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올해 대한민국에 일어날 지정학적 위험-1편 ; 개론

 


우크라이나 사태는 점점 더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이 전쟁이 가장 복잡하고 위험하게 전개되는 상황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러 나라가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국제전이 되는 것이다. 점점 더 잔혹한 무기와 전술이 사용되고, 더 많은 난민이 생기며, 인도주의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장면이 세계의 뉴스에 지속해서 보도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토와 러시아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래 내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극도로 악화되지는 않는다는 가정 아래, 올해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지정학적 위험이다.



임박한 북한의 ICBM 발사가 일으킬 퍼펙트 스톰

머지않아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를 핑계로 ICBM을 발사 한다. 북한의 도발에 만성화된 한국인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북한의 도발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가 핵무기도 모자라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투발수단을 갖는 것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정면으로 침범하는 것이다. 중거리 미사일 정도를 시험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2017년 북한이 ICBM 발사시험을 했을 때 미국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해 보면 된다. 미국은 진지하게 군사작전을 고려했고 미 행정부 인사들은 쿠바 미사일 사태 때 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다.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말했듯, 정말 전쟁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크라이나에 대량 학살이 일어나는 것보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적대적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이 미국에는 훨씬 큰 위협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지금 미국의 사활적 이익은 단 두 개뿐이다. 중국의 초강대국화를 저지하는 것과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확산을 막는 것이다. 북한은 슬금슬금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건드리고 있다. 북한은 이렇게 하면 미국이 이른바 "핵 군축"이라는 대북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판이다. 북한의 압박에 굴복해 협상에 나서는 일은 미국이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오히려 미국은 무력 사용에 대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북한의 핵무기와 핵 투발수단은 선제 공격으로 확실히 무력화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커다란 자기애적 손상(Narcissistic injury)을 받았다. 사태가 위에 말한 최악의 상황으로 간다면 미국의 상처는 더욱 커 진다. 자존심 상한 사람은 더 편집적이고 폭력적이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북한의 저강도 도발

한국인 사이에도 세상을 보는 시각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가지 진실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세상이 아무리 약육강식의 정글일지라도 최소한 한 국가의 주권과 영토는 공통된 규범과 조약으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조차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믿을 것은 자국의 힘뿐이다. 이미 한국인의 70%는 독자적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 세계를 더욱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집단안보 체제나 동맹에 의존하더라도 자신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 것이다. 

윤석렬이 당선 후, 북한은 저강도로 군사도발을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한국 정권이 들어설때  북한이 항상 하는 인사 비슷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북한의 도발을 관대하게 봐줄 사회 분위기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가해도 미국이 막으면 한국은 제대로 된 보복조차 하지 못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미국은 당시 북한의 핵무기와 투발 능력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었다. 즉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현실은 냉정하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이 습관대로 다시 저강도 도발을 한다면 상황이 위험해진다. 이런 행동은 미국에 기회와 명분을 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을 무력화하면서 땅에 떨어진 미국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와 명분이다. 이런 점에서 다음번 북한의 저강도 도발이 미국에 의해 오히려 확전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무력으로 응징에 나서는 상황에서 대량 인명피해를 감수하고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투발 수단을 무력화 할 만큼 충분한 타격을 하지 않는다면 2차 세계대전 후 핵무기가 처음 사용되는 곳은 이곳 한반도일 수도 있다. 끔찍하지만 냉정하게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면서 상징적이고 어설픈 공격을 하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 문제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면 침공하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이와 비슷한 노골적인 행보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게 아니더라도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저지할만한 군사력(핵무장이나 최첨단 미국 무기의 대량수입, 효과적인 대량 보복수단의 확보)이 건설될 것 같으면 중국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의 대만 침공은 올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만성적인 고령화 문제, 인도와의 갈등(초강대국 급의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부상할 것이 거의 확실한),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위협할만한 내부 경제사정, 미국과 서구의 대(對)중국 포위전략으로 산적한 문제가 있다. 이런 사정으로 중국이 장기적으로 미국을 위협할만한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나마 앞으로 몇년간이 중국과 미국의 국력의 격차가 가장 좁혀지는 순간이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 중국의 기회의 창은 점점 닫히고 있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며 응전태세를 시험하겠지만 중국도 대만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시점에서 대만을 봉쇄하고 최종적으로 대만을 점령하려 할 것이다. 최근 075급 강습상륙함을 포함해 대만 섬에 상륙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물론 중국은 이번 러시아 사태에서 서구의 일치된 경제제재의 무서움을 봤다. 끈질기게 저항하는 나라를 점령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봤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군사적으로 대만에 비해 훨씬 약체이고 바다로 보호되지도 않는 나라였다. 대만을 점령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난제이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 보고서도 침공을 결정했다면 중국은 개전과 동시에 모든 전력을 단시간에 쏟아붓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말하듯 이런 일이 일단 일어나면 미국,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는 확실히 참전할 것이고 잘못하면 한국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려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미군기지를 선제 타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군 기지를 노렸다고 해도 자국 영토를 공격받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제한적이더라도 한국도 전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 있어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눈치껏 행동하고 중국도 쓸데없는 짓을 안하는, 현상이 유지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북한이 ICBM 발사시험을 하고 이를 실전배치할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서태평양의 미국 군사 거점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도 고도화할 것이다. 문제는 아마 북한에서 터질 듯 하다.



