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채수근 상병 사건은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한국 사회 일각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사건의 발단과 전개의 흐름이 너무나 비극적이다. 그리고 그 위기, 절정, 결말이 어떻게 나올지 대충 예상할 수도 있다.
우선 발단을 보자. 채상병이 복무 중이던 해병 1사단은 수해 복구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경북 예천에 투입되었다. 예천 내성천에서 인간 띠를 이루고 탐침으로 실종자를 수색하는 일을 하던 중, 수중 지반이 약해져 무너지며 채상병은 급류에 휘말려 실종되었다. 그리고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후 알려진 정황은 참혹하다. 문제의 하천은 폭우로 물이 불어나고 유속이 빨라 상륙장갑차마저 투입을 포기한 곳이다. 이런 곳에 입대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채상병은(상병계급은 추서 진급한 것이다.) 구명조끼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없이 허리까지 차는 급류에 탐침만 가지고 이른바 "인간 띠" 작전에 투입되었다. 미개하고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이런 짓이 위험해 보였는지 사고 이틀 전에 소방 당국이 이런 식의 수색 활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군인이 수해 복구에 동원될 원칙적인 이유도 없지만 만약 선의로 참여한다 해도 보조적인 일에 투입되는 게 상식에 맞다. 상식적으로 실종자 시신을 찾기 위해 허리까지 차오르는 급류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게 필요할 리 없다. 실제 이 수색은 소방 당국과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독단으로 한 것이다.
애당초 이 수색은 사실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지역은 소방 당국이 드론과 수색견을 통해 주야간 실종자 탐색을 하고 있었다. 실제 채상병의 시신을 발견한 것도 소방 당국의 드론이다.
그렇다면 왜 해병 제1사단은 소방당국과 협의도 없이 불필요하고 무리한 수색작업을 강행했을까? 다들 예상하듯, 언론에 "해병대 제1사단이 이렇게 열심히 대민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는 홍보자료가 필요해서일 것이다. 재해 때마다 모든 군인이 하는 토사를 치우고 음식을 배분하는, 흔해 빠진 것이 아니라 인상적이고 강인해 보이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정황은 수두룩하다.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 수풀을 수색하고 부유물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물 안에 들어가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복장 통일을 강조했다. "하의로는 전투복, 상의로는 적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다른 옷은 입어서는 안 되며" 이후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을 점검 예정이라는 내용의 '사단장님 강조 사항'까지 내려왔다. 적색의 해병대 복장으로 통일된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길 바랐다는 증거다. 정말 수색만이 목적이라면 복장 통일이 왜 필요한가? 적색의 해병대 복장을 가리는 구명조끼는 홍보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지시사항에 방송 차량이 올시 "군 기본자세"를 철저히 유지하라는 내용도 있다.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로 해병대는 짭짤한 성과를 본 예가 있다. 태풍 힌남노 때 해병대는 포항 시내에 KAAV 상륙돌격장갑차를 투입하여 언론에 조망을 받았다. 이때 장갑차를 투입한 곳이 바로 이번 채상병 사건이 일어난 곳과 같은 해병 제1사단이고 그때 사단장도 지금의 임성근이었다.
보다시피 이 사건에는 해병대 제1사령관인 임성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파악할 수 있다. 위에 말했듯, 이 사람은 언론플레이에 강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젊은이들의 안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실제 언론에 노출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 전례가 있다. 군 본연의 임무와 상관없는 암기 사항과 행사를 창조하여 사병들에게 부담을 준 일도 있다.
