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비평) 암호화폐에 다가오는 결정적인 순간


암호화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내리고, 기술하고,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암호화폐의 본질을 가장 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한 문장은 이것이다. 암호화폐는 화폐 타락 현상의 안티테제이자 치료제이다. 암호화폐는 화폐 타락을 거부하는 움직임이자 화폐 타락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치료제이다.

화폐 타락은 왜 일어나는가? 권력자가 사회와 개인의 부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런 말이 편집적으로 들리거나 과도한 일반화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이건 진실이자 화폐 타락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권력자가 징세를 통해 부를 걷어 들이는게 한계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해결책이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권력자가 통제하는 화폐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런 화폐 타락을 겪었다. 그리고 모두 가치는 0으로 수렴했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팩트다.

위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가 수없이 해왔다. 화폐 타락 현상은 상당 기간 인플레이션이라는 순화된 용어와 물가 통계치를 조작하고 주무르는 방법으로 위장된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후 세계의 모든 명목화폐가 해왔던 일이 이런 것이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여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생활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동안 그 치부는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화폐 타락이라는 그 본질을 감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쇠락하는 국가와 권력자가 징세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겪을 때이다. 

국가 차원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는 크게 자연재해와 전쟁 두 가지다. 특히 지금 주시해야 하는 건 전쟁이다.


우선 복습하는 의미로 자연재해를 먼저 보자. 2020년에 전 세계는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를 겪었다. 그 결과가 아래 표이다. 각국 정부는 신종코로나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명목화폐를 풀어놨다.


지금 높은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리는 화폐 타락 현상은 이런 원인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 정도로 화폐가 풀렸으면 부(副)가 증가했다는 착각으로 경제가 과열되야 하는 게 상식이다. 지금 경기가 과열되었다고 느끼는가? 아니다. 미국이 돈줄을 조금만 조이자 영국과 유럽부터 제삼세계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다. 세상에 다른 일이 없더라도 내년쯤 심각한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다. 그 다음 일어날 일은 보지 않아도 명백하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다시 제로 수준으로 내리면서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양적완화를 하고, 정부는 엄청난 재정을 풀어놓을 것이다. 결국 화폐가치는 이전보다 더 타락하게 된다. 


이제 앞으로 화폐가치는 물론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전쟁을 보자. 러시아와 NATO 국가는 사실상 전쟁중이다. 물론 대리전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분명하다. 양측이 막대한 전비를 쏟아붓고 있고 앞으로 쏟아부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은 서로 지쳐서 종결로 가는 게 아니라 격화하고 있다. 벨라루스가 참전하고 전술핵무기가 사용되기 일보 직전이다. 

눈을 감고 상상을 해 보라. 앞으로 기적적인 평화가 찾아오겠는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평화적으로 조율하고,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가? 아니다. 핵무기가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희생하여 억지로 종전을 이룬다고 해도 곧바로 시작될 신냉전과 중국과 미국 사이의 진정한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각국 정부는 조각난 공급망, 막대한 군비 지출, 양극화가 유발할 정치적 모험주의와 포퓰리즘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편이 확실히 한쪽을 굴복시켜 패전처리 겸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 때까지 불안한 정세와 전쟁이 반복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폐 제도가 지금과 같고, 화폐의 가치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면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화폐가치를 비교해 보라. 너무 먼 이야기 같으면 한국전쟁 전후 한국의 화폐가치나 베트남전 전후의 달러의 화폐가치를 보라.


결론은 이렇다. 지금 명목화폐 제도를 운용하는 모든 나라들은 화폐의 가치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건 달러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상상치도 못한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바로 국가가 독점하는 명목화폐 제도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다고? 나토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 직전에 있는 지금 현 상황도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다. 하지만 현실이다.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다. 현재 주권국가가 독점하는 명목화폐 시스템은 머지않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이런 주장은 지금 이 시점에서 인플레이션이 경기의 경착륙 없이 잠시나마 진정될 가능성이 없고, 국제 정세가 저절로 평화로워질 리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 모두 거대한 화폐 타락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 상황에서 하루살이처럼 "내년에 큰 기회가 온다더라", "진정한 저점이 온다고 하더라"라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대부분 경제를 잘 이해한다는 사람의 생각은 이렇다. "연준이 금리 피봇을 하는 지점이 저점이다. 이때를 노려 주식투자를 하면 된다" 일반적인 경기순환국면이라면 이런 방식이 통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올 무언가가 일반적인 경기순환국면이 아니라고 말하는게 내 요지다. 

