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 한스 켈젠의 상대적 정의론

 


정의에 관한 책은 여러 가지가 나와 있다. 각자 여러 가지 기준과 방법으로 정의(正義)를 정의(定義) 내리려 한다. 역사상 유명한 철학자와 현자들이 이 개념에 매달렸다. 이들의 노력이 성공했다면 이런 책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의 추상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여기 켈젠이라는 법철학자의 대답을 들어보자.

이 책은 60페이지 정도의 짧은 내용이다.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절대적 기준으로 정의를 규정할 방법은 없다. 역사에 따라 정의의 개념은 변하는 유동적이다. 그 가치서열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수도 없고, 어떤 정의관이 보편타당하다고 입증할 방법도 없다. 이성적 사고로 유추해 낼 수도 없고 신이나 인간의 본성에서 찾아낼 수도 없다. 

정의는 오로지 주관적으로 추구하는 이해관계의 충돌 문제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한쪽을 희생하여 한쪽을 만족시키거나 양 이해관계를 절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각자의 상대적 정의를 준수하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관용이고, 사상의 자유이고, 학문의 자유이다. 또 이를 실현할 수단으로써 민주주의이다.

 

 

 

정의에 관한 상대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정의관을 고수하더라도 상대방에 관용을 가져야 한다. 정의라는 거창한 개념이 사실 이해충돌의 산물이라는 점, 즉 자신이 가진 정의의 개념이 사실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다른 정의관을 존중하는 게 한결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 알 수 없다. 그 답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의 영역이 아닌 신비와 비밀의 영역에 있을지 모르겠다. 단 절대적인 정의는 확실히 틀렸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절대적 정의와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에 말했듯 역, 관용과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의관은 부정의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의를 독점한 듯 행동하는 집단과 사람 중 정상적인 사람이 있던가? 깊은 통찰이 필요 없이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P.S.  한스 켈젠은 특히 관습적, 자연법적 근원에서 정의를 찾을 수 있다는 자연법적 정의론에 대해 특히 거부감을 표현한다. 그가 법실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는 근본적으로 절대적인 정의란 없고 법은 입법자의 의지로 본다. 실제로 그는 "정의는 법적인 것, 정당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용어"라고 말한바 있다. 정의의 실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냉소가 담긴 표현이다.

그가 법실증주의의 매운맛 버전인 나찌 정권하에서 20년 넘게 핍박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말년에 쓴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바라는 상대적인 정의에 대해 관용과 자유라는, 어느 정도 관습과 자연법에 가까운 가치를 말하는 것은 내 눈에는 아이러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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