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당신인지 어떻게 아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은 의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미래를 따라 당신이 누구였고, 지금 누구이고, 앞으로 누구일지 안다. 이를 자아정체성이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게 모두 착각이거나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이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지심리학과 뇌신경학은 자아라는 것이 생각보다 허약하고, 경계가 모호하고, 다공성(porus)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뇌 특정 부분을 실시간으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fMRI 기술의 발전 이후 인간의 인식과 자아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지고 있다. 당신의 자아는 생명체로서 당신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 낸 장치일 뿐이다. 당신의 자아는 생각보다 경계가 모호하고, 외부 영향에 취약하고, 쉽게 착각하고, 객관적 현실을 왜곡한다. 자아는 무섭도록 예측할 수 없는 차가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얇은 겉옷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에서 특정 사건을 추출하여 만화처럼 추상화된 스냅샷 형태로 뇌에 저장한다. 이를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현재라고 느끼는 자극을 판단하고, 베이지안 추측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장치가 자아다. 자아는 세상을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연결하는 서사를 만든다. 여기에는 인과관계 추론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인과관계나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무작위의 사건까지 뇌는 인과관계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든다. 당신은 이야기꾼이다. 당신이 자신과 세상에 하는 이야기, 즉 서사가 당신의 자아다. 이 서사는 당신이 창조한 것도 아니다. 세상이 당신에게 들려준 서사구조를 받아들여 내면화했을 뿐이다. 당신의 자아정체성 중에 자기 생각이나 자기 판단은 정말 한 줌밖에 안 된다.
이렇게 들으면 정말 끔찍하게 비관적이고 냉혹한 현실을 전해주는 불편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진정으로 설득력 있는 ‘자기 계발서’다. 이 책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당신이 정말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바꿀 수 없는 과거와 고민스러운 현재에 고통받고 있다면, 당신이 자아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실증적 실험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신은 이야기꾼일 뿐이다. 당신은 객관적인 사건의 기록자도 아니고, 세상의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판단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세상이 들려준 서사의 영향을 받아 흔한 서사를 쓰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즉, 당신이 세상에서 듣고, 이를 자기 버전으로 각색한 서사가 곧 당신이다. 당신이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한, 당신은 최소한 당신 버전의 줄거리를 통제할 수 있다.
지금 서사를 바꾼다고 과거를 바꿀 수 있냐고?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현재의 태도와 미래는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과거는 미리 말했듯, 압축되어 추상화된 스냅샷일 뿐이다. 특정 부정적인 스냅샷에 의미를 부여하여 당신의 이야기를 짠 것이 당신의 서사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을 들먹이며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한다. 이 서사에서 당신은 과거의 사건에 의해 파멸해가는 주인공이다. 과거 사건이 현재 당신을 고정해 버렸다. 반대로 당신은 역경을 극복하는 영웅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과거의 어떤 사건과 트라우마도 그저 영웅이 겪어야 할 당연한 사건이다. 이제 두 서사가 당신에게 좋을지 선택하면 된다.
서사를 고치는 것은 저자도 말했듯 쉽지 않다. 온몸이 마비될듯한 공포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이 아니라는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실, 최소한 과거의 당신이 현재의 당신을 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이해한다면 서사는 바뀔 수 있다. 당신이 과거에 붙잡혀, 현재의 행동이 제약된 고정되고 일관성 있는 존재라는 것은 착각이다.
책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뇌의 능력을 이용해 서사를 바꾸고, 궁극적으로 당신이 원하는 당신에 가까워지는 실증적 방법도 제시한다. 이는 내 개인적인 해석을 듣기보다는 직접 책을 읽고 개인의 서사에 통합하길 바란다.
가끔은 재미있는 책을 만나고, 가끔은 감동적인 책을 만난다. 그러나 뇌에 충격을 줘, 인생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는 책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책은 그런 흔치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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