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쟁의 역설 ;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 리바이어던 그리고 평화

 



위 책의 주장은 간단하다. 두 줄로 요약할 수 있다.

강력하지만 관용적인 패권국가는 평화와 번영의 필수요소이다. 이런 국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전쟁은 필수불가결하다.



위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이어간다.

원시 상태나 수렵-채집상태의 인간사회는 루소가 말한 것처럼 평화롭고 자족적이지 않다. 오히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초기사회를 이상화하는 "고상한 야만인"에 대한 환상은 현재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시사회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며 산업화한 현대사회가 모든 악덕의 원흉이라는 주장은 지금까지 모든 관찰 결과에 반하는 환상이지만 서구 문명의 주요 가치를 공격하며 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마거릿 미드 같은 여성 인류학자는 사모아섬의 청소년기가 마치 자연에서 평화롭게 인간 본성에 맞게 성장하는 이상적인 곳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후 많은 인류학적 관찰의 결론은 이런 주장을 반박한다.

사모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수렵-채집 사회에서 부족 간, 혹은 부족 내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20%에 육박하며 습격과 보복, 부족간 적대감이 만연하다. 수렵-채집 사회는 이상적이고 자족적이 아니라 영역을 두고 다투는 늑대 무리와 유사하다. 이런 사실을 초기에 밝힌 사람은 거의 광신적인 따돌림과 비인간적 조롱을 받았다. 많은 증거가 축적된 지금도 이런 "고상한 야만인"에 관한 미신은 대중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홉스가 말한 것이 정답인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피하려고 원시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절대자(리바이어던)에게 양도하는 이성적인 판단을 했는가? 이 또한 비약이 심하고 증거가 없다. 주장 자체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적은 위 홉스의 미진하고 비약적인 가설보다 더 그럴듯한 가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줄여서 거대한 국가를 만들어 낸 것이 "이성적인 인간 사이의 자발적 합의"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부족 단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비생산적이다. 서로를 습격하고, 자원을 빼앗는 게 공격자에게 장기적인 이득이 될 리 없다. 상대방을 약화한다고 내가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복을 막기 위해 낭비해야 할 자원만 늘어날 뿐이다. 이런 사회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도적(bandits)이지만 일시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유랑하는 도적(rogue bandits)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 어느 시점에 단순한 습격과 학살 이외에 장기적인 지배를 추구하는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이 등장했다. 이 도적들은 습격과 약탈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배와 지대를 추구한다. 이런 집단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풍족한 생산성을 가진 근동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으며 자기들끼리의 경쟁과 유랑형 도적(rogue bandits)인 유목집단과의 경쟁을 통해 강화되었다. 정주형 도적의 힘은 영향력 아래의 인간들을 일회적으로 강탈해서 얻는 게 아니다. 피지배자의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영구적인 착취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주형 도적은 피지배자와 최소한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훨씬 직관적이고 현실과 부합하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은 맨슈어 올슨 교수이고 한국에서는 적절하게 깡패국가론으로 알려져 있다.

정주형 도적은 이른바 "생산적인 전쟁"을 통해 규모와 영향력을 넓힌다. 일단 영토에 기반한 국가구조가 형성되면 주변 지역을 정복하여 더 크고 강력하며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형성한다. 이른바 리바이어던의 탄생이다.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주장과 달리 "이성적인 인간의 합의"가 아니라 피를 튀기는 유혈사태로 탄생한 것이다.

부침을 거듭하던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들은 16세기 유럽에서 경제적, 군사-기술적으로 중대한 임계점을 넘었다. 이 변화의 폭발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이전의 정주형 도적이 만든 영향력을 넘어서는 전 세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것이 지금 현대사회이다. 

즉, 현재 국가는 피지배자와 공생적 착취관계를 발전시킨 정주형 도적들이 전쟁을 통해 통폐합된 결과이다. 여기서 불편하지만 타당한 진실이 도출된다. 초기 좁은 영역에서 비생산적인 전쟁을 반복하는 수렵-채집 사회보다, 생산적인 전쟁을 통해 탄생한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훨씬 안전하고 부유해진다. 인간의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모든 혁신은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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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상태보다는 부패한 정부가 더 낫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한 아이티, 부족으로 갈기갈기 찢긴 아프가니스탄, 마약상이 경찰을 사냥하고 다니는 멕시코 북부보다는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인간은 더 안전하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물론 작동하는 정부가 있다는 것만으로 부와 복지의 향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기에 관용적이고 공정한 체제가 꽃피워야 한다. 그러나 무정부상태에서는 아예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관용적이고 공정한 체제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다. 탄생과정의 유혈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리바이어던 아래서 인간은 더 평화롭고 부유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딱히 반박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산만하고,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자주 논점을 이탈하며,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근거도 종종 발견된다.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결국 현존하는 초거대 리바이어던인 미국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될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결론도 없다. 이 책이 쓰여진 2014년에는 이미 미국의 패권에 균열이 생기고있던 시점이다. 러시아는 위협적으로 조지아를 침공했고, 중국은 위협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유일한 리바이어던인 미국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피해야 할지 조언하지 않는다면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무슨 소용인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패권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는 시점에서 어떤 통찰력을 구하기 위해 펼친 책이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전 세계를 망라할 새로운 리바이어던을 낳는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 진통의 끝에 나타날 괴물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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