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윤영관은 서울대와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외교와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2003년부터 4년간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국제정치와 외교를 학자로서만 다룬 인물이 아니다. 한반도의 격랑이 몰아칠 때 직접 실무에서 외교를 총괄했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소신을 바탕으로 전환기 한국의 외교 전략에 관해 쓴 책이다. 한국의 외교와 국제 정치적 현실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귀 기울여야 할 가치가 있는 견해다.
저자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사활적 이익이자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 평화의 유지이다. 따라서 한국의 최우선 외교적 전략은 북한을 평화롭게 개방하고, 통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자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한국 외교의 폭을 아세안국가와 인도까지 넓히는 전략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 편을 완전히 드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의 입지를 스스로 줄이고 화를 불러들이는 무지한 짓이다. 한국이 두 나라 중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여야 하는 순간은 미국과 중국이 전쟁 직전에 이르렀을 때이다. 등거리외교도 안된다. 양쪽에 중심에서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미국과 멀어지겠다는 말이다. 아직 건재한 미국 주도질서에서 소외되고 가장 강력한 동맹을 잃는 길이다. 한미일 삼각 동맹도 안된다. 이는 대중국 적대 포위전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중국의 지지를 불가능하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에 필요한 것은 ‘동맹에 기초한 중첩외교’이다.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의 군사-안보동맹에 기초해야 한다. 단, 한미동맹은 대북 억지력에 한정된 것이고 중국을 포위하는 역할을 해선 안 된다. 만약 통일된다면 이전 북한영토에 미군이 주둔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미군 주둔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면 중국도 한미동맹을 약화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일본과도 필수적인 안보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한국의 사활적 이익인 한반도 평화를 최우선에 두고 독자적이고 주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은 냉전기도 아니고 한국도 예전의 약소국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사활적 이익에 대해서는 중국이든 미국이든 한국을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어떤 현안을 한국의 이익에 맞게 주도하는 역할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는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반 극적인 변환을 맞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이 중국,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고, 더는 냉전적 대결이 불필요해 졌을 때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무대로 끌어냈다면 북한은 베트남 수준으로 개방된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 한국과 미국은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했다. 결국, 고립된 북한은 편집적으로 핵무기에 집착하는 길을 택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부시의 네오콘이 주도한 가치 우선의 전략은 마지막 남은 다리를 태워버렸다. 그 후에 북한 문제는 적대감과 불신 덕분에 복잡하게 꼬여갔다. 저자는 이를 안타까워하지만, 아직 외교적 노력으로 북한의 핵 문제와 한반도 안정을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발행되었다. 이미 7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말하는 외교가 가능한 공간은 더 줄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내 사견이다.
저자가 예상하는 한반도의 최상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중국을 포용하고, 중국은 미국의 실질적인 지도력과 힘을 존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는 것이다. 실제 일어난 일은 이와 반대로 보인다. 저자가 책을 쓴 2015년 이후 상황은 이렇다. 미국은 중국을 현상타파국가(revisionist power)로 규정하고 정치-경제적 압박을 노골화했다.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저자가 집필하던 시기에는 최소한 중국이 국제질서를 존중하여 현상을 유지하는 걸 선호하는, 위협적이지 않은 나라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어긋난 전략적 오판과 오해, 우연한 사건과 관성의 힘으로 느릿느릿 화염과 포연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두 번의 세계대전 직전에도 있었다.
북한은 2015년 이후 수소폭탄을 개발했고, 핵무기를 소형화했고, 핵 투발 수단을 다양화했고, 핵무기 개수를 늘린 거로 보인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문제 이외에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관심이 부족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성과 없는 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 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단시일 내에 시작하긴 힘들어 보일 뿐 아니라, 한국과 북한 간의 의미 있는 대화도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지금, 저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한반도와 국제정치 상황은 훨씬 안 좋게 변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동맹에 기초한 중첩외교’는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내 생각에 지금 한국의 평화,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라는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건 중첩외교는 더욱 필요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현상 변화는 결단코 반대해야 한다.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의 뜻은 한반도의 주변 정세를 불안하게 할 모든 변화이다. 현상 변화라고 함은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유지를 바꾸거나, 한반도 국가를 다른 갈등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어떠한 시도를 말한다. 특히 앞으로 피할 수 없어 보이는 대만 관련 미국과 중국의 충돌에서 한국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한국이 이런 갈등에 참여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겠고, 주한미군도 한국의 기지를 이용해 한반도 문제 밖에 동원되는 걸 반대해야 한다. 대중국 포위망으로 의심될만한 움직임에는 중국에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에는 대만 문제에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너희 싸움은 한반도 밖에서 해라.’이다. 지금 이런 국익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는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주도적 외교 노력을 방해하는 큰 고정관념이 있다. 첫째는 강대국의 싸움에 우리는 무력하다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론이다. 북한이라는 예측하기 힘든 존재 덕분에 전략적 움직임에 제한은 있다고 해도, 한국이 새우는 아니다. 이스라엘 같은 무자비한 자국 우선 외교를 할 공간은 없어도 한반도 주변의 이해당사자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이념에 따라 특정 국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현대판화이론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이다. 개인의 추상적 신념은 오히려 이성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은 자신의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과시할 대만방문을 강행했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말렸고, 심지어 대만 정부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귀국 전후에도 중국의 인권문제와 반민주성, 호전성을 비난하는 장문의 기고와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누가 봐도 경솔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자신이 돋보인 것 외에 미국의 입지를 더욱 줄이고, 대만인이 실제 피해를 뒤집어쓰게 했으며, 중국이 더 강경한 행동을 할 핑계만 줬다. 은퇴를 앞두고 입만 털었을 뿐, 실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있는 외로운 국가를 위험하게 한 것 외에 한 게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는 낸시 펠로시가 한국에 왔을 때, 왜 윤 대통령이 회담하지 않았는지, 왜 의전이 그 모양인지 비판하는 기사와 의견이 가득했다.
우리가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국가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인플루언서처럼 관심을 끌려는 일개 미국 정치인에 놀아날 필요는 없다. 미국도 비난하는 행동을 하는 정치인의 방문에 일국의 대통령이 휴가를 취소하고 만나러 가는 게 더 굴욕적이다. 우리의 국익은 위에 말했듯, 대만 문제가 한반도로 옮겨붙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낸시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것은 국익에 걸맞은 결정이었다. 아마 펠로시의 방문에 맞춰 대통령이 휴가를 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게 여론이다. 이런 보도와 의견은 중국에 대한 혐오감과 미국에 대한 선호라는 감정으로 중요한 현실 외교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외교적 현실에 기반한 ‘동맹에 기초한 중첩외교’는 더욱 절실해졌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정확하고 통일된 현실인식과 여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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