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 때 소련연방의 붕괴를, 중학교 때 1991년 이라크 침공을 목격했다. 미국 단극체제의 등장과 화려한 전성기를 본 것이다. 당시에는 PAX AMERICANA가 수 세기가 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다. 민주주의, 자유를 공유하는 부유하고 평화롭고 가까운 세계가 나타날 것이라는 이상에 기반한 낙관론이었다. 당연히 한국도 여기에 편승해 큰 도약을 이룰 것이라 믿었다.
스타트렉은 이런 세계관을 반영한 완벽한 드라마였다. 여기서 인류는 모든 물질적 수요가 충족된 진보된 사회를 건설했다. 이들의 휴머니즘과 관용은 우주의 다른 종족에게도 적용된다. 다양한 외계인으로 구성된 행성연방(물론 핵심인물은 지구의 백인….)은 투철한 가치관과 평화로운 목적을 가지고 무한하게 넓은 우주를 여행하며 악당 외계인에 맞선다. 여기서 스타트렉 우주선은 군함이 아니다. 탐험선이다. 스타플릿은 미지의 위험이 가득한 우주를 선의를 가지고 탐험하는 모험가들이다. 이 집단의 최고 원칙(prime directive) 중 하나는 “워프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다른 문명을 발견했을 때 해당 문명에 간섭하지 않으며, 워프 기술을 보유한 종족과 접촉하더라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 간섭 내지는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안타깝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너무나 많은 곳에 개입했고, 빈번히 군사력을 사용했고,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미국의 단극체제 최고 전성기였던 1991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의 영향력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 나쁜 점은 이런 내리막길이 미국이 자초하거나 가속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실패 사례를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실패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 너무 많은 나라에,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불필요한 이유로 간섭(군사적 개입이나 침공을 포함)할 뿐 아니라, 개입한 나라에 서구식 제도와 가치를 이식하려 시도하다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이런 경향은 9.11 테러 이후 더욱 심해졌다.
-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관념론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과 인간의 본성에 관해 비현실적인 판단에 경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상식과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PC(political correctness)가 횡행하며 국제관계에서도 이런 가치를 자주 들먹인다.
- 국제관계에서는 미국적 가치에 따라 선한 나라와 악한 나라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불합리하고 일관성이 없다.
이 모든 의문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더욱 커졌다. 이 전쟁은 미국(그리고 서방)이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을 건드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주의적 국제문제 전문가가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왜 이렇게 했는지 의도가 불분명하고 최종 목표도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한 대책도 없다. 이런 무책임한 개입은 냉전 이후 미국이 벌인 모든 대외 개입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런 미국이 개입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중동국가들이다. 미국이 냉전 이후 군사적으로, 혹은 비군사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개입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는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참혹한 인도주의적 재난을 당하거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 미국 행동의 결과가 개입한 나라뿐 아니라 미국까지 더 불안하고 가난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세르비아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공격했고,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북부에서는 끊임없는 표적암살과 소규모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왜 미국은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가? 이런 의문에 답을 얻고자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스티븐 월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미국의 외교가 실패하는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를 비롯해 현실주의 국제학자가 지목하는 미국 외교의 병폐는 바로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이다. ‘자유주의 패권’은 더 많은 나라를 미국처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고, 개방적 국제경제를 촉진하고, 이를 조율하고 이끄는 국제기구를 조직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자유주의 패권론자는 이 정책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가 더 안전하고 번영한다고 믿는다. 보편적 가치(인권, 관용, 민주주의, 자유)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 너무 밀접하게 엮여 있는 국제사회에서는 전쟁이 사라지고 자발적으로 형성된 국제기구(regime)의 조율에 따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마치 스타트렉에 나오는 행성연방을 그린 듯하다. 이런 유토피아를 위해서 미국은 독재국가와 비민주국가를 힘을 써서라도 민주적인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스타트렉과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듣기만 해도 답답한 이야기이지만 이 자유주의 패권은 실제로 미국이 냉전 이후 계속해서 써온 전략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란 개인의 권리와 경제적 자유, 국가의 소극적 개입을 강조하는 일상적 자유주의(modus Vivendi liberalism)가 아니다. 국가가 적극적인 사회공학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를 말한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자유주의 패권은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망상이라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 원제는 The great delusion(거대한 망상)이다. 이 이념이 망상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고, 이론적으로 허점이 많다. 미국 패권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기능을 할 수 없는 이론이다.