왜 아니냐고? 이렇게 엄청난 유동성을 한 번에 엄청나게 풀어놓은 예가 수십년간 없다는 점, 각 나라가 왜곡된 경제-화폐의 상태를 시장의 자정 기능에 맡길 정치적 결단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 앞으로 엄청난 재정지출이 필요한 전시 비상 상황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가치를 저장-교환-평가하는 기준이 바뀌는 순간에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국가가 보장하는 현재 화폐 가치가 서서히, 혹은 급격히 무너지며 상당 기간 혼란과 새로운 화폐 시스템의 탄생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여기에 암호화폐의 결정적인 기회가 있다.


우선 당연하게 명목화폐를 던지고 가치가 저장된다고 믿는 무언가로 달려간다. 화폐 가치가 불안할 때는 국채도, 주식도 위험하다. 즉 국가의 신용도, 회사의 신용도 믿을 수 없다. 모든 신용의 기초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사람은 실제 가치가 있다고 믿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예전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게 금, 은이거나 부동산이었다. 미술품 같은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어떤 것으로 대피할 수도 있다. 이제 여기에 암호화폐가 추가된다.

암호화폐가 가치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들었다. 잔인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10년 전에 암호화폐가 사기라고 말했던 70대는 지금 80대가 되었다. 60대는 70대가 되었다. 기대수명이 최상위권인 한국의 현재 기대수명은 83세, 건강수명은 73세다. 암호화폐에 익숙지 않고, 따라서 가장 적대적이었던 세대는 이미 변화하는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힘든 상태이다. 그만큼 세대가 바뀌었다.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서로 가치를 인정하는 어떤 존재가 분할, 전달, 소지가 너무 간편하고 안전하다면 화폐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이다. 암호화폐보다 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존재는 내 생각에 없다. 특히 국외로 자산을 옮기고 싶은 사람과 정부의 약탈적 징세를 피하려는 수요가 폭증하는 전 세계적 혼란기에 암호화폐는 완벽한 화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부동산은 아예 국외로 가져갈 수 없고 금과 은, 보석, 미술품도 국외로 가져가려다 압류당하기에 십상이다. 당신이 징집을 피하려는 러시아인이거나 우크라이나인이라면, 정치적 자유와 안전을 원하는 중국인이라면, 황폐해진 삶의 터전을 떠나 외국에서 보금자리를 찾으려는 어떤 사람이라면, 아니면 약탈적 징세를 피하고 싶은 어떤 사람이라면 암호화폐 이외에 사실상 다른 대안은 없다. 앞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안정되었을 때, 세상뿐 아니라 암호화폐를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모든 변화에 가장 결정적 돌파구는 CBDC를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자산의 교환과 지불/결제 시스템을 결합한 서비스의 등장이다. 한마디로 인터넷 환전상+직불카드 시스템이다. 만약 이를 신뢰성 높게 해내는 회사나 프로젝트가 등장한다면 그 회사(혹은 시스템)의 부가가치는 테슬라, 애플을 넘어설 것이라 확신한다. 이게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다. 


상상해보자. 아르헨티나나 터키 시민이 갈수록 쓰레기가 되는 자국 화폐가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화폐로 가치를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면? 모든 여행객과 이민자가 환전 없이 세계 어디서든 자기 부를 사용할 수 있다면? 컴퓨터의 여유 저장공간이나 잉여 연산력, 자신의 개인 정보와 각자 기업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를 모두 토큰화(화폐화)하여 거래할 수 있다면? 

지금 인류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은 시장 덕분이다. 거지같이 사는 나라가 있다면 시장이 작동 안 하기 때문이다. 잘 사는 나라가 있다면 시장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고고한 인간들도 시장이 없으면 배가 고파 고고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진다. 시장은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다. 지금까지 시장에서 거래는 국가가 강제하며 서서히 타락하는 명목화폐에 의지했다. 만약 시장이 이런 속박을 벗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시장이 속박을 벗어버리고 궁극적인 작동을 할 때 일어난 번영은 진정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를 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잡한 삼차원 이모티콘이 존재하는 가상의 부동산이나, VR 기계로 구현한 조잡한 가상 세계를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생각에는 틀렸다. 부를 다음 단계로 격상시킬 산업 구조의 변화는 이전에 불가능했던 걸 가능케 하는 새로운 기술이나 자원에 의해 등장한다. 현재 인간의 기술과 지식,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막고 있는 병목(bottleneck)은 구식이면서 착취적인 현재 화폐 시스템이다. 현재 명목화폐 시스템을 대체할만한 근본적 기술의 변화, 검열 불가능한 인터넷과 분산원장 기술, 교환-결제 시스템은 나타났거나 나타난다. 암호화폐의 진정한 번영은 이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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