더 기가 막힌 일도 있다. 군 방첩사를 사칭한 인물에게 속아 임성근 사단장이 직접 커피까지 대접한 사건이다. 중대한 군기 문란이다. 그 사람이 만약 간첩이었다면 영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직접 사단장에게 여러 정보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실수를 한 사단장이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위병소에서 고생하던 일반 병사인 초병들 빼고 간부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사단장이 누군가에 강력한 비호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말에 따르면 임성근 해병 제1사단장은 이명박정부시절 청와대에 근무했으며 현 국방장관과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 차장과 연이 있다고 한다. 난 사단장이 정치권과의 인맥으로 대단한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 전후의 괴상한 전개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건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이제 사건의 발단이 어떤 것인지 결론 내릴 수 있다.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정치권과 연이 깊은 임성근 사단장은 해병대의 홍보를 위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장병을 대단히 위험하고 야만적인 작업에 내몰았다. 이건 자기 역할에 충실한 인간이 일순간 실수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특성이다. 만약 민간인에게 영내에서 커피를 대접하는 어처구니없고 중대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사람이 적절한 제재를 받았다면 이번 채상병 사건은 없었다. 내 생각에, 이런 일을 벌이고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서 정치적 유착과 부패를 유추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본연의 업무가 아닌, 홍보에 기를 쓰는 인물을 걸러내지 못한 한국 시스템의 문제, 심각한 군기 문란을 조용히 묻어버린 과정에서 보여지는 부패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전개다. 전개 과정도 발단만큼 비극적이다.
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을 포함한 지휘부 8명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내용, 즉 과실치사의 혐의가 있다고 결론 내리고 이를 경북 경찰청에 이첩한다는 내용으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제도 받았다. 당연한 결과다. 안전 장비도 없이 허리가 넘는 급류에 사람을 강제로 집어넣는 지시를 한 게 과실치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과실치사인가? 이때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사단을 격려했다. 이는 서로 다른 출처로 확인된 사실이다. 다음날 같은 내용으로 언론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7월 31일: 언론 브리핑 내용이 청와대 대통령 안보실에 전달된 직후,, 이날 있을 예정이던 언론 브리핑은 급하게 취소되고 국방부 일부 인사가 수사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다. 이는 적법한 명령과 서류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아래에 연합뉴스에서 보도된 수사단 입장문이 있다.
8월 1일 박정훈 수사단장은 국방차관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임성근 사단장은 혐의에서 빼라"라는 내용으로 직간접적인 외압을 받는다. 7월 31일부터 국방부 장관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박정훈 수사단장의 주장에 따르면 직접 외압을 행사한 차관은 위 혐의 내용이 장관에게 보고된 사실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즉 이 명령은 대통령-국방부 장관-국방부 차관-해병대 사령관의 합법적 명령체계로 내려온 지시가 아니다. 임성근 사단장만 콕 집어 구명하려 한 지시는 국방부 장관을 건너뛰고 다른 별도의 라인으로 내려온 것이다. 정황상 이를 지휘한 것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다.
8월 2일: 박정훈 수사단장은 해병대사령관에게 보고하고 이 사건의 내용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으로 경북 경찰청에 이첩했다. 놀랍게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첩된 사건 서류를 국방부 감찰단이 다시 회수하였다.
이후 박정훈 수사단장은 임의로 수사자료를 이첩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되었고 며칠 후에는 "집단항명의 수괴"라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요약하자면 국방부 장관이 적법하게 재가한 결정을 국방부 장관이 없는 틈에 차관이 적법한 절차와 서류작업 없이 청와대 안보실의 지시를 받아 뒤집으려 했고, 이 과정에 적법하게 이첩된 서류를 다시 회수하였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올해만 대형 사고를 두 번이나 친 임성근 사단장을 구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원칙을 고집한 수사단장은 직위해제되고 "항명의 수괴"라는 괴랄한 이름으로 수사를 받을 처지다.