우선 자유주의 패권의 기본적 가정이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 자유주의 패권은 인간 가치관의 차이, 특히 어떤 것이 좋은 삶이냐를 규정하는 ‘최고 원칙’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에 대한 존중, 관용의 정신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개념은 역사에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근대 계몽주의의 산물이다. 이 개념에 따라 좋은 삶과 보편적 원칙을 규정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좋은 삶을 규정지었던 원칙은 싫든 좋든 사회적이고 부족적(tribal)인 소속감이다. 즉 ‘좋은 삶’이라는 추상적 가치에 대한 합의는 개인의 이성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게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과 개인을 통제하는 정치 제도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자유주의’보다 강력한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민족주의(혹은 국가주의)이다. 민족은 혈통, 문화, 언어, 역사를 공유한다고 믿는 집단에 대한 충성심에 기반한다. 우리 생각과 달리 이런 민족주의는 유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실체적 존재라기보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바대로 ‘상상의 공동체’에 가깝다. 민족주의가 근대 이후에 발명되었지만, 더 큰 집단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어찌 되었듯 근대 이후 베스트팔렌 체제와 탈식민지화 이후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민족과 국가는 더욱 밀착했다. 결과적으로 근대 국가는 대부분 민족국가(nation states, 혹은 국민국가)이다. 국가라는 인간 최고위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이념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자유주의는 민족주의 국가 아래서 번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를 대체할 수 없고 만약 두 이념이 맞부딪친다면 자유주의는 항상 패배한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이 비극적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개입하는 국가의 민족주의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 패권은 유토피아적 행동주의이기 때문에 실제 국제사회의 역사적 현상에 근거한 현실주의(예를 들면 세력균형, 전쟁이 정치적 수단으로 존재한다는 현실)를 무시한다. 현실주의의 가장 최고 원칙은 생존이다. 자유주의 패권은 생존보다 다른 이성적 가치를 우선시함으로 둘이 경합했을 때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제 자신의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세력균형이나 지정학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망상은 우크라이나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고 불린 적이 있지만, 실제 세계에는 경찰이 없다. 강력한 힘으로 각 국가에 규칙을 강제할 상위 체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은 철저하고 냉정한 현실주의이다. 편집증적으로 상대를 경계하고, 대비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런 현실주의는 상위 체계가 없는 수많은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마약상들 간의 관계, 무법 변경지대에서의 사회질서, 실패국가에서의 무력집단, 등이다.
자유주의 패권은 민족주의와 현실주의와 국제사회에서 부딪칠 때,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념이다. 실제로 냉전과 같은 다극 체제일 때에는 자유주의 패권은 시도할 수조차 없다. 미국의 단극체제일 때는 시도할 수 있지만, 반드시 실패하는 정책이다. 저자는 미국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자유주의 패권을 포기하고, 더 절제된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은 이렇다. 미국이 맛이 가서 이상하고 일관성 없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식 가치에 기반한 정치체계를 전 세계에 이식하겠다는 망상을 가지고 전 세계 모든 곳에 힘을 쓰려다 보니 힘은 힘대로 쓰고 치욕적인 패배는 반복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힘을 쓸 곳에서만 쓰고 다른 나라 내정에는 관여하지 마라. 외국에 쓸데없는 짓을 할 돈으로 국가를 더 부유하고 경쟁력 있도록 힘쓰라.’
미국이 정신 차리고 현실적인 외교정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결정해줄 듯하다. 중국이 동북아에서 패권적 세력으로 확실히 등장하면 미국은 망상을 버리고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치 까불던 날라리가 동네 건달한테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미국이 어쩌다 정신을 차리게 해줄 깡패가 필요해진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반드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비현실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동북아 정책을 편다면 한국은 최악의 경우 동북아의 우크라이나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국의 비현실적인 행동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대외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에 아무 생각 없이 편승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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