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트럼프 공약(agenda 47)로 보는 집권 2기,. 대비해야 할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

 


트럼프가 재선 공약을 발표했다. 공약의 핵심은 이렇다. 국내적으로 보수적-전통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미국을 '재(再) 국민국가화(re-nationalization)' 하고, 국외 문제에서 미국을 '보통 국가화' 하겠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링크를 남긴다.

공약 47개 중 대부분은 미국의 교육과 고용, 이민, 세금과 같은 국내 문제다. 이것만 봐도 트럼프가 국외 쟁점보다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나쁘지 않다. 미국인이 타당하고 현실적인 가치를 공유하도록 촉진하고, 질서를 바로 세우고, 쇠퇴하는 사회 제도를 재건하겠다는 청사진의 방향은 일부 논란이 있을 수는 있어도 맞는 방향이다. 특히 대학 교육에 대한 한 관점은 미래 대학 교육의 모범이 될 수도 있어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이대로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미국은 쇠퇴를 멈추고 다시 한번 힘을 되찾을 것이다. 

즉 국내의 재(再) 국민국가화(re-nationalization)는 미국에 있어 시급하고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미국이 자신과 동맹국에 큰 재앙을 일으키지 않고 보통 국가화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미국의 보통국가화는 세계 경찰, 국제적 문제 전반에 개입하는 초강대국이 아니라 북미 대륙에 존재하는 은둔적이지만 강력한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와 관련된 공약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미국 군대의 재건(Rebuilding America’s Depleted Military) : 미국 우선주의 외교를 복원하여 동유럽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방산 조달과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위대한 미군의 전통을 되살리겠다.
  • 3자 세계대전 방지(Preventing World War III) : 우크라이나 전쟁은 즉시 멈춰야 한다. (We must be absolutely clear that our objective is to IMMEDIATELY have a total cessation of hostilities.) 이런 전쟁의 원흉인 국제주의자와 네오콘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There must also be a complete commitment to dismantling the entire globalist neo-con establishment)
  • 전쟁광과 국제주의자를 저지(President Trump Announces Plan to Stop the America Last Warmongers and Globalists) :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발한 Deep State, 펜타곤, 국무부, 국가 안보 산업 단지에 있는 모든 전쟁광과 미국 최후의 세계주의자들을 제거한다.
  • 새로운 미사일 방어막을 건설(President Trump Will Build a New Missile Defense Shield) 극초음속 미사일과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비하는 압도적인 방어시스템을 건설
  •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료와 평화 협상의 즉각적인 개시(President Trump Calls for Immediate De-escalation and Peace) : 당선 후 24시간 안에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시작함
위 공약으로 볼 때, 당선 후 트럼프가 보여줄 대외정책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세계주의자, 즉 전 세계 이슈에 관여하는 미국 엘리트를 박멸해야 할 미국의 적으로 규정한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들의 책임이다. 따라서 세계주의자는 사라져야 하고, 이 전쟁은 즉시 끝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를 지키는 군대는 재건하고, 미 본토를 보호하는 강력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건설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즉시 발을 빼리라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안전을 최우선 하겠다는 말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약속대로 당선 즉시, 유럽을 패스하고 러시아와 협상하려 한다면 유럽에서 미국의 평판과 신뢰는 즉시 사라진다. 경우에 따라선 NATO가 북미와 영국, 그 외의 유럽대륙 국가로 분열될 수도 있다. 미국의 패권은 동맹의 힘에 의존한다. Five eyes를 빼면 미국의 핵심 동맹은 유럽 국가다. 이들을 단 한 번에 잃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서구 국가의 70%의 지지를 잃고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미국이 자신이 부추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책임하게 발을 뺄 정도로 후안무치하다면, 북핵 문제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북한과의 교섭에서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고려할까? 내 생각에 그럴 리 없다. 트럼프는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SLBM 기술을 제한하는 정도에서 북핵을 용인할 것이다. 그 와중에 방위비 분담이나 무역과 관련하여 우리 국민의 감정을 거칠게 자극할 것이다. 유럽에서 끝난 미국의 평판과 영향력이 동북아에서 끝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미국은 자의 반 타의 반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물러나 북미의 자신의 굴 안으로 숨어든다. 이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수년 내에 확실히 일어날 일이다.

