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존 J. 미어샤이머와 그의 제자 서배스천 로사토가 하려고 하는 말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는 일상적으로 합리적이다.”
이 문장에 조금 더 살을 붙이면 이렇다.
“합리성에는 목적의 합리성과 전략의 합리성이 있다. 국가는 생존이라는 목적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으므로 목적의 합리성으로 볼 때 예외 없이 합리적이다. 또한, 국가에 전략의 합리성이란 신뢰성 있는 이론에 근거하여, 심의 과정을 거쳤냐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국가는 전략적으로도 합리적이다.”
이쯤에서 독자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국가가 합리적이라는 것이 저자들에게 왜 그리 중요한가? 이유는 이렇다.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국제정치 분야에서도 인간의 합리성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말대로 “국가가 자주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국제정치 이론가와 실무자) 이론적 접근을 무효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저자들에게 학문적 토대를 지키는 것이다.
저자들은 외교-안보 정책 영역에서 합리성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성은 원하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세상을 항해하기 위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외교 정책 영역에서 이 말은 합리성에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합리성은 신뢰성 있는 이론을 통해서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고, 목표를 성취하는데 가장 좋은 정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의 합리성이란 신뢰성 있는 이론을 채택한 정책결정자들의 관점이 심의 과정을 거쳐 통합되고, 최종 정책이 신뢰성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저자들은 설명을 이어간다. ‘이론’이란 실증적 주장, 가정, 인과 논리로 구성되는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추상화-단순화된 설명이다. ‘실증적 주장’은 독립 변수와 종속 변수의 탄탄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은 관계를 규정한다. 가정과 인과 논리는 실증적 주장에 관한 설명이다. 실증적 주장에 강력한 증거가 있고, 이를 설명하는 인과 논리가 탄탄할 때, 이를 신뢰성 있는 이론이라 부른다. 심의는 자유로운 토론과 설득을 통해 신뢰성 있는 이론을 통합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즉, 국가가 신뢰성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심의 과정을 거쳤을 때 국가는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국가의 결정은 대부분 합리적이다.
저자들이 자신의 주장 “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합리적이다.”를 증명하기 위해 하는 작업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 국가 합리성의 정의를 “신뢰성 있는 이론을 통한 심의”를 거친 것으로 대단히 넓게 해석한 것이다. 어떤 이론이 신뢰성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 저자는 “증거가 충분하고, 이론이 탄탄한 것”으로 정의하지만 이는 매우 자의적이다. 실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신뢰성 있는 이론과 없는 이론을 나열한다. 물론 저자들의 학문적 근거인 “현실주의 세력균형이론”은 신뢰성 있는 이론에 속한다.
‘심의’를 거쳤냐는 기준도 애매하다. 정책결정자가 이론에 바탕을 둔 정책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통합하는 과정은 on/off의 개념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북한의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도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의 심의를 거칠 것이고, 민주적인 정부라도 정부 내에서 특정 이론과 정책결정자에 대한 강압과 무시, 배제가 있을 수 있다. 즉, 심의를 거쳤냐 여부도 대단히 자의적이다.
그다음 저자들은 국가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알려진 수많은 사례를 일일이 반박하며 대부분의 결정이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신뢰성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내부의 ‘심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對 삼국협상 전략,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對 소련 정책,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의 對 나치 전략,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 결정, 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전략 추구 결정, 등 국가의 실패 사례로 알려진 사건을 일일이 거론하며 논박한다. 저자들은 잣대를 대단히 관대하게 적용하여 거의 모든 국가의 결정이 합리적이었다고 확언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여러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지도자가 “지침이 될 이론”에 근거해 사고하고, 정책결정자들은 이익집단이나 여론, 군사 지도자들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고 자유로운 “심의”를 통해 거의 예외 없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 저자들은 국가의 합리성을 정의하려다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진다. 자신의 학문적 근거를 옹호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세상일이 그렇듯 국가 지도자나 결정권자의 선택은 비합리적 감정과 편견, 합리적 사고의 혼합물이다. 이 모든 것을 주관적인 잣대로 “신뢰성 있는 이론”과 “심의”를 거쳤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모두 합리적 결정이라 판단하는 것은, 국가가 실수할 수 없는 합리적인 존재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국가는 합리적임에도 실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합리적이어서 실패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가정할 때 더 현실에 부합하는 증거와 탄탄한 인과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즉 저자들의 기준에서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저자들이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지목한 20여 건의 역사적 사건을 보는 피상적이고 자의적인 시각도 눈에 거슬린다. 마치 “국가의 결정은 합리적이다.”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역사적 사실을 편집하여 나열하는 듯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저자들은 1931년 9월부터 1941년 6월까지 일본의 동아시아(북방) 전략이 “신뢰성 있는 이론들에 근거했을 뿐만 아니라 합의에 이르는 심의 과정에서 나온” 합리적인 결정이라 주장한다.
저자들이 지목한 1931년 9월은 류탸오후 사건이다. 이는 쇼와 천황과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동군 일각의 장교들이 자의적으로 일으켰다. 심지어 조선에 주둔 중인 여단이 본국의 승인도 없이 만주로 월경하기까지 한다. 당시 관동군의 행동은 역사적으로 잘 기록돼 있다. 정부는 관동군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 상황을 주도하지 못한다. 당연히 신뢰성 있는 이론이나 심의 따위가 끼어들 시간이 없었다. 이후 관동군은 만주와 중국에서 정부의 통제력을 벗어나 자의적 결정을 내린다. 1937년 중일전쟁을 촉발한 노구교 사건도 단순한 우발사건을 ‘무다구치 렌야’라는 관동군 연대장이 전면전으로 확대한 것이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동원한다. 중일전쟁의 개시도 정부가 신뢰성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심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다. 1932년부터 1939년까지 만-몽 국경에서 벌어진 소련과 일본의 충돌을 보자. 이 또한 관동군이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모험주의적인 충돌을 초래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도 일본 정부는 관동군이 독자적으로 벌인 일을 수습하기만 했을 뿐이다. 이 모든 과정에 일본 정부가 비합리적이었고 수동적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신뢰성 있는 이론"과 '심의"에 근거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심한 현실왜곡이란 뜻이다.
놀랍게도 저자들은 이런 일련의 풍부한 자료를 모두 무시한다. 풍부한 역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1937년 중일전쟁은 장제스가 시작했고, 소련과의 충돌도 소련이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1941년 인도차이나까지 자국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확장한 것도 장제스의 병참을 끊기 위한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자신들의 이론을 위해 역사를 반대로 해석하는 수준이다.
정말 국가의 결정은 거의 예외 없이 합리적인가? 저자들은 이를 증명하거나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들이 벌이는 과도한 단순화, 자의적 해석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미어샤이머 교수 이전 저작의 명쾌함과 현실성과 비교할 때, 이 책은 나오지 않는 게 나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생각해 볼 점은 있다. 바로 국가가 결과와 상관없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한 신뢰성 있는 이론(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아니라)에 근거를 둔 여러 정책결정자가 수평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한 의견 통합(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우리 현실에서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의 방향을 바꿔 “정부는 합리적이다.”가 아니라 “정부는 합리적이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책을 썼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책 뒷부분 옥창준이 쓴 ‘해제’ 부분이다. 미어샤이머의 이전 저서와 그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 우리 시각에서 본 저자들 주장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고 신선하다. 이 책은 설렁탕 맛은 개판인데 깍두기 맛이 기가 막힌 식당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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