이 상황은 한국인에게 무척 익숙하다. 권력에 비호받는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정권에 불리한 일을 막기 위해 권한을 넘는 일을 무리하게 하고, 내부 고발자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것이 언론에 노출되어 정권에 부담이 되거나 정권 교체 이후 형사처벌을 받는 것 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 특별감찰관에 대해 감찰했다가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았다. 문재인 정권에서 조국 민정수석도 자신의 업무를 넘어 부산시 시정에 간섭했다가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았다. 대통령 측근에서 호가호위하다 보면 자신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한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주제넘은 짓을 하다가 직권을 남용하게 되고, 이에 반대하는 곧은 인물을 구박하고, 결국 자신이 감옥으로 직행하는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이게 채상병 사건에서 일어난 위기 절정 결말이다. 언론에 의해 음모자들이 위기를 맞고, 음모를 더러운 수로 막으려다 절정을 맞고, 결국 감옥행 결말로 끝난다. 역사나 전례에서 배우지 못하는 무지하고 천한 인간이 지금 윤석렬 대통령 주변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윤석렬 정권을 만든 것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호가호위하던 조국 민정수석의 직권남용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를 그만하라는 압력을 거부하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밑바탕이다. 자기 밑의 사람이 조국과 똑같은 짓을 하다가 정권까지 위험하게 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채상병 사건에서 나타난 음모와 직권남용은 내가 보기 이전 어떤 권력형 비리사건보다 더 멍청하다. 개정된 법에 의해 채상병 사건은 어차피 민간 경찰이 수사하게 된다. 군 수사기관에서 조사한 내용은 경찰이 사용할 기초 자료에 불과하다. 만약 청와대 안보실의 의도대로 군 수사기관에서 사단장의 혐의를 빼고 사건을 이첩한다고 하자. 경찰과 검찰이 가만히 그런 내용을 받아들일 리 없다. 다시 청와대 안보실의 누구는 경찰과 검찰에 압력을 가하여 사건을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경찰과 검찰에 박정훈 수사단장 같은 인물이 없다는 보장이 있나? 어디에나 더러운 걸 못 보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론은 가만히 있을까? 안전 장비를 전혀 안 주고 허리까지 차는 빠른 물살에 젊은이를 집어넣어 죽게 만든 사건에 처벌받는 사람이 하급 관리 몇 명이라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국방부 장관을 무시하여 비공식적으로 수사 결과를 뒤집고, 이미 이첩된 수사자료까지 다시 회수해 오는 전대미문의 직권남용을 해서 얻으려는 결과가 뭔가? 겨우 사단장 하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올해만 전무후무한 사고를 두 번이나 친 무능하고 권력 지향적인 사람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직권남용은 너무나도 후안무치하다.
권력 중심에 선 사람들이 권력에 취해 현실 감각을 잊기 시작하는 것이 정권의 처참한 종말의 시작이다. 대통령이 확고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사건은 더 터질 것이고, 정권은 위험해질 것이다.
이전에도 말했듯 윤석열 정권은 취약하다.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가신집단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명박 수준의 관료-정치적 자원도 없다. 박근혜, 문재인과 같은 열광적인 지지자도 없다.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과 586 운동권들의 정치 실패의 반작용으로 준비 없이 탄생했다. 그 취약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국내외 문제는 산적해 있다. 전 정권들이 싸 놓은 똥도 치워야 한다. 이 와중에 엄청난 경제위기는 임박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성자와 같은 인품과 제갈공명같은 지혜를 이용해서 국정을 운영하더라도 인기는 없을 게 정해져 있다. 앞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강요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역할을 잘 수행하면 후세에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되살리기 위해 싫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훌륭한 대통령으로 말이다.
그럴려면 전 정권이 갔던 파국적인 길을, 심지어 자신이 대통령이 되도록 등 떠민(?) 이전 정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그 시작은 자신의 라인의 무능한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 안보실의 누군가와 그 라인을 모두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에서 가장 중대하고 처참한 결과는 이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 군대에서 상관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위험하고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국가 시스템이 이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믿음이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훼손된 사회적 신뢰만큼 한국 사회는 붕괴된 것이다.
ps. 8월 21일, 결국 국방부 조사단은 임성근 "사단장의 범죄혐의를 특정하기 힘들다."는 결론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결국 청와대 안보실의 의도대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 후반기의 심각한 위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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