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초가치(Values) ; 인간의 본성을 바꿔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겠다는 은행가의 원대한(?) 청사진



근대 계몽주의는 신의 은총, 관습, 심지어 인간의 본성 등 사회를 유지하는 가치 전부를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계약이라는 유서 깊은 단어는 국가가 탄생한 배경이 인간 사이의 이성적 합의라는 얼핏 듣기에 대단히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심지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불변의 원칙마저 이성적 추론과 사회적 합의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 한계가 있다는 소리를 다시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인간은 본능과 습관이 일으킨 일을 합리화하는 걸 이성적 판단이라고 착각한다. 인간의 군집인 국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몽주의 부류의 이성 만능주의는 서구 문명 속에 면면히 이어졌다. 인간 사회를 개조하겠다는 원대하고 이상적인 사회공학적 시도에는 항상 계몽주의의 이성적인 계획이 드러난다..

현재도 이성을 종교화한 강력한 이념이 서구 사회, 특히 엘리트층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라고 불린다. 하이에크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constructive rationalism)’라고 불렀다. 이 이념에 중독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사고한다.

  • 어떤 것이 좋은 삶이고 옳은 삶인지 나는 이성적 고찰을 통해 알고 있다.
  • 좋고 옳은 삶을 사회에 실현하기 위해 국가는 사회-공학적 노력을 해야 한다.
  • 이런 목적에 맞지 않는 관습과 인간의 본성, 현실적 제약은 이성적인 교육과 계몽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의 이성을 종교화한 것이다. 이성이 정의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고, 국가와 사회를 개조해 지상낙원을 만들 수도 있고, 현실과 인간의 본성까지 극복할 수 있다니 이게 종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종교적 도그마를 가진 서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리라.

 

이 책의 저자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거쳐 영란은행의 총재를 맞은 사람이다. 캐나다인이 대영제국 중앙은행의 최고위직에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이력에 더 덧붙일 것이 없는 서구의 최고 엘리트이다. 이런 엘리트가 쓴 책을 방구석에서 내가 비판해 봤자 내 꼴만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네가 뭔데 전 세계 최고의 금융엘리트의 견해를 비판하냐?”고 말하면 입장이 참 난처해진다. 그래도 뚫린 입이니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이 책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거나 지혜롭게 할 어떤 관점도 제시하지 못한다. 어떤 의미 있는 통찰과 지혜도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계몽주의의 후계자인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끝판왕이 얼마나 확증편향에 빠져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책을 읽다 보면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가 인간으로 가져야 할 어떤 보편적인 특성이 결여되었다는 느낌이다. 이 저자에게 결여된 것은 정상적인 현실 인식능력과 자기인식능력이다..

 

우선 이 책의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는 이 책의 요지를 공정하게 요약했다고 자부한다.

현재 시장 자본주의는 어떤 재화의 가치가 최종 재화에 매기는 소비자의 가치에 의존한다는 주관적 가치이론에 근거한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시장가치가 내재가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가치관을 변질시킨다. 시장이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본이 소모되고 파괴된다. 가치 뒤에는 올바른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가치의 저장, 교환수단인 화폐도 올바른 가치관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가치는 신뢰, 회복력, 공정성, 포용성, 투명성, 책임성, 역동성이며 중앙은행은 이런 올바른 가치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중앙기관 없는 민간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가치관의 균형과 재조정을 통해 화폐의 공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건전한 화폐를 지탱해온 영속적인 가치관의 인도를 받아서 자신의 맡은 소임을 해야 한다.

무분별한 시장적 가치관 때문에 금융위기를 겪었다. 코로나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앞으로 올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 사회의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 필수이다.

