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직에 오른 지 5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 5년에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극단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트럼프를 비이성적인 광인(狂人)으로, 트럼프의 정책을 완전히 비상식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트럼프의 일련의 정책은 미국이 '미국 예외주의'에서 물러나 보통 국가가 되려는 흐름, 이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미국식 예외주의의 근본인 '윌슨주의'를 부정하는 움직임의 일부다. 트럼프가 볼 때, 미국은 어떤 보편적 가치의 수호자도 아니고, 국익을 넘어서 어떤 이데올로기와 삶의 방식을 지켜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가 원하는 미국은 그냥 강하고 건강한 나라다. 다만, 트럼프는 이런 과정을 부드럽고, 갈등 없이, 서서히 진행할 의지와 능력이 결여된 인물이다. 즉 트럼프는 광인은 아니지만 성격적 결함을 가진 인물이다.
트럼프의 성격적 결함은 '자기애성 성격장애' 스펙트럼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트럼프의 이런 성격적 특성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을 충분한 고려와 심사 없이 실행한다. 최근 난리가 난 관세 사태가 대표적이다. 멋지게 시작은 했지만 주식시장은 물론 미국 채권시장이 흔들리자 굴욕스럽게 자신의 관세정책을 사실상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축인 동맹국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예상해 보자면 트럼프의 다음번 바보짓은 미묘한 균형 위에 유지되고 있는 국제관계와 동맹관계를 독단적으로 변형하려는 정책일 것이다. 유럽과 캐나다와 관계가 위태로운 것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 보기에는 이런 행동이 시원시원해 보이고, 어떤 효과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신뢰는 크게 실추될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미국 달러의 신뢰도 크게 실추된다.
트럼프는 외국에 고율의 관세를 물리면서도 금리를 인하하라고 연준의장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아마 미국이 파국적인 경기 위축을 겪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 정책을 철회할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미 10년물 미 국채 금리도 이를 예상하고 위태롭게 오르고 있다. 위험한 신호다.
게다가 미국 상품에 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한다는 정황이 충분하다. 이 피해자는 아마 한국, 일본, 대만이 될 듯하다. 결과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겠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다양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은 과격할뿐 아니라 서로 상충한다. 그 결과로 일어날 가장 큰 결과는 달러 가치의 하락이다. 이는 처음에는 단순히 다른 통화 대비 달러 가치만 절하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다른 통화의 경쟁적인 절하와 모든 명목 통화의 가치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 달러 가치가 이렇게 높은 적이 없는데 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달러가 예전의 달러당 800원 수준으로 간다는 뜻은 아니다. 원화 대비 지금보다 최소 20% 정도 평가절하되고 이것이 새로운 화폐 평가절하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트럼프가 새로운 명목화폐 가치 타락의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는 뜻이다.
이미 명목화폐는 타락 중이다. 앞으로 이는 가속할 것이다. 지금 엄청나게 오르고 있는 금 가격이 이를 보여준다. 주식시장과 상관없이 전 고점을 돌파하려고 하는 비트코인 가격도 이를 보여준다. 이 두 자산의 공통점은 명목화폐의 대체제라는 점이다. 이제 정말 명목화폐의 대체제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명목화폐가 타락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산가치와 생활 수준 하락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본질적인 의미는 개인에게서 국가로 부(副)가 이전되는 것이다. 내가 수십 번 설명한 것이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은 세금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비유도 아니고, 뭔가에 대한 수사법(修辭法)도 아니다. 그냥 인플레이션에 대한 가장 정당한 정의(定義)다. 명목화폐의 발권력을 가진 국가가 부를 희석하는 방법으로 재산을 강탈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3년 전에 7,000원이던 순국을 지금 10,000원에 사 먹었다면 3,000원의 차액은 국가가 세금으로 가져간 것이다. 부가세 10%를 단 5% 올려 국가 수입을 늘린다면 이는 국민적인 저항을 받겠지만, 화폐를 찍어내어 똑같이 국가 수입에 충당하면 국민 대다수는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가장 더러운 세금이다. 단순히 몰래 걷기 때문이 아니다. 임금 생활자, 연금 생활자, 영세자영업자, 기타 노동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가장 집요하게 걷는 세금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실이다. 어떤 경제학자도 인플레이션의 이런 효과를 부인하지 못한다. 이 음험한 세금이 당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정신 차리고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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