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 이야기로 난리다. AI 구축에 필요한 반도체, 플랫폼, 기타 AI가 불러올 다양한 변화와 가능성의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내 생각에 AI가 인류 문명에 미칠 영향력을 쉽게 가늠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궁극적으로 AI가 인간의 한계를 돌파할 인식의 무한 확장을 가져올지,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무언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AI가 현재 문명에 미칠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변화는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이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통역-번역 분야다. 지금 별로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이 분야가 미칠 파괴력은 대단할 것이다. AI 기반의 즉시 통역은 불과 수년 안에 완벽해진다. 머지않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50년 전 주산학원에 다니는 것, 30년 전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따려는 것처럼 구시대적인 일이 될 것이다. 언어를 깊이 이해하여 특정 문화를 공부하기 위한 학술적 의미가 아니라면 말이다.
머지않아 어디든 언어장벽 없이 여행할 수 있다. 국경을 넘어선 인간 사이의 접촉은 더욱 넓고 긴밀해질 것이다. 이 기술의 궁극적 영향은 언어장벽의 방해 없이 다른 나라에서 장기 거주를 촉진할 것이라는 점이다. 직업이나 이민, 은퇴, 장기 여행 등의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불편함이 최소화된다.
생각해 보자. 나는 한국에서 특정 직업과 지위를 갖고 경제-사회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즉, 대한민국의 영토는 내 안정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범위다. 이런 면에서 이민자는 현시대의 개척자들이다. 자신의 언어와 문화의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인생을 일구는 것은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위험과 고난의 상당 부분은 바로 언어다. 그게 사라져가고 있다.
언어 장벽의 해소는 단기 여행자가 먼저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민을 계획하는 사람, 직업을 쫓아 외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 장기간 외국에 거주를 생각 중인 사람, 등이 그 가능성과 이점을 알아챌 것이다.
국경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그 행정권이 미치는 영역, 그리고 언어와 문화가 공유되는 영역이다. 한국, 일본과 같이 국경과 언어가 비교적 일치하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두 번째가 훨씬 모호하기는 하다. 그래도 최소한 근대국가는 자신의 영토 내 사람들을 민족(국민)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즉, 공통의 정체성을 주입하려 노력한다. 그 시도가 앞으로는 천천히 와해할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 언어장벽 없이 직업, 재산 보존, 교육 기회, 기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이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교육과 미디어 독점에 기반한 국민 형성은 힘들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더 세계시민에 가까워진다.
두 번째 변화는 초거대기업의 영향력 강화다. 이미 기업이 우주선을 발사하고, 위성통신을 통해 전쟁 양상을 좌지우지하고,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많은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력자는 손이 꼽을만하다.
물론 1990년대부터 다국적기업이라는 말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초거대기업은 예전 다국적 기업과 다르다. 이전 다국적 기업은 미국이 만든 세계 질서 아래서 여러 국가에서 자원과 중간재를 조달하고, 영업했다. 지금 초거대기업에 세계 질서나 국가의 존재는 멍에나 말고삐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이다. 이전 다국적기업이 국가가 기르는 강아지였다면, 지금 초거대기업은 국가가 간신이 밧줄로 묶어둔 늑대다. 그 늑대를 묶어둔 밧줄이 풀리기 직전이다.
그리고 정말 거대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초거대기업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강력한 초거대기업이라면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벌거나, 시총 규모가 크거나, 특정 영역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이 아니다. 엔비디아를 보라. 현재 엄청난 돈을 벌고, AI에 사용되는 GPU를 거의 독점하고, 그에 따라 엄청난 시가총액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은 강력하지 않다. 이 기업의 번영이 특정 산업 분야에서 부족한 일부 병목구간을 운 좋게 독점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병목을 허용하지 않는다. 병목이 해소될 때, 엔비디아의 영향력은 끝난다.
