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삼각정리는 개방경제의 세 가지 주요 목표인 환율의 안정성, 통화정책의 독립성, 자본이동의 자유화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으며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한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왜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지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가 만약 환율의 절대적인 안정을 원한다면 홍콩처럼 원화를 달러화에 페깅하면 됩니다. 1달러에 1.200원 식으로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는 것이죠. 만약 이렇게 하려면 상당량의 달러를 중앙은행이 저장해 놓고 환율이 변동할 때 마다 개입해야 합니다.
만약 수출이 너무 잘되서 원화가 강세가 되면(즉 국내에 달러가 흔해지고 원화가 부족해 지면) 원화를 찍어내서 시장에 공급해야 합니다. 반대로 경기가 좋지 않아서 달러가 부족해 지면 보유해 놨던 달러를 팔고 원화를 회수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오히려 환율 안정을 위해 원화를 시장에 풀어야 하고 경기가 안좋을 때에는 오히려 달러를 사느라 시중에 원화를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요. 이렇게 되면 한국은행이 독 물가 안정이나 경기부양 같은 대내 정책을 위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환율의 안정성을 추구하려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한 국가의 환율의 안정을 방해합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 한국에서 빠져나가고 밀려드는 달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가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려다, 혹은 환율변동을 임의로 제한하려다가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한 국가의 독자적인 통화정책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합니다. 우리가 경기가 좋지 않다고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고 한다면 이는 주변 국가의 통화에 비해 원화의 가치가 절하되는 현상을 유발합니다. 이는 무역을 통해 손해를 보게 되는 주변국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율전쟁은 자신의 통화를 절하시켜 상대국가와의 교역에서 이익을 보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본이동은 물론 세계화 자체가 도전을 받습니다.
결국 전 세계 국가는 아래 그림처럼 세 가지 가치 중 최소한 한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트릴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근대 이후 부터 이차 세계대전까지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금본위제를 존중하며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환율의 안정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는 각국 화폐의 가치를 금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로 각 국가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한 것입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추세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닉슨이 금태환을 완전히 포기한 1971년까지는 달러만 명목상 금과 태환되고 나머지 통화는 달러와 태환되는 브래튼우즈 체제 기간이었습니다. 이때는 환율의 안정과 각 국가의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위해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부분적으로 제한했던 시기입니다.
세 가지 가치에서 한 가지를 확실히 희생시키지 않은 체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 국가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강화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 시기는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자본이동의 자유를 추구하고 환율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넘어서는 세계화의 힘도 강해졌고 디폴트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하더라도 우선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쓰고자 하는 각 주권국가의 목소리도 강해졌습니다. 1971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디폴트를 겪는 나라들이 수두룩한 것이 이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추세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국가가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서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쓰려는 의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추세는 전세계적으로 정부의 힘이 강해지는 방향과 일치합니다.
인류의 최고의 혁신과 발전을 이끌었던 금본위제 하의 국제적 분업체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붕괴되었습니다. 금이 화폐로써 불완전 했던 것이 아닙니다. 금본위제가 너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더욱 규모가 커진 국가간의 경쟁과 국가 내부의 권력 강화에 무제한의 돈을 쓰고 싶은 권력자들의 욕구를 금본위제가 채워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쟁을 빌미로 일시적으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결국은 브래튼우즈체제를 만들어 금과 통화와의 관계를 희미하게 했던 각국 정부는 1971년 이후 완전히 국가의 신용(?)에만 의지하는 법정화폐를 만들어 냈습니다. 각 국가의 정부 입장에서 독자적인 통화정책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던 겁니다.
다행이 국제무역과 분업체계가 부의 원천임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 세 가지 가치 중에서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가로막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환율의 안정성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기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여러 나라들의 통화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50년을 끌고 왔던 신용화폐제도가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장기국채금리는 이미 마이너스입니다. 아마 미국의 국채금리도 곧 0에 수렴할지도 모릅니다. 돈을 하도 많이 풀어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금리가 낮아지다 못해서 마이너스가 된 것입니다. 근대 이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려면 국가가 무엇을 포기하는 것을 제일 싫어할까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제 생각에 위의 트릴레마 중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막아서라도 환율의 안정과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지키려할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정부의 속성상 가장 버릴 수 없는 것이 돈에 대한 통제력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막는다는 것은 자유로운 물자의 이동도 막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 세계적인 무역과 분업체계도 붕괴됩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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