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의대정원 확대라는 포퓰리즘의 진행상황, 그리고 필연적 결과

 


1. 이전 글에서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가 소수의 부유한 집단을 고립시켜 다수의 인기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이며, 기술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본질이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국가의 중대사를 다룰 능력이 없는 윤석열이 손쉽게 총선에서 표를 얻으려다 벌집을 잘못 건드린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대중의 환심을 사는 한편으로, 의사들은 정부가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겁박하면 분열하여 발밑에 엎드릴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자기가 뭔 짓을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기초 의료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전공의들과 전임의, 교수들, 그리고 의사 집단 전체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했다. 그리고 물러설 자리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몰랐다. 

포퓰리즘에는 국민을 이성적인 능력이 없는 바보로 보는 뻔뻔함과 함께 매체를 이용한 막대한 선전선동과 현실 왜곡이 필요하다. 지금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2. 우선 철없이 병원을 뛰쳐나간 전공의들이 "동요"를 하면서 속속 복귀할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럼 현실은 어떤가? 초반 사직한 전공의는 9,000명 정도였다. 지금은 11,900명의 전공의가 사직한 상태이다. 전체 전공의의 93%다.

저번 글에서 이번 사태가 길어지면 전임의와 교수도 사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정확히 그렇게 되고 있다. 계약 시즌인 3월에 대량으로 인턴과 전임의들이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학교별로 의대 교수들이 단체로 사직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의사 집단은 사분오열하며 정부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이 와중에 코미디 같은 일이 있다.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대형 병원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158명을 긴급 투입했다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만 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갑자기 동원된 158명이 공백을 메꿀 수 있겠는가... 이런 걸 선전선동이라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쇼를 하고 이 쇼를 친정부 매체가 받아서 떠드는 것이다.

게다가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은 정부가 곶감처럼 빼서 써서는 안된다. 각자 한지 의료와 군인 진료라는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환자를 봐야 할 사람을 대형 병원에 집어넣으면 깡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아무도 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2. 한 가지 정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 사직한 전공의와 전임의 상당수가 사태가 해결된 후 복귀하지 않는다. 이번 사직 사태가 파업의 한 형태라고 보는 것이 큰 오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정부가 백기 들고 항복한다고 해도, 기초 의료제도 붕괴는 막을 수 없다. 윤석열은 그 무능함과 독단으로 아주 가는 균형에 의존하던 대한민국 기초 의료를 작살낸 것이다.

전공의들 상당수는 실제로 사직했다. 자신의 사회적 대우와 여론, 직업적 처지에 신물 난 것이다. 이들은 당장 수련을 때려치우고 GP로 나서면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이번 정부의 망동은 울고 싶은 애 뺨 때려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계약을 포기한 인턴도 이런 드러운 바닥에 발을 들이길 포기한 경우가 상당수다. 

펠로우라고 부르는 전임의를 보자. 전임의는 교수에 붙잡힌 대학원생 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교수 자리를 탐내는 열성적인 전임의가 아니라면 의리나 사제의 정으로 잡혀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들은 전문의 자격증도 있다. 당장 도망가서 개원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공의들 하던 일까지 뒤집어씌우고 잠도 못 자고 일하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사직한다. 게다가 시기도 좋다. 3월은 재계약 기간이다.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그냥 당연 사직이다. 이런 일이 맞물려 지금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기초 의료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3.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보고 "밥그릇 싸움에 교수도 별거 없네"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교수는 학생이 많아지면 땡큐다. 의대생과 수련의가 많아지면, 자기를 왕처럼 받들어줄 사람도 많아지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의사가 많아지는 것과 교수 밥그릇이 뭔 상관인가? 교수들이 나서는 이유도 윤석열의 일방적인 태도가 교육자로서 의사로서 존엄성을 침해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정리되면 교수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초 의료에 완전히 환멸을 느낀 젊은 교수들만 빼면...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본 윤석열의 캐릭터가 자기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만큼 성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이번 사태를 선과 악의 싸움이라도 된 것처럼 호도하고 끝까지 바보짓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 의대 교수들 대부분이 사직하고, 병원에 정말 의사가 없는 최악의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다.



