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 대공황 원인에 대한 킨들버거의 해석

 


 

전간기 대공황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 왜 이리 오래 가고 결과가 파국적이었는지에 대한 이론은 여러 가지다. 미국의 잘못된 통화 정책 때문으로 보는 통화주의적인 입장부터, 금본위제의 잘못된 적용, 디플레이션 실책, 장기간의 침체, 구조적 불균형까지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킨들버거는 한가지 이론을 추가한다. 바로 전간기에 국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할 나라가 없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역할을 떠맡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

  • 상대적으로 개방된 시장을 유지하여 불황기에 상품의 수요처가 되어주어야 함
  • 안정적인 장기 대부를 공급해야 함
  • 안정적인 환율시스템을 유지
  • 각국의 거시경제 정책을 조율할 능력
  • 금융위기에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할 것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영국이 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면 전간기에 영국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1931년 오스트리아 은행 위기 때 사실상 끝났다. 미국은 이런 역할을 계승할 능력이 있었으나 의지가 없었다. 킨들버거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간기에 이런 역할을 영국은 할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의사가 없었다. 이것이 대공황의 원인과 심각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설명이다. 국제 경제 시스템에 뿌리 깊게 잠복해 있는 불안정성과 안정자 역할을 해줄 나라의 부재에 있었다. p400

 

미국은 개방된 시장경제를 유지하기는커녕 스무트-홀리법 같이 선제적이고 광범위한 관세법을 통과시켜 여러 나라의 무역보복을 유발하고 경제 블록화를 강화하였다.

 

안정적인 장기 대부를 관리할 경험이 부족해서 국제 대부와 국내 대부가 같이 증가하고 감소했다. 이렇게 하면 불황과 호황이 중화되는 게 아니라 더욱 증폭된다. 안정적 환율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금융, 경제정책의 공조를 이끌기보다는 국내문제에 몰입하여 일방적인 조처하기 일쑤였다. 국제 금융-경제 공조를 위한 런던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일방적으로 발표한 금본위제 이탈과 루스벨트 대통령의 공격적인 논평이 그 예이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은 위기에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실제 1929년 대공황을 본격화한 미국의 주가 폭락 이전에 해외 대부를 급격히 줄인 것은 제삼 세계와 유럽의 경제와 환율 불안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런 킨들버거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아이켄그린의 책에서는 이런 헤게모니 안정론을 부정한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영국이 리더십을 발휘한 게 아니라 국제적 협력이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전간기에도 누군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다기보다, 전전에 살아 있던 국제적 협력이 사라진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전간기에 내려야 할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대공황을 유발하고 악화시켰다는 점에는 견해가 같다. 전간기에 각 나라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협력하기보다는 각자도생하려 했다. 그 정치-경제적 결과는 2차 세계대전이다.

 

 

 

 

현재는 어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 기간 위 다섯 가지 역할을 수행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지금 그 역할은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국내외의 감정적이고 정파적인 열광과 비난을 제쳐두고 보자면, 미국이 손해(?)를 보고서라도 국제적인 역할을 떠맡는 것에 반대하고, 국내문제에 치중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다. 미국이 이끌었던 개방경제가 만들어낸 흐름에서 소외된 미국의 노동자층과 중산층의 불만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미국의 고립주의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고립주의적인 움직임이 더 위험한 이유는 고립주의-국제주의의 갈등이 인종과 계층, 경제적 이해관계, 종교적 신념에 따라 미국을 첨예하게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은 작년 미국 대선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런 정치-경제-인종적 단층선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분열된 나라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외 문제에 힘을 투사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중국은 약진하고 있다. 중국의 낮은 호감도와 정치적 야만성을 제쳐두고 보자면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예상보다, 심지어 중국 자신의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줄어드는 격차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군사적이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새로운 강국의 등장은 투키디데스의 함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지에서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영국은 EU를 떠나고, EU 내에서도 독일과 변방 지역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 이란은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결국, 세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전간기를 닮아가고 있다. 2008년과 2020년 위기를 발권력을 동원한 각자의 근린궁핍화정책으로 견디는 상황에서 국제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견딜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금리를 조금만 올려도 거대한 경제충격이 올 것이고, 계속 제로금리를 유지하면 인플레이션이 오리라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외줄 타듯 국제 경제 상황을 조율할 강력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암울한 상황이다.

 

킨들버거는 마지막에 전간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국가나 실질적인 권한과 억지력을 가진 국제기구가 경제문제를 조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이다.

 

세계 경제가 전간기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4차산업혁명은 이전 인간의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경제적 혁신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전 세계가 기적적으로 화합하고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간기의 변주곡이 연주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개인의 경제적 계획을 세울 때 전간기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