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의 문제점 ; 큰 정부를 경계하라.

타 블로그에 1년 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한국경제에 암울한 기운이 도는 지금 이 순간에 과연 최저임금 인상 같은 소득주도성장정책이 1년간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주 5일에 10시간씩 일해도 주 52시간이 안되는데 당연한 법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래 법에도 주당 노동시간은 최장 52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은 근로일에서 제외해서 주당 최대 68시간의 노동이 가능하게 해 놓았죠.
누가봐도 일주일은 7일입니다. 주당근무시간이 52시간이라면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52시간으로 봐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양측의 필요에 의해서 편법적이고 관행적으로 해 왔던 것을 법으로 못박아 못하게 한 것이 이번 노동법 개정안입니다. 이제 주 7일을 기준으로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하루 8시간씩 평일 40시간 일했을 때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삶의 질을 위해서도 생산성을 높여서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뭐 이리 말이 많을까요?


노동계약은 대등하고 독립적인 당사자 간의 쌍무 계약입니다.

대등하고 독립된 이라는 말에는 근대 사회를 형성한 신성한 힘이 있습니다. 대등하고 독립되지 않은 인간은 시민(市民)이 아니라 신민(臣民)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유도 권리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신하가 아닙니다. 자유와 권리를 가진 자연인이죠.
자연인이 자연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바로 계약입니다. 모든 계약과 마찬가지로 노동계약도 당사자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현실세계에서 원칙적으로 대등한 인간이 항상 대등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인간을 대등하게 만드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여러 조치가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약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중2병적인 소영웅적 사고에서 나온게 아닙니다. 강자에게 핸드캡을 줘서라도 인간 사이의 대등함을 유지하려는 큰 원칙에서 나온것입니다. 대등함이 없으면 견제와 균형이 없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사회에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 질식합니다.



결론적으로 대등하고 독립적인 두 인간 사이의 계약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경우는 두 인간 사이의 힘의 차이가 커서 한명에게 핸드캡을 주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 될 때 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말 사용자가 노동자에 비해 큰 힘을 갖고 있을까요? 영세 자영업자와 영세 자영업자에 고용된 노동자의 처지가 그렇게 다른가요?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곳이 수두룩한데... 일방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면서까지 노동자들이 일을 할까요?



어떤 법이 생겼을 때 당신의 자유는 그만큼 제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때문에 뭔가를 법으로 못 박을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법을 만들면 아래와 같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 예외적인 것이 불법적인 것이 됩니다.
  • 행정과 입법부의 권력을 비대하게 해 결국 시민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당신은 이미 사용자와 유연한 노동계약을 통해 바쁠때 열심히 일하고 한가할 때 장기간 쉴 수 있는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일년 내내 꾸준히 일하는 것으로 고정된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노동자와의 협의를 통해 성수기와 비수기의 노동시간을 조절할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당신은 더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인건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예외적인 노동계약을 불법적인 노동계약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건축사 사무실이나 IT관련 업체 같이 외주상황에 따라 성수기에 장시간의 작업이 필요하지만 비수기때는 놀아도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성수기에 좀 더 많이 일하고 비수기때는 해외여행도 하고 놀러다녀라는 계약이 사용자와 노동자간에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성수기때 주 6일 60시간 일하고 일한 것 만큼 일년에 2-3달 유급휴가를 주는 계약은 어떻습니까?
이런 계약에서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고 생산효율성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동계약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주 52시간 이상 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업종의 작업 효율성은 떨어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수기에만 단기 파트타임 근무를 늘리는 등 고용의 질은 더 안좋아집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행정부와 입법, 사법부의 권한을 비대하게 합니다.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사용자가 형사처벌까지 받습니다. 그렇다면 어떤것이 근로시간이고 어떤것이 아닌지 어떻게 정할까요?
정답은 행정부가 유권해석으로 정해주거나 사법부가 판례로 정해주거나 입법부가 콕 찝어서 법조항에 넣어서 정해줘야 합니다. 아래는 근무시간의 쟁점에 관한 기사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Q : 아파트 경비원, 고시원 총무처럼 업무 명령을 기다리는 대기시간도 근로시간인가.

A :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 돌발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이 대기시간도 쉬는 시간이 아니라 근로 중이라고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Q : 근무 중 쉬는 시간은 어떻게 정하나.

A : 근로기준법에는 4시간 근무하면 30분 쉬도록 돼 있다. 보통 8시간 근무에 대해 점심시간 1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인정한다.


Q : 사내교육과 워크숍, 세미나는 근로시간인가

A : 회사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휴일이나 퇴근 시간이 지난 뒤 교육이 이뤄지면 연장·휴일 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다. 또 효과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진행되는 워크숍이나 세미나는 근로시간으로 본다. 하루 8시간을 넘어서는 시간까지 워크숍이 진행된다면,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 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워크숍 중 진행되는 친목 도모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Q : 출장기간은.

A : 근로시간을 분명하게 정하기 힘든 경우라 보통은 8시간 동안 일한 것으로 본다.


Q : 회식과 접대 시간은 근로시간인가?

A : 회식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상사가 참석을 강요했더라도 그것만으로 회식을 근로계약상 업무로 보기는 어렵다.  업무 수행과 관련이 있는 제3자를 근로시간 외에 접대하는 경우, 사용자의 지시 또는 최소한 승인을 받아야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Q : 명절 휴일 근로는.

A : 총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 이하라면 연장근로는 아니다. 다만 휴일에 일한 부분은 휴일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 휴일근로 수당이 지급돼야 한다. 휴일 근로에 대해서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



Q : 일주일의 기준은 월~일인가.

A : 사업장별로 노사 협의로 정하는 단위 기간을 일주일로 정할 수 있다.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를 잘 지켰는지는 사업장마다 정해 놓은 단위 기간에 따라 판단된다.



Q : 재량근로제, 간주근로제, 유연근무제 등 탄력근로제 적용은.

A : 정부는 3개월 평균 주당 52시간씩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3월엔 주당 40시간씩, 4월엔 60시간씩, 5월엔 56시간씩 일했다면 3개월 평균 주당 52시간씩 일한 것으로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Q : 연휴가 있는 주 근무는.

A : 만약 월~수가 연휴라면 일하는 날은 이틀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 8시간 근무는 지켜야 한다. 8시간을 넘겨 일을 했다면 연장근로 수당이 붙는다.  회사에서 연휴 중에 하루는 나와 일하라고 했다면, 하루치 임금의 150%와 평일에 쉴 수 있는 유급휴일이 하루 생긴다.

주 52시간 근무제 Q&A

위 내용은 일부일 뿐입니다.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쟁점들이 다시 나올 것이고 이것을 해석해야 하는 정부기관의 영향력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어린애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어린애도 저렇게 부모가 모든 기준을 정해주고 따르라고 하면 안됩니다.



뭔 일 있을 때 마다 "정부"를 찾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정부는 서서히 다가와서 당신을 시민이 아닌 백성으로 만듭니다.


정부가 나대지 않아도 노동시간은 줄어들 것입니다. 법으로 노동시간까지 강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라가 부유해 지면서 삶의 질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기업은 급여는 높이고 근무시간을 줄여서 노동자를 유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의 증가입니다.
선진국이 될 수록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은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노동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으로 풀려고 했으니 부작용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일로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경직된 방식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졌습니다. 결국 이득을 본 것은 정부기관 뿐입니다.
대의제도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할 일은 근본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등함이 무너지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대 근무 가능시간까지 콕 찝어서 정해주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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