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비평) 다가올 경기 침체와 한국의 경제, 그리고 암호화폐-2편

 

이전 글을 요약하자면, 앞으로 6개월 안에 금융 시스템과 화폐제도 자체에 변화를 일으킬 큰 경제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경제 위기의 형성과 종식은 찰스 P. 킨들버거에 따르면 다음의 단계를 밟는다. 

투자 성공이나 경제적 성과를 높일  변위 요인(displacement)이 발생-->기회를 포착한 자본과 신용의 팽창-->사회 전반에 풍요감(euphoria)이 형성-->광기에 가까운 투자열이 나타남-->위기를 촉발시킬 우연한 사건의 발생-->패닉과 경제침체의 시작

곧 나타날 자산 가격 폭락과 경기 침체도 킨들버거가 말하는 경제위기의 전형적인 패턴과 본질적으로 비슷할까?


아니다. 이번 위기는 화폐제도와 금융시스템 자체에 본질적인 위기를 일으킬 것이라 나는 예상한다. 이번 위기는 1970년 이후 나타난 어떤 상황과도 다르다. 이전 위기는 민간 영역인 시장에서 신용의 팽창과 수축이 통제되지 않고 거품이 형성되고 터지면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잘못은 거품을 일으키는 신용의 팽창을 억제하지 못했고 경색 국면에서 적절한 시기에 신용을 공급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올 위기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경제위기를 유발하거나 조장했기 때문이다. 즉 시스템이 관리책임을 못 한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위기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 시스템이란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명목화폐 제도,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달러의 패권이다. 이번 위기의 독특하고 더 파괴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1. 이전 경제공황은 거품을 형성한 것은 민간 신용의 무분별한 팽창이다. 이제 올 경제위기는 거품은 정부가 무분별하게 돈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거품이 꺼지면 건전하고 진취적 사업가와 시장이 "무너진 잔해를 재건하는 과정"으로 경기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은 이런 재구축 과정에서 적절한 통화나 신용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후자의 경우 시장의 기능을 약화했기 때문에 당연히 시장의 회복기능도 약화되었다. 이후 해결책도 정부와 중앙은행이 다시 돈을 더 많이 푸는 것밖에 없다.

2. 중앙은행의 중립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약화되었다. 정부와 여론에서 독립성을 잃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아 화폐의 신용을 유지하고 위기 시에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 다른 기능은 없다. 특히 경기를 진작하는 기능은 중앙은행의 본질과 상충하는 절대 맡아서는 안 될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 중앙은행이 정치권과 여론에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파월 연준 총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라. 자산시장(특히 금융시장)의 눈치를 보는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40년 만에 온 인플레이션을 앞에 두고도 경기침체를 걱정한다. 즉 거품을 터트려야 하는 사람이 거품이 터질까 봐 무서워하는 꼴이다. 이런 처사는 인플레이션을 장기화하고 결국 피할 수 없는 경기침체를 더욱 깊고 길게 한다. 

3. 달러의 패권이 약화하고 있다. 미국이 브레튼우즈체제 이후 기축통화국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국제적 금융 체제에 공공재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제 결제에 달러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는 그냥 대안이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를 쓰고 싶어서 썼을 리 없다. 미국의 경제와 패권이 약화할수록 대안이 도모될 것이다. 실제 미국의 경제와 패권은 약화 중이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도가 있다. 세계일보 기사에서 인용한 지도이다.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 중 서구가 아닌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러시아 제재를 거부하는 것은 중국과 이란, 북한 같은 미국을 적대하는 나라 뿐이 아니라 서구와 한국 일본을 뺀 전 세계이다. 지역 주요국 중 미국과 서구의 편을 든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미국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미국과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인 멕시코도 마찬가지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미국과 서구는 이번 전쟁에서 전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원자재와 중간재 생산국은 물론 소비 시장을 가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고립되었다. 이게 진실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제재를 목적으로 달러 결제 체제에서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배제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숙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다.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쓰던 여러 나라들에 "달러를 쓰다가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기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쓰던 물건을 쓰다가 큰일 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것이다. 앞으로 국제결제와 비축통화에서 달러의 위상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대안적인 준비화폐와 결제 시스템을 필사적으로 찾을 것이다. 

4. 여러 경제 여건 외 꼬리 위험(tail risk)이 산적해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중동에서 우발적인 전쟁 발생, 중국과 미국의 무력 충돌, 등이다.

여러 면에서 이번 경제위기가 지나간 이후의 세상은 상당히 생소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달러가 영향력을 잃고, 다른 대안은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정학적 충돌로 분열된 세상이다. 국제적 가치 저장과 교환 수단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국제분업체계도 분단되는 상황이다. 이런 곳에서 시장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일을 하기 힘들다.


