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이라는 것도 익숙한 학문은 아니지만 라드부르흐 또한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우선 라드부르흐는 저명한 법철학자이다. 특히 일본의 법학계를 거쳐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법철학은 법의 현실적 적용과 문언을 넘어서 법의 근본적인 가치와 원리를 찾는 학문이다. 라드부르흐의 말을 따르자면 법을 가치 평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법의 현실을 가치 중립적으로 연구한다면 그건 법 과학이고, 가치 초월적으로 법을 평가한다면 그건 종교철학이다.
라드부르흐가 살아있을 때, 이미 과학과 과학적 실증주의 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그 영향력은 법학 분야에도 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법이 물리학이나 공학처럼 실증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위의 책이다.
라드부르흐에 따르면 법철학, 즉 법의 근본적인 원리와 가치는 귀납적으로(즉 개별적인 명제로부터) 증명되거나 원칙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여러 법의 공통점을 비교해서 원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근본적인 명제에서 연역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즉 실증적인 연구는 법 과학일 뿐 법철학일 수 없다.
우선 법의 근원을 자연, 신(神), 이성, 인간의 본성과 같이 변할 수 없다고 보는 어떤 것에서 찾는 걸 자연법주의라고 한다. 어떤 법을 보고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느낀다면 그건 어떤 법이 내가 가진 법의 근원적 감각과 맞지 않는다는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법의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을 법실증주의라고 한다. 존 오스틴의 아랫글이 법실증주의적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법이 좋은 법인지 나쁜 법인지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설령 우리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현실로 존재하는 법 만이 법이다.
『법학의 영역』 The Province of Jurisprudence determinded, 157쪽
자연법사상과 법실증주의의 충돌은 중요한 법철학적 의미가 있다.
라드부르흐는 법의 그 근본적 요소를 정의, 합목적성, 안정성으로 본다. 이 중 하나만 없어도 법의 근본을 결여한다. 정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합목적성은 법의 목적에 적합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안정성은 법의 일관성과 안정을 통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위 세 가지 요소는 자유와 평등처럼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정의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도덕적 가치의 총합이다. 그 때문에 각자의 생각에 따라 기묘하고 기괴한 것에도 정의의 옷을 입힐 수 있다. 정의를 과도하게 내세우는 누군가는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다수에 강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정의만을 내세우면 법은 물론 사회의 안정성은 사라진다.
안정성을 과도하게 내세우면 "법은 법이니까 법이다."라는 명제에 궁극적으로 다다른다. 법의 정당성보다 법의 현실성만 내세우다 보면 결국 상식에 맞지 않아도 법이니까 따르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그렇다면 법은 어떤 가치를 보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통치(혹은 억압)의 수단이자 기술일 뿐이다.
따라서 위 세 가지 요소는 법안에서 균형을 맞추고 서로를 견제해야 한다.
사회를 보는 관점에 따라 개인주의적, 초 개인주의적, 초 인격적인 가치관이 존재한다. 각 입장에 따라 위의 세 요소를 법에서 다른 비중으로 다루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개인주의야 서구적 개인주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초 개인주의는 민족주의를 포함해 다양한 집단주의를 말한다. 초 인격주의는 인간의 당면 이해관계를 넘어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카톨리시즘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연법-법실증주의의 차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개인주의, 초개인주의, 초인격주의)에 따라 법의 세 요소의 비중을 다르게 보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함으로 법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생긴다. 각 관점에 따라 소유권, 계약, 혼인, 상속, 형법, 사형, 사면을 어떻게 보는지 소개하고 라드부르흐 자신의 관점을 소개한다.
나치의 긴 박해를 받고 해방된 말년에 라드부르흐는 어떤 책을 쓰던 중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완성하지 못했던 유작에는 법이 법답지 못했을 때 대한 분노가 드러나 있다.
정의가 한 번도 추구되지 않은 곳,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이 실정법의 제정에서 의식적으로 거부되는 곳에서는 그 법률은 단지 '부정의 한 법'만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법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다.
라드부르흐 저, 최종고 역, 『법철학』 290p
라드부르흐는 이런 법이 나타난 것을 막지 못한 이유로 법실증주의적 태도를 비판했다. "법은 법이니까 법이다"라는 명제는 법에 근본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정의가 파괴되는 것에 무력했다. 법의 가죽을 뒤집어 쓴 폭력이 난무할 때 모든 국가기관과 사법기관은 침묵했다. 오히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만이 종교에 기반한 정의관에 따라 나치에 저항했다. 너무나도 부정의 한 법은 법이 아니다. 근본적인 정의에 대한 고려가 없이 법을 실증적으로만, 기술적으로만 다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체험한 것이다.
법은 전문가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알아듣지 못할 용어가 난무하는 분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법은 싫든 좋든 우리 옆에 있다. 최소한도의 법 상식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하다. 자기의 권리만을 맹렬하게 주장하거나 사회생활에서 샛길을 발견하려는 이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세상을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기 위해서이다. 그런 면에서 법의 근본을 고찰하는 이 책은 법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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