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사는 사회가 인간 각자의 욕구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계획에 의해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도 인간의 도덕적 원칙에 따라 이성적으로 계획된 제도의 통제하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열광한다….
여기에 모든 사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인간은 거대한 사회를 문제없이 조율할만한 판단력과 도덕성이 없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판단력, 도덕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회가 완전히 망가지는 순간까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위 책은 1951년에 쓰였다. 공산주의 소련이 1930년대 전 세계의 대공황과 상관없이 10%씩 성장하던 시기이다. 소련은 무서운 생산력과 의지로 나치 독일을 무찔렀고 터키, 한반도, 동유럽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끝장내기라도 할 듯한 기세를 보였던 시기이다.이런 시기에 조금이라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보다 인간의 이성적인 계획과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공산주의에 호감을 느꼈을 그거란 점은 이해가 간다.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국가들은 너무나 취약하고 부패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소련은 너무나 활기차고 공정한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위 책은 이런 시기에 쓰인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적인 찬가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유행처럼 되살아날 때, 주목을 받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많은 사람이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있다. 휴버먼이 이 책에서 자본주의에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더욱 끔찍한 오답이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1950년도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뛰어난 지성에 대한 감탄과 함께 그런 지성인이 더 잘못된 해법을 옹호하게 된 시대적 사회적 배경도 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선명한 단점을 이해함과 동시에 유일하게 잘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으로써 자본주의의 적응력과 효율성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소개 글에 나오는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이니 "일생을 건 통찰"이니 하는 낯 간지러운 격찬만을 늘어놓는 것은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없다. "공산당선언"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도의 책을 서재에 꽂아놓고 지적 허세에 빠진 것뿐이다. 누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불평등, 주기적인 공황, 비효율, 냉혹함…….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휴버먼의 논지는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리버먼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느라 자본주의의 적응력과 자정 능력을 극도로 과소평가했고 인간의 중앙집권적 계획에 의해 돌아가는 체제가 가진 위험성은 전혀 보지 못하였다. 이 사람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필멸할 수밖에 없는 부패하고 잘못된 제도이고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의 우월함을 보여줄 실패가 불가능한 제도였다.
불평등, 주기적인 공황, 비효율, 냉혹함…….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휴버먼의 논지는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리버먼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느라 자본주의의 적응력과 자정 능력을 극도로 과소평가했고 인간의 중앙집권적 계획에 의해 돌아가는 체제가 가진 위험성은 전혀 보지 못하였다. 이 사람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필멸할 수밖에 없는 부패하고 잘못된 제도이고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의 우월함을 보여줄 실패가 불가능한 제도였다.
항상 그렇듯 흑백논리와 확증편향으로 정답을 고를 수 없다. 휴버먼이 자본주의를 비판한 기준의 절반만큼의 기준으로 소련과 공산주의를 봤다면 그 속에 싹튼 무서운 전체주의와 인권탄압, 비효율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스탈린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호의적인 서방의 지식인들을 "쓸모있는 돼지"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탈린은 이 책을 가장 쓸모있는 돼지가 쓴 책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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