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 냉혹한 국제질서의 본보기 ; 캐터펄트작전 - 4편


이 글은 타 블로그에서 1년 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1년 동안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관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세는 제가 그동안 두려워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사실상 항복합니다. 두 달도 안되서 프랑스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지는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독일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증언은 전쟁 초기 독일의 압도적인 전쟁수행능력에 타격을 받은 후 부터 프랑스 정치인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팽배했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가 지더라도 나름대로 선방해서 전쟁이 장기화 했다면 프랑스 지도층이 이렇듯 철저하게 투지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투지만 잃지 않았다면 영국과 미국의 권고대로 북아프리카 식민지로 정부를 옮겨서라도 끝까지 저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군이 단시간에 전쟁을 수행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정치인들도 용기를 잃게 되자 영국과 미국을 믿고 식민지로 넘어가서 끝까지 저항하기 보단 독일에 사실상 항복하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패탱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방송을 합니다.
"저는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라고 적에게 요청했습니다. 군인으로써 이런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린 것은 군의 상황이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럽에서 독일과 전쟁을 하는 곳은 영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영국 입장에서 프랑스의 항복은 한가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게 합니다.


영국입장에서 프랑스 해군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0일도 안되어서 프랑스가 항복하는 바람에 프랑스 해군 전력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을 뿐더러 객관적인 전력으로도 독일의 해군보다 우수한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마저 넘어간 상황에서 영국의 본토방위는 영국 공군이 독일의 공습을 저지하는 것과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독일의 상륙을 거부하는 것에 달려 있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 프랑스의 해군함정이 독일에 넘어가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캐터펄트 작전은 프랑스의 함정이 독일에 넘어가는 것을 무슨수를 써서라도 막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처칠의 저서' 2차 세계대전' 에서는 캐터펄트작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캐터펄트작전은 닥치는 대로 모든 프랑스 함대를 나포, 장악, 또는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다행히 상당수의 프랑스 해군함정이 영국본토와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영국 식민지에 기항해 있었습니다. 이런 배들은 비교적 사소한 마찰을 겪으며 영국이 손에 넣습니다.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 기항하고 있던 비교적 소규모 군함들은 미국이 억류합니다.
몇몇 함정은 독일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프랑스인들이 직접 파괴합니다.
툴롱항에 있던 군함들 [전함 3척, 순양함 7척, 구축함 15척, 어뢰정 13척, 슬루프선 6척, 잠수함 12척, 경비정 9척, 군수보조함 19척] 은 프랑스 군인들 손으로 자침됩니다. 프랑스의 마지막 자존심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알제리의 오랑의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프랑스 함대였습니다. 여기는 프랑스식민지여서 영국의 영향권 밖이었습니다.


영국은 계획대로 프랑스 해군함정을 통제할 수 없다면 파괴하기로 결심합니다.

영국 해군은 지브롤터에 정박해 있던 함대를 주축으로 제임스 서머빌 해군대장의 지휘하에 'H기동부대'를 오랑에 파견합니다. 오랑의 프랑스 함대제독 쟝술에게 다음과 같은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훌륭한 함선이 적국 독일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연코 끝까지 싸울 것이며, 우리가 믿는 것과 같이 우리가 승리한다면, 우리는 프랑스가 본국의 동맹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의 국익이 본국의 국익과 동일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공적은 독일이라는 것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의 위대함과 영토를 당신들에게 되찾아 줄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프랑스 해군의 함정들이 공통의 적에게 쓰여서 우리에게 저항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하에, 국왕 폐하의 내각(영국정부)은 본관(서머빌 제독)에게 현재 오랑의 메르 엘 케비르 항구에 주둔 중인 프랑스 함대에게 다음과 같은 절차를 제안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 (a) 우리와 함께 승리의 그 날까지 계속 독일과 싸울 것.
  • (b) 잔존 승조원들은 영국 항구로 회항하여 우리의 통제를 받을 것. 잔존 승조원들은 최대한 빠른 시내에 프랑스 본국으로 송환될 것입니다.
  • 위의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하신다면, 우리는 전쟁 종결시 함정들을 돌려드리거나 피해를 입은 함정들에 대한 응당의 보상을 해드릴 것입니다.
  • (c) 만일 귀하께서, 독일이 휴전 협정을 파기하지 않는 이상 이 함정들이 독일에게 저항하는 데에 쓰이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서인도 제도에 있는 몇몇 프랑스 항구로 함대를 보내어 이들이 우리 함대의 감독 하에 무장해제를 한 다음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의해 보관을 받을것. 승조원들은 프랑스 본토로 송환될 것입니다.
귀하가 6시간 이내에 확답을 주지 않는다면, 본관은 깊은 슬픔과 후회를 안고서 귀하께 귀하의 함대를 자침시키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만일 이 모든 요청을 거부하신다면, 본관은 국왕 폐하의 내각으로부터 귀하의 함대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통보드립니다.