4. 한국 대형 병원인 연세의료원과 서울아산병원의 매출은 일 년에 3조에 육박한다. 1조를 넘는 대형 병원도 수두룩하다. 한국 3, 4차 의료기관의 연 매출을 모두 합치면 20조는 훌쩍 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도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사태가 수습되기는 커녕, 전임의가 이탈하고, 교수마저 떠나면 아예 병원을 운영할 수 없게 되는 사태가 다가온다. 이런 사태가 한 달만 넘어도 이들은 파산한다. 파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매꿔야 할 막대한 돈도 세금으로 나온다. 위에 말했듯, 실제 상당수 전공의와 전임의는 사태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의료 인프라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위 모든 내용은 현실에 기반한 타당한 예측이다. 이 예측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단언할 수 있다. 1년 뒤에 읽어도, 10년 뒤에 읽어도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고 자부할만한 글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겁주려는 것도 아니고, 의사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5. 노환규 전임 의협회장을 11시간 조사한 것은 한 편의 비극이자 희극이다. 법치/문명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현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극이고, 윤석열 정부가 드러낸 절박함과 졸렬함이 코미디 같다는 점에서 희극이다.

혐의는 이렇다. 노환규 전임 의협회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방법으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을 주도한" 혐의가 있다. 이건 내가 꾸민 말이 아니다. 정부와 경찰의 발표다. 자기를 지도하는 교수의 말도 씹고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이, 전임 의협회장의 말을 들을 이유가 뭔가? 그리고 사주하는 방법이 페이스북에 글을 쓴 것이라니... 난 이를 조사한 경찰들도 심한 현타가 왔으리라 확신한다.

만약 이런 사정을 알고도 "알빠노. 난 의사 싫으니까 정부 잘하고 있음"이런 생각이라면 어느 순간 당신이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동체와 국가를 향한 음모를 획책"했다고 경찰에 소환되더라도 우는소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인간들에게 기본권이란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다.



6. 예를 들어보자. 한국 기초 의료계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기초 의료에 들어가는 수가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고, 그 수가로 병원을 돌리기 위해 사실상 교육과정 중인 수련의에게 의존하여 병원을 돌리고, 도저히 병원이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중증 의료는 아예 외면되는 현실 말이다.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개선하겠다는 현실적인 청사진과 함께 일 년에 100명씩, 10년에 걸쳐 1,000명까지 입학 정원을 느릴겠다고 발표했다고 치자. 이 정도면 의사 집단의 조직적인 반발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만약 이런 정부의 발표를 전공의, 전임의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파업한다고 치자. 파업의 동력은 크지 않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그라들 것이고, 정부는 명분에서 밀리지 않고 의료 개혁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우선, 위에 말한 한국 기초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다. 너무 고질적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소수의 부유한 집단이 의사를 때리는 모습으로 총선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실성은 개나 줘버리고 크고 충격적인 숫자를 불러야 한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 방위비를 다섯 배 올리라는 트럼프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온 수가 2,000이다. 사실 만 명을 불러도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에서 큰 차이는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갑자기 중요한 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의 정원을 갑자기 70% 이상,  2,000명이나 늘린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그냥 잘나가는 인간들이 당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깨지는 순간은 포퓰리즘의 값을 지불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 가격은 종합병원의 이용이 불가능한 사소한 불편함부터, 뇌졸중-심근경색과 같은 중증 응급상황에서 대책 없이 죽거나 장애를 앉고 살아야 하는 사소하지 않은 것까지 다양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의사뿐 아니라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에도 쌍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과연 정부가 하던 말이 정말 현실성이 있는 것이었나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모든 바보짓을 겪기 전에 상황을 냉철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의사에 대한 마타도어가 횡행하고 프로파간다와 거짓말이 난무하더라도 말이다.

최소한 앞으로 일어날 모든 비극의 원흉이 누구였는지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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