄; 금본위제와 대공황, 1919~1939, 전간기 금본위제는 족쇄였나.

 



 

이 책은 전간기(1919~1939) 경제적 혼란의 원인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간기 경제적 혼란의 원인에 대한 다른 주장, 즉 킨들버거의 헤게모니 안정론과 미국의 경제 위기에 중점을 둔 내재적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 아이켄그린은 전간기 경제적 혼란은 전전기(1919년 이전) 금본위제의 안정을 유지했던 전제조건, 즉 금본위제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국제적 협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사람들은 화폐를 약속한 금의 무게로 교환해 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신뢰했으며, 각국 중앙은행은 다른 나라의 금본위제가 위협받을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이런 체제에서 인류는 물가는 떨어지면서도 경제는 급성장하며, 혁신적인 기술과 상품이 연달아 출현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정부의 금 태환에 대한 신뢰와 국제적 협력은 1차 세계대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약화하였고, 결국 전쟁 기간에 결정적으로 파괴되었다. 전쟁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주요국의 금 태환을 정지시켰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시적이고, 전후 금 태환에 복귀할 것이라는 게 화폐 사용자들의 믿음이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나라는 금본위제에 순차적으로 복귀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저자가 주장하는 전간기 금본위제가 실패한 원인은 위에 말했듯, 신뢰와 협조의 약화이다. 왜 신뢰와 협조가 약화 되었는가? 전쟁을 겪으며 국내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노동자와 이권단체의 힘은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본위제의 근간인 균형재정의 유지는 점점 쉽지 않게 되었다. 균형재정을 위해서는 정부가 실업수당 같은 복지 수당, 연금 같은 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미국은 순 채권국이 되었고 주요국은 최종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되었다. 패전국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전쟁채권과 전쟁배상금은 전간기 말까지 통화와 경제정책을 조율할 국제적 노력을 반복적으로 좌절시켰다.


경제를 보는 사고의 틀과 상황도 나라마다 상이했다. 영국은 전전의 평가대로 금본위제에 복귀하는 것이 스털링과 영연방의 영향력을 되찾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금본위제 복귀를 서둘렀다. 프랑스는 금본위제 복귀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누가 내야 하느냐를 두고 파괴적인 정쟁을 겪다 한참 후에 전전 평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치로 금본위제에 복귀한다. 금본위제 복귀 시기와 방법이 제각각이었고, 금 평가를 지키기 위한 국제간의 협조에는 항상 전쟁 채무와 배상금 문제가 엮였다. 따라서 화폐 사용자는 금 평가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줄이기 시작했고, 경기가 위축되고 금융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대량예금인출과 화폐 도피가 일어나 위기는 증폭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본위제는 전전의 안정된 환율과 번영의 상징이 아니라 족쇄처럼 작용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금본위제하에서는 경기가 위축된다고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푸는 것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은행의 증거금이 유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간기에는 금본위제 이탈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급격한 금 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화폐의 금 평가를 위협할만한 팽창정책을 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7년부터 경기가 위축되었고, 미국은 경기가 안 좋음에도 주식시장의 거품을 우려하여 금리를 인상하였다. 이는 미국의 해외 대부(국내 이자가 높으므로 외국 채권이나 자산에 투자할 필요가 줄어듦으로) 감소를 일으키고 경기가 취약한 남미 국가부터 디폴트를 일으켰다. 이런 위기는 오스트리아로 옮겨붙었다. 이때만 해도 전전의 중앙은행 간 협조를 통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으나 프랑스는 이 문제를 독일을 견제하여 정치적 조건을 달았고, 미국은 자신의 크기에 맞는 임무를 수행할 의지가 부족했다. 결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순으로 경제 위기와 금 평가의 이탈이 일어났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해 금본위제는 다시 정지되었다.


지금 보면 경기가 안 좋을 때, 적자재정을 짜고 신용팽창을 통해 화폐를 공급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적자재정과 신용팽창은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의 악몽을 연상하게 하는 길이었다. 금 평가에 기반한 안정적인 통화는 전간기 약화된 정부를 갖고 있던 여러 나라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불러일으킨 인플레이션의 공포는 당시 국민과 정치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이 때문에 금본위제 이탈 이후에도 여러 나라가 확장적 재정, 통화 정책을 쓰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스웨덴과 일본처럼 금본위제 이탈을 확장적 정책의 기회로 삼았던 나라들부터 경기는 좋아졌다. 금본위제를 끝까지 고수했던 나라들이 가장 피해를 봤다. 당연한 일이다. 화폐 가치 하락은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일시적인 국내 경기 부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국의 화폐 가치를 낮추는 통화 정책을 근린궁핍화정책이라 부른다.

 

저자가 보는 전후의 화폐 정책은 어떤가. ‘황금 족쇄를 벗어 버렸으니 자유롭고 합리적인 세상이 왔는가? 저자는 현재의 통화 정책이 전간기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패권국 미국에 맞춰 디자인된 국제통화제도는 국제적 협력을 촉진할 명문화된 원칙도 세우지 않았고, 주요국의 막대한 신용에 의해 유지되어 트리핀의 딜레마를 유발하는 왜곡된 상황도 해결되지 못했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압도적 패권국이 강요한 국제통화제도는 패권국의 자기 이익을 반영하고, 그래서 패권국의 상대적 경제력이 기울기 시작하자마자 적절성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p638

 


어떤 제도를 족쇄라 부를 때는 그 제도가 완전히 불합리한데도 새롭고 합리적인 방법을 막고 있어야 한다. 아이켄그린이 책의 주제로 강조했던 전간기 금본위제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깨버린 사회의 변화는 균형재정을 유지할 수 없는 비대해진 정부, 전쟁과 살육으로 치달은 정치 갈등,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 채무와 배상금, 약화된 정부를 잡고 흔드는 이익단체의 등장 같은 것이다. 모두 국가의 실패이지 화폐제도의 실패가 아니다. 정부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고, 유권자를 포섭하기 위해 균형재정을 포기하려 할 때, 화폐를 평가절하해 근린 궁핍화 정책을 쓸 때, 당연히 금본위제와는 양립할 수 없었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는 족쇄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전간기 혼란의 원인은 당연히 금본위제가 아니다. 각국의 파괴적인 정책이었다. 전간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금본위제를 재빨리 벗어버렸어야 한다는 아이켄그린의 주장은 사후편향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금본위제를 일찍 이탈해 이익을 얻는 나라도 그 이익을 오래갈 수 없었다. 국가의 역할을 과도하게 확장하여 금본위제라는 약속을 시행할 수 없었던 모든 나라는 결국 모든 나라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궁극적 비용을 치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한 최선의 제목은 '황금 목줄'이다. 금본위제는 인간에게 씌여진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탐욕적 확장을 제한하는 목줄이었다. 이 목줄이 풀렸을 때, 두 번의 파괴적인 전쟁과 경제위기, 그리고 만성적인 화폐가치 절하가 일어났다.


금본위제를 이탈하여 각국이 마음껏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쓰는 세상을 사는 지금 족쇄를 벗어난 지금의 통화 정책은 더욱 합리적으로 되었는가? 저자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우리는 또다시 각국의 통화전쟁과 정치적 분열, 만성적인 통화의 평가 절하가 횡횡하는 전간기 말기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아예 화폐 가치가 유지되지 않는 게 상식이 되었고, 국제통화제도를 둘러싼 국제적 원칙과 합의도 없다. 이런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화폐제도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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