사자가 강할 때는 영역을 돌아다닐 때다. 굴 안에 숨어든 사자는 포식자가 아니라 사냥감이다. 어떤 나라도 패권국의 지위에서 부드럽게 물러난 적은 없다. 미국이 고통 없이 보통국가화 할 수 있다는 것은 트럼프의 착각이다. 

트럼프가 자신이 약속한 바대로 한다면 한국, 일본은 신속하게 미국과 멀어지며 핵무장을 할 것이다. 대만은 중국의 자비만을 바라는 상태로 고립될 것이고 동남아는 중국 쪽으로 급속히 경도된다. 미국은 중동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밀려나고, 아랍의 걸프국가들도 주체적이면서 친중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고립되어 수세에 몰린다. 유럽은 사분오열된다. 미국의 푸들인 영국, 유럽의 독자성을 내세울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의 위협과 관련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동유럽국가로 입장이 완전히 갈리며 나토 뿐 아니라 EU의 미래가 불확실해진다.

자, 세상은 분열되어 각자도생한다. 사실 이런 일은 예견된 것이다. 그러나 예견된 것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과 핵폭탄 터지듯 갑자기 일어나는 것과의 차이는 크다. 트럼프가 바로 핵폭탄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만들고 지금까지 주체적으로 유지해 온 나라다. 그 국제질서의 근간은 달러 기반 국제 통화질서, 국민국가의 통치 원칙에 우선하는 보편적 가치로서 국제법, 자본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이다. 이를 유지하는 힘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의 군사적-경제적 영향력이다.

현재 국제법은 전 세계에서 무시당하다 못해 조롱당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미국이 앞장서서 파괴하고 있다. 달러 기반 국제 통화질서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이 만든 질서는 서서히 풍화 중이다.  이는 미국의 군사-경제적 힘이 약화된 결과다. 트럼프가 할 행동은 약화한 미국의 영향력에 자발적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다.



피터 자이한이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이 과정을 남의 일처럼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니들 미국 덕분에 그동안 편하게 살았지? 미국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한번 보자^^ 니들 X됐어..." 이런 식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국이 지구에서 분리되어도 고립계로써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가정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달러가 힘을 잃으면 20년 안에 경제적으로 멕시코보다 못한 나라가 된다. 델로스 동맹의 공물이 없는 고대 아테네를 생각해 보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동맹국의 공물로 유지되는 나라다. 그 공물의 핵심은 달러의 세뇨리지 효과다. 굴에 숨어들어 상처를 핥고 있는 사자에게 누가 공물을 바치겠는가? 델로스 동맹 없는 아테네가 허수아비이듯,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을 잃은 미국은 허수아비다. 공물에 의존하던 미국 경제는 공물 없는 세상에서 그 기본적 구조조차 유지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는 미국의 몇 개 주(州)가 독립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자체적인 자원만으로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천조국의 위엄을 말할 때 꼭 나오는 이야기가 미국의 엄청난 식량과 원유, 기타 자원의 생산량이다. 러시아가 식량과 원유가 없어서 후진국인가? 사우디가 기름이 없어서 산업기반이 그모양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어떤 나라도 산업 생산력과 첨단 기술 없이 부를 이뤄낼 수 없다.

미국에 빅테크 기업이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첨단 기술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소프트파워가 아니라 반도체다. 그리고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근본도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이끌린 고학력-기술직 이민자다. 달러의 패권에 기반한 미국의 경제가 무너진 시점에 미국에 일을 하러 갈 고학력 기술직 이민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달러가 패권을 잃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일하러 갈 인도의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있겠는가?

요약하자면, 미국의 패권이 사라져서 가장 X되는 건 미국 자신이다. 그다음이 우리와 대만 같이 미국 중심 경제질서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은 교역국가, 이스라엘과 서유럽 국가와 같이 미국의 안보 그늘 아래 번영했던 나라들이다. 반사적 이익을 얻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과 같은 강대국과 일본, 이란, 터키와 같은 탄탄한 구심력을 가진 지역 강대국이다.



이제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끈 세계질서에서 번영해 왔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살 길은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는 못 되더라도 이란, 터키, 일본과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이다. 그 핵심은 탄탄한 산업기반, 비교적 균질하고 생산성 높은 국민, 그리고 독자적인 군사-외교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독자적인 군사-외교 뿐이다. 한국보다 탄탄한 산업기반을 갖거나 균질하고 생산성 높은 국민을 가진 나라는 극히 드물다. 즉 우리가 지역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우리의 결단 뿐이다.

트럼프의 당선 4년 동안 우리는 이런 결단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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