지정학의 피해자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정학적 게임의 희생자이다. 지정학적 응력은 미국과 서방, 러시아가 만들었다. 그 단층선 위에 우크라이나가 서 있었다. 그 단층선 위에서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는 잘못된 결정을 반복했다. 만성적인 갈등과 부패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에 걸맞는 극단적인 파시즘이 창궐하였다. 

우크라이나에는 2014년 이전에 자신을 러시아계라고 밝힌 사람, 즉 러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18%에 육박했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0%가 넘었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모두 모국어라고 설문에 응한 사람까지 합치면 50%가 넘었다.(각주 1) 

러시아계가 산업계와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만큼 출판과 언론, 학계에서 사용되는 비중은 우크라이나어보다 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 러시아어와 다른 소수민족의 언어를 공문서, 교육, 언론, 상업광고까지 중요 부분에서 사용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법을 제정하여 2019년 시행했다. 3년 이하의 처벌조항까지 넣었다. 역겨운 법이다. 우크라이나 "민족"만을 당원으로 받고 "요제프 괴벨스 정치 연구소"를 부설기관으로 든 파시스트 정당이 주도한 법이다.

2014년 오뎃사에서는 우크라이나 극우 파시스트들이 러시아계 국민을 공공연히 단체로 린치했고 린치를 피해 도망간 건물에 불을 질러 40명 이상을 살해했다. "아조프 연대" 같은 극우 파시스트 민병대가 러시아계 주민에게 저지른 잔혹행위는 서구 언론에 절대 보고되지 않았다.

유로마이단 혁명이라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은 관용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탄생시킨 게 아니다. 나찌와 가장 닮은 괴물같은 국수주의자와 파시스트가 날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이다. 

한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힘으로 억압하는 러시아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선량한 피해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크라이나는 위험한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서 최소한의 관용을 보여주는 정부는 커녕,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정부조차 갖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정치인을 욕할 필요가 없다. 2014년 이후 정치인은 이른바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로 뽑혔다. 그 나라 국민이 뽑은 것이다. 그리고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가장 막장이었다. 약자가 선한 게 아니다. 그리고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값싼 동정과 러시아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스스로에게 어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얕은 자존감을 보상할 수도 있다. 부질 없는 짓이다. 한국인은 지금 누구를 동정할 상황이 아니다. 다음에 터질 가능성이 제일 높은 지정학적 단층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트리거를 지금 북한이 건드리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동북아시아는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면서 경제적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유럽처럼 퇴보하고 있거나 미국처럼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앞으로 몰아칠 시련 이후 더 강력하고 부유한 곳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이겨낼 혼란이 없으면 사회는 천천히 붕괴한다. 한국이 지금의 산업화된 선진국이 된 이유는 IMF를 극복하며 사회와 산업, 경제를 일신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올해의 위험에 대비해야 할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써 보려 한다.


각주 1, 정영주 (2014).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의 사용 현황과 지위에 관한 연구. 노어노문학, 26(2),55-8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