 

여기서 중앙은행은 거의 종교단체이다. 인류의 가치관을 정립할 의무를 진다. 중앙은행장은 사실상 대제사장이다. 대제사장이 종교적 오류를 인정할 수 없는게 당연하듯, 이 책에선 금융위기를 불러오고 경제를 왜곡하고, 약자에게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당한 징세를 강요하는 중앙은행 중심 명목 화폐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나 지적은 800페이지 가까운 책에서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사회문제는 시장이 개인의 가치관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일어났으며 화폐의 문제도 시장적 가치 결정방식이 오염시킨 가치관을 고쳐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중앙은행은 신뢰, 회복력, 공정성, 포용성, 투명성, 책임성, 역동성이란 가치를 사회와 화폐에 불어넣어 시장적 가치 결정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앙기관이 사회와 개인의 가치관을 수정해야만 더 좋고 밝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저자에 따르면 당연히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이 추구해야 할 기술적 시사점을 보여주는 것 외에 돈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중앙에서 관리하고 훌륭한 가치관을 주입할 공적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런 종교적-영적 역할의 일부를 떠맡아야 하는 게 중앙은행이다.

미국 주요은행에서 활약하다 캐나다와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한 사람이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중앙은행 총재 시절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해 자신의 조그만 책임(심지어 적절한 관리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적 사고라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라도 인정했을 것이다. 오로지 잘못된 가치관에 오염되어 탐욕스럽고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는 다른 경제주체와 개인에 대한 비판만 가득하다. 놀랍게도 책의 절반은 이런 내용이다. 코로나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각국 정부의 잘못도 시장 탓,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도 시장 탓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라는 말인가? 개개인과 시장참여자가 가치를 평가하는 가치관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더 이타적이고, 남을 배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면서 소비하고 생산해야 한다. 결론은 개인의 도덕성과 이성을 강화해서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어떻게 이걸 강화하는가? 정부의 공적 기관(특히 중앙은행)이 사려 깊은 계획을 통해서 한다. 인간의 이성(특히 자신의 이성)적 고찰을 통해 사회를 개조하겠다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의 후계자가 쓸만한 책이다. 심지어 사회공학적 노력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성격을 개선하겠다는 시도는 공산주의적 인간을 만들려 했던 공산주의의 노력과 같이 유서 깊고 자기 파괴적이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이념론을 펼친다. 마치 북벌론의 방법을 묻는 효종에게 송시열이 한 대답을 생각나게 한다. 

전하께서 한마음으로 근본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자신을 극복하여 마음을 바르게 가져 집안을 다스려 충직(忠直)에 접근하게 하고, 공도(公道)를 넓혀 체통을 밝히고, 기강을 떨쳐 재물을 절약하며, 사치를 혁파하여 민력을 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지략이 용맹하고 총명하여 기세가 충만하게 한 다음에야 이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송시열은 훨씬 현실감각이 있는 인격자이다. 최소한 전통에 입각한 도덕을 강화하고,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에는 착취적인 금융체계의 최정점에 몸담았던 저자의 반성이나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에 대한 청사진이 전혀 없다. “바뀌어야 할 것은 너희들의 가치관이다.! 너희들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 행동했으니 사회가 이 모양 아니냐!” 이게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개선책도 자신의 계획대로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치와 가치관은 격위(格位)가 다른 용어다. 가치는 주관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성질이자 재화의 중요성 정도이다. 가치관은 인간이 삶이나 세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의 가치를 매기는 관점이나 기준이다. 가치는 욕구, 가치관은 삶을 보는 관점이다. 저자는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화폐에 신뢰, 회복력, 공정성, 포용성, 투명성, 책임성, 역동성이란 사회적 가치를 주입하여 인간의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욕구를 변화시켜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겠다는 말이다. 더 이타적이고 더 넓은 관점으로 협동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앙은행이 당신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고쳐주겠다는 말이다.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평화적으로 추구할 때 가장 잘 협력한다. 그게 시장이다. 시장에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부적절한 분야가 있다는 것이 시장이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시장에 오염된 인간을 개조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자기 인식능력이 부족하여 현실 인식능력이 결여된 계몽주의적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인간이 개조되면 사회가 평안해질 것이라는 망상을 써 내려간 책이다. 조금은 감정적일지 몰라도 책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저자는 책에서 너무나 자주 논점을 잃고, 방만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두서없이 전개한다. 두꺼운 책이 꼭 필요한 내용이 많아서는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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