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대 지중해 세계사, 고대사회 흥망성쇠의 미스터리

 



역사는 단선적인 발전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 이후 산업화라는 전무후무한 부와 기술의 폭발적 발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가 서서히 기술과 부가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발전하는 모델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로마 시대와 로마 멸망 후 수백 년간 지속된 중세 유럽 암흑기가 그 예다. 문명은 일관성이 있게 발전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순간 퇴보하여 생산성이 후퇴하고, 문화와 기술이 조악 해지기도 한다.

문명이 갑자기 끝나고 암흑기가 도래하는 가장 극적인 예는 후기 청동기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후기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3,700년~3,200년 전 이집트, 근동, 메소포타미아, 에게해 벨트에 존재하던 문명을 말한다. 만약 청동기 문화가 철기보다 더 원시적이고 문화-기술적으로 뒤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 후기 청동기 문화는 현재 못지않은 ‘분업체계’를 가진 국제화된 곳이었다. 청동의 원료인 구리와 주석을 생각해 보자. 당시 주요 주석 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닥샨 지역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접경지대다. 구리의 산지는 그나마 다양하지만, 주요 산지는 키프로스 섬으로 알려졌다. 구리조차 철(鐵)처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자재가 아니다. 브리튼섬의 원자재에서 인더스문명의 재화까지 후기 청동기 문화는 고대인이 했으리라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협업하여 문명을 유지했다. 이들의 활발하고 거대한 협업과 교역의 증거는 너무나 뚜렷하여 의문의 여지가 없다.

찬란했던 후기 청동기 문화는 대략 기원전 1225년에서 1175년 사이에 대부분 파괴된다. 이집트만 명맥을 유지하지만 뚜렷이 약화하여 이후 국제 무대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찬란했던 국제적 문명이, 강성했던 제국이, 불과 50년 만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후기 청동기의 몰락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가 나온다. 주로 이집트 기록에 기반한 “바다 민족”이다. 어느 순간 배를 타고 나타나 강성한 고대국가를 철저히 파괴하고 사라진 신비로운 존재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 바다 민족은 하나의 통솔력에 따라 목적을 추구하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자신들도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이주민이거나 난민과 비슷한 존재다. 대체로 미케네와 에게해 지역에서 발원하여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목적으로 움직인 집단적 인구이동이다.

후기 청동기 문화의 몰락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된 것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미케네와 근동에서 일어난 대지진

기후변화

기근

반란

새로운 이주민 집단

국제무역의 단절

1, 2는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 당시 파괴적인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과 사망한 유해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게다가 당시는 3.2ka event라는 기후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있었다. 이 기후변화로 전 세계의 중위도 지역의 한랭 건조화가 급격히 일어났다. 지진과 기후변화(가뭄)가 겹쳐 기근이 유발되었고, 이에 따라 이주민 집단(해양 민족)이 이동을 시작하고, 이에 따라 파괴와 몰락의 악순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후기 청동기 문화의 몰락을 설명하는 대체적인 골격이었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단선적이고 단순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기 청동기 문화 몰락의 “방아쇠를 당긴 결정적인 하나의 계기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대신 ‘복합 이론’이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시스템의 각 구성요소 사이의 의존성이 높아지면 전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라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분업체제가 고도화되면 한 곳의 문제가 다른 모든 곳의 심각한 문제로 파급되기 쉽다는 것이다. 만약 청동의 주재료인 주석의 산지인 아프가니스탄 바닥샨지역에 문제가 생긴다면 후기 청동기 문화 전체의 청동 생산은 중단될 것이다. 즉, 후기 청동기 문화의 급격한 몰락은 이들이 국제분업체계와 무역으로 너무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저자는 본다. 이 말의 함의는 ‘만약 당시 후기 청동기가 너무 밀접하지 않고, 각자 문명이 경제-사회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파괴적이고 급격한 몰락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것이다. 저자가 얼버무리며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르자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저자는 따라서 당시 몰락을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원인”을 정확히 찾는 것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알쏭달쏭 한 말이다. 원인의 답보다는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는 소리는 미국의 진보적 대학의 학예회에서나 통할 말이다. 학자는 어떤 극적인 역사적 사건의 가장 타당한 원인, 최소한 타당한 상관관계라도 제시해야 한다.

