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로맨틱한 분위기’와 같은 의미에서 낭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독일에서 시작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한 어떤 정신적 변화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서구인의 사고에 이전과 다른 명확한 균열이 일어났다고 본다. 서구적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우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사야 벌린에 따르면 이 운동은 17세기 후반, 30년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으며, 프랑스라는 당시 최고로 선진적인 국가의 주변부로 존재했던 중부유럽(지금의 독일 지역) 지역의 지식인들이 시작했다. 이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다. 이들은 자신의 지성에 못 미치는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소외된 주변인이었다. 이들의 외부로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한 좌절감으로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갔다. 이들을 이끈 원동력은 외부적 좌절감과 계몽주의에 대한 반감,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들이 만들어낸 낭만주의는 당시 프랑스가 상징했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세상이 이성적 계획과 지식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격렬히 반대했다.
17세기 유럽의 사상의 대표적 흐름은 계몽주의다. 자연과학과 공학의 비약적 발전과 적용으로 급격한 진보를 누리던 시기이다. 자연과학에 통하는 환원적이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사회제도와 법, 예술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보편적 진리는 이성적 노력으로 발견될 수 있고, 인간은 진리의 퍼즐을 맞춰가며 보다 완벽한 사회를 이뤄갈 수 있다는 긍정론이 계몽주의이다. 그 본질에는 2000년 넘게 서구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사고, 즉 ‘덕(德)은 곧 앎이다.’ 가 깔려있다.
낭만주의자가 격렬히 공격한 지점이 여기다. 어떤 가치는 본질에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아니 말로 표현될 수도 없다. 어떤 가치와 진리를 기술하고, 연구하고, 고정된 형태로 박제하여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가치와 진리와 본질을 그나마 이해하는 방법은 신화적 상징뿐이다. 이 시대에 신화는 과학이 죽여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신화와 상징을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가치 있는 일은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의지이다. 한마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의지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아래 낭만주의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들어보자.
- 낭만주의인 것들은 현대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고전주의는 노쇠하고 따분할 뿐이다. -스탕달
- 낭만주의는 질병이며, 나약하고 역겨운 짓거리이고, 방종한 시인과 가톨릭 반동주의자 일파가 질러대는 고함에 불과하다. -괴테
- 낭만주의란 사랑, 종교, 기사도의 통일체이다. -스몽디
- 낭만주의란 히드라의 세 머리 중 하나이며 나머지 두 머리는 각각 개혁과 혁명이다. 낭만주의는 종교와 전통에 대한 공갈 협박이다. -프리드리히 폰 겐츠
- 낭만주의란 산업 혁명의 공포로부터의 도피다. -마르크스주의자
- 낭만주의란 아름다운 과거를 무섭고 단조로운 현재에 대비시킨 것이다. -러스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게 낭만주의이다. ‘고귀한 야만인’을 찾는 원시주의적 과거 회기로 나타나기도 하고, 전위적이고 개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통점은 당시 산업사회와 계몽주의, 이성주의의 갑갑한 현실의 반동이었다는 점이다. 그 반동이 과거로의 회기일 수도 있고 현재 질서의 파괴일 수도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정치적 이념으로 나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외침은 당시 급격한 근대화와 합리주의에 억눌렸던 다른 유럽 지식인의 가슴(머리가 아니라)에 불을 질렀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어 보이는 어떤 본질에 대한 열망은 폭발적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합리적 계몽주의와 산업 혁명의 역풍이었다. 독일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동부 유럽과 영국을 거쳐 계몽주의의 심장 프랑스까지 침공했다. 이들에게 고정되고 단일한 진리는 없었다. 예술은 가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어떤 심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표현하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심연이 펼쳐진다. 단지 신화와 상징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이게 낭만주의다. 어찌 들으면 예술가의 치기 어린 소리로 들린다. 실제로 이 운동이 처음 꽃피운 곳은 당연히 예술과 문학 분야이다.
예술과 문학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경계를 넘어 사회 다른 분야로 넘어갔다. 낭만주의자가 보기에 국가는 사회계약 따위로 일반화한 모델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는 죽은 자와 산 자, 앞으로 태어날 자가 분리할 수 없이 엮여 만들어진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총체이다. 국가 유기체론이다. 독일의 역사법학파는 법을 자연이나 인간의 공통된 윤리, 혹은 사회적 합의에서 도출하는 것을 거부했다. 법이란 그 민족의 경험과 특성의 산물이다. 따라서 각 민족은 각자의 법을 갖는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점점 낭만주의가 산으로 가면서 위험해진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운동은 실존주의와 파시즘이라는 자식을 남겼다. 실존주의는 본성, 사회제도, 전통은 물론 고정되었다고 주장하는 어떠한 형이상학 구조도 자신의 책임을 밖으로 떠넘기고 안락한 환상에 안주하려는 자기합리화로 본다. 놀랍고 강렬한 주장이지만 인간이 존재하면서 공통으로 형성한 최소한의 공통점과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이 없을 리 없다. 파시즘은 민족을 개인을 넘어서는 역사적이고 신비로운 유기체로 본다는 점과 그 민족의 강렬한 의지를 주장한다는 점, 미학적 모델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후계자이다. 둘 다 현실적으로 오류가 존재한다. 그 결과 반지성주의나 파괴적 전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낭만주의는 현대인 사고에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다. 우선 예술가의 자유, 인간이 과도하게 단순화할 수 없는 존재라는 시각, 획일적인 답변은 파멸을 초래한다는 생각, 어떤 답변도 원리상 완벽하거나 참일 수 없다는 생각은 현대인에게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낭만주의는 자유주의, 관용, 품위, 그리고 삶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이자 일정 수준 고양된 이성적 자기 이해다. 이것은 낭만주의자들의 의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었다. p264” 즉, 낭만주의 운동이 기존 질서의 반동으로 태어나 이성을 추구하는 기존 질서의 철저한 파괴를 원했지만, 오히려 인간의 이성을 고양했다. 이게 저자의 주장이다.
낭만주의는 지식이 아니라 의지를, 기술(記述)이 아니라 상징을,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확신을 중요시한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개념도 진리도 거부한다. 모든 건 주관적이다. 극단적으로는 과학적 사실조차 왜곡하거나 거부한다. 화산활동을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지각의 의지(意志)”로 보는 식이다. 어찌 되었듯, 낭만주의는 현대인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눠보지 않는 것, 인간의 지식은 물론 인간 자체도 불완전하다는 것, 완벽한 진리란 인간이 찾기 힘들거나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당신도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세상에 고귀한 악당이 존재하고, 선악으로 나눌 수 없는 운명적 충돌이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도 낭만주의자이다. 17세기 이전에 이런 사고는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 저자가 말했듯 낭만주의는 결과적으로 “이성적 자기 이해를 고양했다.” 인간 자신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더 입체적이고, 겸손하고, 관용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의지를 절대화하는 낭만주의가 극단적 반지성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파시즘을 낭만주의의 후계자로 봤다. PC를 비롯해 반지성주의적 극단주의도 서구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금도 낭만주의의 어두운 후계자들은 우리 사이를 불길하게 배회하고 있다. 주관적 확신으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주관적 확신으로 암을 낫게 할 수도, 달에 갈 수도 없다.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고정된 원칙이란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무례하게 무시하는 삶의 방식을 사회의 기본 원칙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낭만주의의 후계자와 현실이 타협해야 한다. 지금도 낭만주의의 영향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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