무너지는 달러, 혹은 서구의 명목화폐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수년 안에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를 본격적으로 발행할 가능성이 크다. CBDC는 탈중앙화되지 않았다는 점과 발행규칙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빼고는 암호화폐와 동일하다. 즉 분산원장에 준하는 기술로 거래를 저장하고 시중 은행을 건너 뛰고 발행자(중앙은행, 혹은 정부)와 계정 소유자가 연결된다. 이런 CBDC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 한 가지다. 바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조금이나마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CBDC는 특정 상업 은행망을 이용하지 않고 지불 결제가 가능함으로 국제간 결제와 국내 결제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 만약 달러를 CBDC로 발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에 있는 A도 은행 계좌나 현물이 아닌 개인지갑 형태의 계정에 달러를 보유할 수 있다. 또한 금융결제망을 이용하지 않고 B에 달러를 보낼 수도 있다. A와 B가 동의만 한다면 물건을 사고팔 때 CBDC달러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결과 달러가 각국 준비통화로써 외면당하고 국제결제에서 비중이 줄어들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 지갑에 보관하려는 달러 수요가 폭증할 수 밖에 없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터키에 있는 A는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지는 자국 화폐 대신 CBDC달러를 자기 개인 계정에 보관할 수 있다. 독일에 있는 아들 B에게 어떤 은행 결제망을 거치지 않고도 간편히 송금할 수도 있다. 상인도 자국 화폐보다 가치 유지가 잘 되는 달러를 외면할 이유가 없으니 물건의 결제도 CBDC달러로 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터키 정부가 압류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터키 내 은행을 이용할 필요도 없고, 결제도 간편하다. 

아직까지도 달러는 가치유지가 되지 않는 화폐를 갖지 못한 제 3세계 국가에 대단히 매력적이다. 올해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대략 전년 대비 60%이다. 터키는 75%이다. 이런 나라에서 단 1년만 현금으로 갖고 있어도 재산이 반 토막 나기 십상이다. 이런 명목화폐를 갖고 있는건 경제적 자살행위다.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그 지역 중요 국가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고만고만한 나라나 실패국가에서는 이런 자국 화폐의 타락 현상이 더욱 심하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치가 유지되는(그나마라도..) 화폐'라는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이런 나라 사람들에게 은행도 필요 없이 달러로 재산을 보전하고 결제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이해했는가? CBDC는 타국의 통화 시스템에 대한 침공과 유사하다. 간편하게 보관 가능하고, 주권 국가의 통제 할 수 있는 은행도 쉽게 우회하고, 국경도 마음대로 넘는, 가치가 더 잘 보전되는 강대국의 화폐가 결과적으로 허약한 나라에 화폐를 구축해 버린다. CBDC가 활성화된 세상에서 경제적 약소국은 사실상 통화주권을 잃는다.

만약 미국 CBDC달러가 아르헨티나의 허접한 통화를 구축해 버린다면 아르헨티나의 통화는 달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각 주권 국가는 이에 저항하겠지만 저항이 불가능한 나라도 많다. 충분히 강한 통화를 갖지 못한 나라들도 일부라도 이를 용인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지금처럼 주조차익을 누릴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쌓지 않아도 각국 개인이 알아서 달러를 자기 계정에 쌓을 테니까..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미국은 물론 어떤 나라도 CBDC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이유가 없다. CBDC는 타국 뿐 아니라 자국의 은행도 어느 정도는 무력화한다. 민간 은행을 통한 화폐 창조 시스템의 근간도 흔든다. 잘못 만지다 자기가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무기다. 이 무기는 내가 사용했을 때 엄청난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욕망, 다른 나라가 먼저 사용하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으로 현실화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만 CBDC를 만들까? 아니다. 일본, 중국과 같은 주요국은 물론 BRICS, EU같은 경제 연합체들도 아마 만들어 낼 것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한 주권 국가 내에서 사용되는 통화가 한 개가 아닌 상황이다. 이른바 통화의 시장화 현상이다. 한국에서 장을 볼 때, 달러나 유로, 엔으로도 결제할 수 있는 세상이다. 화폐 간의 환전은 은행이 필요 없이 그때 그때마다 앱이나 인터넷의 거래소에서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달러로 결제해도 원화로 상대방 계정에 자동으로 환전되어 지급되는 시스템도 반드시 나온다. 이런 세상에서 각국 화폐는 가치 보존과 편리함을 두고 전 세계에서 경쟁해야 한다.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면 시장의 추동력에 의해 당연히 일어날 일이 있다. CBDC와 암호화폐가 간단히 교환되는 거래 시스템과 암호화폐를 바로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지불 시스템이다. 이제 화폐는 주요국이 발행한 화폐, 암호화폐, 심지어 어떤 기초 자산(예를 들면 금, 원유, 식량)의 가치에 기반한 화폐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체제가 된다.


위 이야기가 말 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아니다. "화폐가 국가와 민간 은행의 신용에서 창조될 수 있다"는 말이 더 말 같지 않다. 화폐가 "국가의 창조물"이라거나,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재"라는 말이 더 말 같지 않다. 화폐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간 상품에서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은 중간 상품의 가치에서 분리되어 괴물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의 명목화폐 시스템이다.

이 일이 곧 완성된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 혼란 과정에서 시작은 될 것이라 믿는다. 그 기폭제는 CBDC의 발행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신의 명목화폐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이를 시작하겠지만 진정으로 강화되는 것은 민간 암호화폐일 것이다. 인간이 화폐에 바라는 것은 편리함과 적당한 가치 유지가 아니라 편리함과 공정한 가치 유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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