저자도 자신의 주장이 논점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아는 듯하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복합 이론이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정말로 이해가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말하자면 복잡한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정도로, 당연한 사실을 좀 더 멋진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p.290

저자도 암묵적으로 인정하듯, “당연한 사실을 좀 더 멋진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쓰인 시대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의 발행 연도는 2014년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아직 세상이 어지러울 때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도 예외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생각보다 이미 훨씬 구체적으로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2008년 미국 월가의 붕괴는 청동기 시대 후기 지중해 세계의 붕괴 못지않았다. p.302

저자는 고대 후기 청동기 문화의 붕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재에 교훈을 주려 한다. ‘고대 세계에도 서로 밀접하게 의존하던 국제경제공동체가 있었다. 서로 너무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취약해져 외부 충격에 갑자기 무너지고 암흑세계가 왔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상호 과하게 연결된 국제금융-분업체계는 취약하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 똑같이 반복하지 않지만, 각운을 맞출 뿐(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 라던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말처럼, 역사에서 유사점을 발견해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는 호불호가 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는 건너뛰고 “그냥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어. 단지 당시 문명이 너무나 상호의존적이어서 충격에 훨씬 취약해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야. 그 사건의 주요 원인을 찾는 것은 의미 없어. 그냥 복합적이었다고 생각하면 돼”라는 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 생각에, 저자는 당시 미국의 경제 상황에 몰입하여 무리하게 후기 청동기 사회를 현재에 대입하여 무리하게 교훈을 끌어내려 했다.

게다가 후기 청동기 사회의 급격한 몰락에는 아주 신빙성 높은 원인이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저자는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가볍게 거론하고 넘어가지만 3100~3200년 전 일어난 급격한 한랭기는 3.2ka event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동수악오름 퇴적물 꽃가루 연구에서도 확인되는 기후 급변으로, 한반도에서 샤자덴 하층 문화의 소멸과 산둥반도 쌀농사 집단의 한반도 이주, 그리고 송국리 문화의 시작을 촉발했다. 즉 수십 년간 계속된 중위도 지역의 한랭 건조화는 당시 경제와 생존의 기반이던 농업을 황폐하게 하여 사회를 붕괴시키고 대규모 인구이동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이게 정확히 동아시아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저자는 아마 기후변화가 역사와 인구이동에 끼친 결정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이를 “반란, 기근”과 같은 카테고리의 하나로 가볍게 지목하고 넘어간 듯하다.

게다가 당시에 근동과 미케네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지진의 흔적도 뚜렷하다. 기후변화로 농업 기반이 점점 약화하는 상황에서 충격적인 단기 재난이 닥쳐왔다면, 경제가 튼튼했다면 회복할 수 있었던 사건도 사회의 완전한 붕괴와 대규모 인구이동, 이에 따른 혼란을 촉발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너무 단순하고 단선적이라고 비판한 설명으로 되돌아가 뼈대를 붙여 보자.

수십 년간 계속된 한랭 건조화 사건(3.2ka event)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농업 기반이 파괴된 당시 후기 청동기 사회는 점점 취약해져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기근과 같은 충격에 사회가 붕괴하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수십 년의 한랭 건조화를 견디지 못하고 대규모 인구이동으로 사회가 자연스레 붕괴할 수도 있다. 이는 혼란, 폭력, 대규모 인구이동을 일으킨다. 이는 이집트의 기록에 나오는 바다 민족처럼 폭력적일 수도 있고, 이미 붕괴하여 황폐해진 지역에 평화적인 이주일 수도 있다. 결국, 수십 년의 한랭 건조화를 견딜 수 없었던 대부분 문명은 종말을 고했고, 한랭 건조화가 종결된 이후에야 새로운 문명이 건설되었다.

이 설명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게다가 당시 기록에는 주변 국가들이 이집트에 자신의 곤궁한 식량 사정을 알리고 식량을 요구하고, 이집트가 이에 응하는 여러 기록이 있다. 국제무역에는 식량 무역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당시 국제무역은 한 지역의 식량 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해를 끼쳤을 것 같지 않다. 너무 의존적이라 취약해진 국제사회라는 현재 모습을 고대 청동기 사회에서 찾는 것은 망상일 수도 있다.

자연의 힘 앞에 찬란한 문명도 위축되거나 붕괴할 수 있다. 현대 문명도 장기간 식량이나 에너지와 같이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의 조달이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에서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아마도 후기 청동기 문화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대로 역사적 사건에서 교훈을 찾자면, 엄청난 자연재해가 오면 현대 문명도 파괴될 수 있다는 게 교훈이 될 리 없다. 교훈은 ‘식량 자급이나 에너지 교역’과 같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의 결핍을 만들지 모르는 인재(人災)를 일으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규모 핵 전쟁, 기타 인간이 유발할 수 있는 시스템 붕괴는 국가와 사회가 충격에서 서서히 재건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문명 붕괴로 치달을 수 있다. 내 생각에 우리가 후기 청동기 문화의 붕괴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시사점점은 이것이다.

굳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교훈을 찾지 않더라도,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허망한 소멸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찬란했던 청동기 후기 문화가 멸망하지 않고 지속해서 부와 기술을 축적했더라면 지금 세상은 어떠했을까? 1,000년 전에 달에 가고, 지금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문명 수준에 이르렀을까?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인간 본성은 항상 역사에서 가정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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