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빈 서판(Blank slate) :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에 대한 과학자의 반박





  1996년 뉴욕대학교 물리학 교수인 앨런 소칼은 과학의 객관성, 어찌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객관성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해체주의자들의 지적 사기를 폭로하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아무 의미 없는 글을 인문 관련 저명한 논문지에 투고했고 별다른 검증 없이 이 글은 그 저명한 논문지에 실렸다. 이들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학문연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이들에게 학문이라는 것은 지적인 말장난을 통해서 자신의 지적 허세를 만족시키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이들은 이 세상에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객관적 진실도 없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도덕도 없으며, 당연히 인간이 타고나는 본성이라는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 없으니 자기들이 아무 말이나 떠들어도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보편적인 도덕이 없으니 자기들 멋대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이 없으니 자기들이 사회제도를 조종하여 다른 인간을 본성까지 통제하고 싶다는 뜻이다.




빈 서판의 요지는 표지에도 드러나 있다.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저자는 주장은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인간은 모두 비슷한 백지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라는 근대 계몽주의적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저렇게 전문적이고 두꺼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근대적 합리주의의 안티테제로 문과생들에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이념적 평등주의, 객관적 사실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반박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가장 근원에는 인간이 모두 평등한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근대 계몽주의적 미신이 있다. 따듯하게 들리지만 이런 가정에는 인간과 사회를 어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에 의해 다시 쓰고 싶다는 희망이 묻어있다. 근대이전의 사회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태어난 계몽주의이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그 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과격한 PC주의로 계승되었다. 빅토리아 시대로 알려진 근대문명에 대한 시기와 원망을 품고 종교를 대신해 학문적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과학적 합리주의는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美에 대한 감각, 도덕적 원칙에 대한 합의까지 인간 문명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일맥상통한다. 소칼이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주의자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망신 주는 방식이라면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핑커는 근거와 논리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차이는 있다.

인간은 뛰어난 사회적 설계자의 의도대로 변형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찰흙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상당 부분 태어나면서 결정된다. 사회적 교육뿐 아니라 부모의 가정교육과 양육방식도 타고난 본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원시사회를 공동체적 가치가 살아있는 이상적인 사회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원시 부족사회의 남성 중 20~60%는 타 부족에 의해 살해된다. 납치혼과 만성적인 자원 부족이 일상적이고 불평등과 계급이 존재한다. 원시사회는 ‘고상한 야만인’의 사회가 아니라 척박하고 거친 사회일 뿐이다.문화적 상대주의는 허구이다. 인간은 보편적인 도덕관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편적인 미(美)에 대한 감각도 공유한다. 인간의 도덕과 미적 감각은 각각 문화마다 다른 사회화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인종차별, 폭력성, 등)은 잘못된 사회적-문화적 분위기에 백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오염되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것이다. 위 책에 들어있는 주장 중 몇 가지다. 거부감이 든다면 직접 책을 읽고 저자가 밝힌 근거와 주장의 타당성을 본인이 판단해 보길 바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인간의 본성은 모두 비슷하며 인간의 폭력성은 사회적, 혹은 성장 과정의 폭력성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교도소의 흉악범도 사실은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졌지만 불우한 환경에 의해 본성이 오염된 사람일 뿐이다. 어찌 보면 이들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을 재교육시키면 정상적으로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의 가정은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어느 사회에나 특정 비율로 존재하고 성장 과정과도 상관성이 크지 않다. 어떤 재교육을 통해서 이들의 본성이 바뀐다는 근거는 없다. 서구에서는 이런 재교육을 통해 형기를 줄인 정신병질자의 재범사례가 넘쳐난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당신의 선입견과 편견, 심지어 도덕적 판단과 다르더라도 근거가 가르키는 것을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실에 근거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한 아름다운 말처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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