실제로 강력한 초거대기업은 뚜렷한 청사진 아래, 인간의 활동 분야를 수직-수평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곳이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는 서비스와 생산에 접점을 이루는 모든 로봇(테슬라와 테슬라봇)과 그 자율 운행 시스템, 여기에 들어갈 에너지 공급원(태양광 발전), 이를 연결할 통신 시스템(스타링크), 인간과 컴퓨터의 접점(뉴럴링크), 인간의 우주 진출에 대한 구상(화성 이주 프로젝트)을 포함한다. 테슬라가 성공하면 테슬라봇이 테슬라 차를 포함해 인간이 하던 생산과 서비스를 대체한다. 인간은 단말기 없이 컴퓨터를 직접 사용한다. 그 통신은 스타링크가 대체한다. 만약 테슬라가 주도하여 인간이 화성에 이주한다면 그곳은 테슬라가 주권을 행사할지도 모른다. 테슬라는 인간의 생활 방식과 영역을 개편하려는 회사다.
애플도 비슷하다. 단말기 생산부터 운영시스템, 지불 방식, 막대한 고객의 정보를 독점한다. 인간의 소통이라는 분야를 수직으로 통일한 것이다. 이런 기업이 강력한 것이다.
2. 자, 이제 암호화폐 이야기를 해 보자.
앞으로 나타날 진정으로 강력한 기업은 인간의 경제활동 자체를 수직-수평으로 통합할 것이다. 이 회사는 지불과 환전을 통합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블록체인, 혹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자장부화한 화폐(암호화폐와 각국의 CBDC, 기타 토큰화한 자산)를 즉시 환전하여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분야에서 지금까지 모든 초거대기업을 뛰어넘는, 결국 각국 정부의 힘도 뛰어넘는 회사가 나온다. 아무도 이 분야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리라 예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각국 정부는 거래소의 사소한 지불/결제 활동을 간과하겠지만 이런 곳이 국가의 화폐 독점을 깨는 그라운드 제로가 된다.
혹은 테슬라나 애플 같은 충분히 강력해진 초거대기업이 직접 재산 저장과 지불수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수십번 말했지만 가치 저장과 지불수단은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강압적으로 독점하고 있을 뿐이다. 테슬라나 애플, 삼성이 제공하는 어떤 포인트(?)를 가치 저장과 지불에 사용할 수 있고, 이것이 국가가 제공하는 무언가보다 신뢰성이 높다면 그것은 바로 화폐가 된다. 이런 회사가 자체 토큰을 포함한 자산 거래소와 지불 수단을 제공한다면?
즉, 지불/결제/환전을 결합한 서비스에서, 혹은 초거대 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하는 순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기업이 탄생한다. 사나운 개가 밧줄을 끊어버리는 순간이다.
앞에서 AI가 인간의 의사소통 한계를 넘어설 때 나타날 변화를 이야기했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한 인간의 경제-사회적 안정과 존엄성의 경계였던 국경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 자기가 원하는 나라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직업 활동, 은퇴 생활, 사업, 여행을 할 수 있다. 국가는 배타적이고 균질한 국민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오히려 유능하거나 부유한 인물을 국내로 유인하는 것이 국가 성패에 중요한 과제가 된다.
세계화한 개인과 국가의 힘을 넘어선 기업의 등장은 세상을 지금과 격이 다른 인식확장과 기술 발전으로 이끌 것이다. 이런 미래는 화폐의 시장화를 벗어나 일어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암호화폐는 미래의 화폐다.
결론은 이렇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외계의 것과 같은 기술 발전을 이루고, 세계가 국가가 유발하는 갈등을 벗어나고, 인간 활동의 한계를 벗어나는 미래는 시장의 화폐화를 빼고 나타날 수 없다. 이런 미래는 우선 국가의 힘을 넘어서는 초거대기업의 등장으로 시작될 것이며, 이런 기업은 다양한 화폐의 지불/결제/교환 시스템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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