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브라질의 룰라.. 10년동안 반짝이다. - 소득주도 성장 2편

타 블로그에 1년 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한국경제에 암울한 기운이 도는 지금 이 순간에 과연 최저임금 인상 같은 소득주도성장정책이 1년간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룰라의 등장과 브라질의 호황

룰라는 경제위기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고 있던 2003년 브라질에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룰라는 브라질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과 매우 흡사한 재정 및 경제정책을 실시합니다.
  • 부족한 사회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올려 소비시장을 활성화 하는 것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모든 연금의 하한액을 최저임금과 연동시킵니다. 결과적으로 60%의 연금생활자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연금을 보장받게 됩니다.
Bolsa familia 라는 빈민구제 정책을 펴서 빈민 소득을 직접적으로 보전해 줍니다. 이 혜택도 전체 인구의 1/4나 보게 됩니다.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Bolsa familia 대상을 확대하고 실업급여를 올려주고 지급기간도 연장해 줍니다. 이외에 다양한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합니다.
룰라 재임기간동아 브라질의 분배형평성은 뚜렷하게 좋아지고 다른나라에 비해 경제성장률도 견조해 집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룰라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결실을 거두는것 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다.

정말 소득주도 성장이 결실을 낸 것이라면 이 정책을 지속했던 후임자들 시기에도 브라질 경제는 더 견실해 져야 합니다. 하지만 두가지의 마법이 끝나자 마자 브라질은 예전처럼 남미의 병자(病者)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그간 브라질 경제호황은 룰라의 정책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이죠.
첫번째. 중국이 주도하던 원자재의 슈퍼사이클이 끝납니다. 브라질의 가장 큰 수출품은 원자재입니다.
두번째. 룰라의 소득주도정책에 따른 재정확대가 한계에 부딧치고 달러약세에 의지했던 가계부채가 급증하여 경제에 부담을 줍니다.
위 표는 원자재 가격의 폭락과 함께 브라질의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로 급격하게 돌아서는 것을 보여줍니다. 브라질 경제는 지금도 위태위태한 상태입니다. 과도한 부채 확대의 결과 브라질은 신흥국중에 미국의 금리인상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고 있습니다.
브라질과 비슷하지만 더 처참한 결과를 낸 나라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입니다. 유가 상승을 믿고 브라질보다 더 과도한 정책을 폈고 더 참혹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아실테니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룰라가 한 정책과 문재인정부가 하는 정책의 차이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룰라가 하던 정책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정권의 경제정책을 찬양하는 일부 정치인, 시민단체, 노조들은 10년전에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제정책을 찬양했던 자들입니다. 지금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라는 나라가 아예 없었던것 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해도 인지부조화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한국에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가 겪었던 잠깐의 달콤한 성장도 없을겁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악수를 상쇄할만한 대외적인 호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외 악재는 많습니다.
한국에 큰 수출시장이었던 중국도 위태롭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해결될 기미가 안보입니다. 한국 성장의 근간인 자유무역은 전 세계적으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제지표는 곧 불경기가 찾아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브라질은 소득주도성장을 시도해 볼만한 조건이 우리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내수비중이 대단히 높고 인구도 1억이 넘습니다. 브라질의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에 국내를 개발하여 성장할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는 기업의 경쟁력의 영향을 훨씬 덜 받습니다.
소득증대와 내수진작, 생산성향상과 경제성장이라는 선순환이 가능했다면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가 브라질이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수 있는가?

역사를 배우는 것이 "장수왕", "이순신장군" 같은 위인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서인가요? "한국인은 엄청 강했다." 같은 말을 통해 연약한 국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인가요?
누군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긴 역사적 검증이 있었던것은 아니지만 소득주도성장을 시도한 나라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이 나라들은 소득주도성장을 시행하는데 낭비한 시간과 자원을 산업을 재편하고 인프라를 확충하고 재정을 견실하게 하는데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이걸 배우지 못한다면 한국인도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설마 우리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같은 경우가 되겠어... 우리 한국인은 똑똑하고 근면해서 그런 나라 사람들과 달라..."
이런 것을 근거없는 확신이라고 합니다. 인지장애의 일종이죠.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은 한국인의 내재적 특징보다 외적인 요인이 훨씬 컸습니다.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서 많은것을 얻었고 배웠으며, 일본이라는 경제대국과 가까이 있어서 쉽게 아이디어와 기술, 자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교만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잘되면 잘된게 다 자기 능력때문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겠죠. 한국인의 마음속에 이런 교만함이 조금씩은 다 서려있습니다.
북한을 보면 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가요? 북한 사람의 사정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사정보다 더 나은가요?




어찌보면 브라질과 다른면이 있겠습니다. 한국이 빈부격차와 교육수준, 인프라 같은 면에서 브라질보다 나은점이 있다면 좁은영토와 한정된 자원, 비교적 적은 인구와 비정상적으로 대외의존도가 심해 대외발 경제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브라질만 못한점입니다. 결국 장단점이 있을 뿐 우리가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근거없는 우월감과 안도감을 버리고 보면 한국 경제는 언제든 IMF 이상의 파국적인 경기후퇴나 장기적인 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정말 다른나라 사람보다 났다면 누가 "우리는 달라서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어."라고 말해도 듣지 않을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달콤한 환상보다 현실적인 노고를 택할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경제성장과 내수활성화의 균형을 잡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의 예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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