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예전 스팀잇에 올렸던 글입니다. 각 정부가 다시금 돈을 풀기 시작한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어 보여 연재합니다.
영국은 중세 이후 만성적으로 국왕의 권력이 강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중세기간 동안 꾸준히 부와 힘을 축적한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힘은 왕권의 향방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3세는 이런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권력기관인 의회의 힘을 등에 없고 내전 끝에 왕이 된 사람입니다. 이 사건을 명예혁명이라고 하지요. 윌리엄 3세는 댓가로 1689년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승인합니다. Bill 이라는 단어는 '계산서, 법안, 청구서, 증서' 같은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모두 당연한 권리와 원칙에 관한것입니다.
1628년 왕이 승인한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의 Petition은 '부탁, 진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왕에게 부탁하던 의회가 불과 60년 만에 당당한 권리를 주장해서 쟁취한 것입니다.
이 왕은 태생적으로 의회와 대결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정치기반도 약한 상태입니다. 내외의 적과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데 전쟁에는 항상 큰 돈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인 군주라면 이라면 강제로 세금을 걷거나 부자나 귀족을 약탈했을 겁니다. 하지만 윌리엄 3세는 그런행위를 하면 정권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처지였습니다.
국채를 발행해 보았지만 제대로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물주들이 윌리엄 3세가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겁니다. 윌리엄의 권력 기반이 불안하다고 본거죠.
위기에서 기회를 본 은행가가 있습니다.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terson)이라는 인물과 몇몇 금융가들은 절망적인 왕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위기에서 기회를 본 은행가가 있습니다.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terson)이라는 인물과 몇몇 금융가들은 절망적인 왕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영란은행을 설립하고 몇 가지 특권을 인정해 주는 대가로 왕에게 큰 돈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채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리와 정부의 대출을 관리, 독점할 권리입니다.
영란은행이 왕에게 100만원을 빌려줬다고 칩시다. 영란은행은 100만원어치 영란은행권을 발행해서 민간에 대출을 해서 이자를 받을수 있고 왕에게도 국채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의 신용을 담보로 돈을 창조하는 현재 신용화폐 시스템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다른 유럽의 왕들도 윌리엄 3세가 그랬던것처럼 무리한 전쟁과 사업으로 파산할 상황이 되어서야 천천히 영국의 길을 따라갑니다.
영란은행은 왕과 부르주아의 타협의 결과입니다.
부르주아가 망해가는 왕에게 이렇게 말한것과 비슷할겁니다.
왕 당신은 전쟁을 하던 왕궁을 짓던 의회(혹은 국민)의 눈치보지 말고 하십시오... 당신이 발행한 채권은 우리가 다 사주겠습니다. 그 대신 나라돈을 관리할 권한은 우리에게 넘기십시오.
이런 신용화폐는 일시적으로 돈이 엄청 많아지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국가 채무를 담보로 미래의 돈을 지금 땡겨쓰는것과 같으니까요. 이런 돈으로 왕은 마음껏 돈을 끌어다 이웃나라와 전쟁도 할 수 있고 품위유지도 할 수있습니다.
기존 방법으로 전비를 충당하는 이웃 왕들보다 훨씬 강력해 질 수 있죠. 결국은 영국식 방법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의 속박을 벗어난 권력자는 점점 힘이 커 집니다. 신용화폐로 막강한 상비군과 관료제를 운영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 말은 귀족들의 군사적-재정적 지지를 필요로 하던 봉건적 질서와 귀족의 힘이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왕은 강력한 귀족이 아닙니다.
부르주아의 힘도 점점 강해집니다. 금융업과 금융업을 바탕으로 한 무역과 생산에 주로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르주아이니까요.
부르주아의 힘도 점점 강해집니다. 금융업과 금융업을 바탕으로 한 무역과 생산에 주로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르주아이니까요.
신용화폐시스템이 주는 혜택을 받는 계층은 왕과 부르주아이고 신용화폐가 일으키는 반복적인 신용위기와 인플레이션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토지 생산성에 의존하는 귀족들입니다.
부르주아가 제공하고 왕이 휘두르는 돈의 힘은 유럽을 만성적으로 분열된 유럽을 몇개의 왕국으로 통합시키고 귀족과 종교인(중세시대의 기득권층의 대부분) 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이 시대를 우리는 유럽의 절대왕정기라고 합니다.
한번 시작된 불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영란은행은 이후 경쟁 은행들을 하나 둘씩 퇴출시킵니다. 자신이 일으킨 신용위기에서 은행이 위험해질때마다 개입할 권한을 얻어 최후의 대출자(지금 중앙은행의 역할 중 하나)의 역할도 차지하게 됩니다. 1800년에는 영국 유일의 법정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얻게 됩니다.
영란은행을 필두로 중앙은행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보이는 뚜렷한 추세는 은행과 권력자의 담합이 점점더 강력해 져서 사회 곳곳에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근대 이후 개인의 자유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념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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