위 내용은 나무위키의 번역이지만 글에 따라 조금씩 표현은 달라지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와 함께 싸우거나, 우리에게 배를 넘기거나, 배를 무력화 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장술 제독의 답변은 이런 내용입니다.


  • 어떠한 경우에도 프랑스 함대가 독일 혹은 이탈리아에 손에 들어가도록 하지 않을 것이며 무력에는 무력으로 대응하겠다.
통보시간이 지나자 영국함대는 프랑스 함대를 향해 발포를 합니다. 포격전은 10분정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일방적이었고 프랑스군 사상자는 1500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인명피해입니다.


평가

메르스 엘 케비르 해전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40년 7월 3일입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것은 6월 25일입니다.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탈한 지 10일도 안되어서 이전의 동지였던 프랑스를 향해 치명적인 공격을 한 것입니다. 항복한 프랑스가 미워서 한게 아니라 냉정한 계산에 따라 한 행동입니다.
대부분 이 사건을 영국이 프랑스를 배신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글이 많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영국의 캐터펄트 작전은 꼭 필요한 작전이었고 이런 작전을 신속하게 실행한 것은 영국지도층이 무능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혹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항복협정의 조항을 예로 들며 캐터펄트 작전이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불필요했다고 말합니다


  • 프랑스 함대는 지정된 항구에 집결하여 독일 및 이탈리아 해군의 감시 하에 무장 해제를 하며, 이들 함정은 전력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 - 휴전 조항 8조
히틀러가 재무장에서 폴란드 침공까지 거짓말한게 몇번인데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혹자는 쟝술 제독이 자신들의 기항지에서 무장해제 하겠다는 제안까지 했음에도 지체없이 공격했던 것이 너무 냉혹한 처사였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작전목표를 실행하는데 불확실성이 생깁니다.
  • 무장해제 하는 척 하다 안하면?
  • 위험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장해제하겠다는건지 협상을 다시해야 하나?
  • 확실하게 무장해제하는 것을 잠재적 적국항에서 어떻게 감시하나?
전쟁이 한치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위험부담을 안을 수 없는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수단으로 지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캐터펄트 작전은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어떤 나라든 안보위협 앞에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첫번째. 급박한 안보이익 앞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자국의 이익만 있을 뿐입니다.
미국은 캐터펄트 작전 직전의 영국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적국이 갖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무기를 협상을 통해서든 힘을 통해서든 무력화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지금 미국과 북한은 전쟁이냐 아니냐를 두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절대 남북정상회담처럼 감상적인 대화를 하는게 아닙니다. 미국은 말로 해서 안되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문재인 정부의 평화 아젠다를 끼워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 국가의 안보위협 앞에 감상적인 생각과 나이브한 상황판단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영국이 캐터펄트 작전을 실행하는 대신 "그래도 같이 싸웠던 나란데 어떻게 공격을 하겠어.. 일단 기다려보자" 라고 결정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영국인의 죽음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최소한 지중해에서 영국군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훨씬 고생했을 것입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오늘 열립니다. 남북한 철도와 도로연결부터 여러가지 화해정책이 의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잘 되면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종전협정을 하자는 환상적이 계획도 여론에 흘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깨지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래도 길 놓고 철도 연결하고 할 건가요? 국제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을 지원할 것인가요? 남북한만 따로 모여서 종전선언을 할건가요? 그런 비슷한 일만 벌여도 미국은 반드시 한국에도 해꼬지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말할때 마다 미국의 협상력을 깎아먹는 것입니다. 정말 평화를 원하더라도 협상단계에서는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해야하는것입니다. 우리가 평화공세를 벌일 때마다 미국과의 신뢰는 금이갑니다.

사실상 북핵문제에서 한국은 현실인식장애 환자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한반도 이해 당사자가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긴장하고 있는데 혼자서 종전선언이니 평화구상이니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협상이 너무 잘된다고 해도 북한과 미국이 왜 한국을 싱가폴까지 불러서 종전선언을 하겠습니까? 북한은 미국과 투샷받을 수 있는 기회고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홀로 누릴수 있는데요. 왜 깍두기처럼 문재인대통령을 불러서 공을 나누죠?
한국은 부디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합니다. 지금 한반도는 평화로 가는 감상적이고 따듯한 상황이 아닙니다. 한치라도 실수하면 큰 피해를 입는 일촉직발의 상황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우리 정부만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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