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우크라이나 전쟁 예상(2022년 3월 20일); 전쟁의 장기화

 


러시아의 공세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돈좌(頓挫)된 상태였다. 키예프를 포위한 러시아군은 최근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18일에는 아예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분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에 나서고 있다. 헤르손과 미콜라예프 부근에서 점령 중인 러시아군을 몰아내었다. 모든 면을 고려할 때, 러시아는 심각한 인적-물적 자원 부족을 겪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가 있고, 그중 내 생각도 밝히려 한다. 미리 말하자면 지금은 전쟁이 마무리되는 소강기가 아니라 확전이 우려되는 가열기이다. 지금 현재의 소강상태를 보고 상황을 오판해선 안 된다. 다음은 가능한 전쟁 진행 시나리오이다.



1. 우크라이나-러시아 평화조약 체결 및 종전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이다. 러시아가 더 이상 전쟁 수행능력이 없기 때문에 푸틴의 체면(?)만 세워주면 적당히 정신승리를 하며 철군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합의하기 힘든 영토 문제가 있다는 점과 러시아가 물러설 공간이 없어졌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중립국화하고, 군사력을 상당 부분 해체하고, 극우단체 몇몇을 해산하는 문제는 급한 상황에서 양국이 일단은 합의할 수 있다고 쳐도 실제로 유지될 수 없는 약속이다. 이런 식의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가 전후 재건 등의 이유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방과 밀착할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NATO와 EU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이를 중립이라고 볼 수 없다. 비무장화 수준으로 군사력을 해체한다는 것은 검증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감정이 극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탈나찌화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단체를 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지킬 수 없거나 지키는지 확인할 수 없는 약속을 믿고 러시아가 물러서길 바라는 것이다. 자기가 벌인 일이 있는데 우크라이나가 어떤 앙심도 없이 위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을 리 없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도네츠크-루한스크 영토 문제이다. 처음부터 푸틴은 이 지역의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개전했다. 이 지역의 독립, 최소한 자치를 확보하지 못한 종전은 푸틴이 받아드릴 수 없다. 역으로 이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이를 받아드리고 종전을 한다면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확실히 실각할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섬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암석인 독도를 두고도 산업화된 두 나라가 첨예하게 갈등하는 것을 봐도 영토 문제가 얼마나 예민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하물며 지금 서로를 죽이고 있는 교전 당사자들이 영토 문제를 쉽게 합의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만약 기적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하자. 서방과 미국이 이를 순순히 받아드리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리 없다. 최근 바이든은 푸틴을 전범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번 전쟁에서 전쟁범죄가 있는지를 조사하여 기소할 태세다. 종전 후에도 푸틴과 전쟁을 수행한 핵심 인사를 전범 혐의를 씌울 것이 확실하다. 이 말은 푸틴과 핵심인사들은 러시아 영토 외 어디에서라도 체포되어 헤이그로 압송되어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러시아에서 권력을 잃는다면 자국에서도 체포되어 압송될 수도 있다. 푸틴과 전쟁 지휘부는 이를 악물고 러시아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는 길 밖에 없다.

이미 러시아의 재래식 군사력이 얼마나 종이호랑이였는지 만천하에 들어났다. 그 재래식 전력마저 대부분이 이번 전쟁에서 소모되었다. 이를 다시 재건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이전보다 러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위협에 훨씬 취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 전쟁을 마무리 할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음의 전쟁 목표와 유사한 결과를 관철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만약 이런 식으로 종전이 된다고 해도 이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다. 러시아는 다시 전력을 재정비하여 10년 안에 우크라이나를 재침공할 것이다. 애초에 전쟁을 불러왔던 지정학적 위험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2. 러시아에서 푸틴 실각 후 친서방 정권 탄생

푸틴이 실각한 후 러시아의 새로운 정권이 종전 조건을 대폭 양보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한다는 시나리오이다. 이는 어떤 근거도 없는 서방 언론이나 지도자의 바람에 가깝다. 장기간의 독재를 받은 나라는 생각보다 관성이 있다.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푸틴 정권이 몰락한다고 해도 2-3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서방의 봉쇄와 전시동원체제를 견디다 못해 러시아 국민이 폭발한다고 해도 최소한 수년은 걸릴 것이다. 



3. 러시아의 전쟁동원체제 가동과 장기전 수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패배시키기 위해 국내외 자원을 총동원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는 시나리오로 나는 러시아가 이렇게 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의 정전협정은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의지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동원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기만전술이라고 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일주일 이내에 마무리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푸틴의 생각보다 훨씬 질이 떨어졌고,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는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고, 서방은 예상보다 강력하고 통일된 대응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주변에 모아둔 병력과 자원은 모조리 소모했다. 그 결과 일주일 전부터 공세는 종말점에 이르렀고 지금은 우크라이나군의 전방위적인 반격을 받고 있다. 이 상태라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자력으로 국경 밖까지 내쫒을 수 있을 듯 하다. 탄약과 식량, 연료를 보급받지 못하는 군대는 싸울 수 없다. 지금 러시아군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는 단순히 보급로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단절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러시아에 물자 자체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국가의 자원을 총 동원할 수 밖에 없다. 더는 '특별군사작전' 운운하며 제한된 자원과 병력만으로 완결할 수 있는 작전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러시아는 전력을 다해서 키예프와 주요 도시를 점령하거나 파괴하고, 서방의 군사지원을 차단하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태까지 몰아붙여야 한다.

교착된 전황을 돌파하기 위해 푸틴은 동원할 수 있는 국내외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우크라이나에 집어 넣을 것이다. 러시아는 병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시리아, 체첸, 압하지아 지원병을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벨라루스가 푸틴의 압박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한달 안에 벨라루스도 참전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정예 지상군은 이미 거의 소모되었다. 이제 2선급 병력이라도 동원할 수 밖에 없다. 거의 소모된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치장 물자도 모조리 꺼내올 것이다.

서방의 군사지원을 차단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어제 러시아는 초음속 순항미사일 킨잘을 우크라이나에 처음 사용했다. 주요 군사시설을 공격할 목표라고 해도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서방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 서방의 방공망으로 막을 수 없고 핵무기도 장착 가능한 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NATO와 EU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못하게 위협하려는 목적이다. 앞으로 전쟁이 장기화하면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것이 확실하다. 러시아는 이미 서방을 위협할 재래식 군사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서방을 위협할 군사적 수단이 핵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도 전시동원체제를 선언하지는 않더라도 이와 유사하게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데 자원을 집중할 것이다. 현재 인도는 확실히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와 경제 교류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러시아를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중국은 앞으로 러시아에 군사지원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무너지거나 우크라이나에 패배하는 것은 중국에게도 악몽이기 때문이다. 푸틴이 실각하여 러시아가 친서방화 되거나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중국은 완전히 고립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총력을 기울여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 해도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그로즈니, 알레포와 같이 잿더미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전쟁 기간이 길어지고 참혹한 민간인 피해가 방송될수록 나토와 러시아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전쟁 개시 전까지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람은 26%에 불과했다. 아예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20%였다. 지금은 핵전쟁을 감수하고서라도 우크라이나에 군사개입을 해야한다는 사람이 35%이다. 앞으로 죽어가는 어린이와 노인, 파괴된 도시 같은 인도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장면이 반복해서 화면에 보여질수록 서방은 직접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끔찍한 상황이다. 이런 경우 러시아는 서방에 핵무기를 사용하는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는 이제 서방을 위협할만한 재래식 병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지금 상황은 3차 세계대전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길고 지루하고 파괴적인 소모전의 시작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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