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인의 기원, 기후가 만든 인류, 그리고 한국인




인류의 기원, 한국인의 기원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다. 대체로 한국 역사는 ’단일민족‘ 신화를 개개인에게 주입하려 한다. 이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일 뿐이다. 근대국가의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려면 국민의 동질성이 필요하다. 이런 동질성을 부여하여, 대한민국 국민을 하나로 결속할 수단은 문화, 언어, 그리고 공동으로 겪었다는 가상의 사건, 즉 역사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자신을 우월하고, 선량하게 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실증적 증거가 없이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발췌, 날조, 과장된 사건을 머리에 집어넣는 것은 인간의 통찰력과 이해력을 높이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 지성에 대한 모욕이다.

삼국유사라는 이야기책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랴오허 강이 중하류 샤자덴 하층 문화가 확인되기도 전인 기원전 2333년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후,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통해 혈통을 이어갔다는 가상의 이야기 외에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 책은 최소한 좋은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신생대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미친 커다란 영향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의 장점은 어떤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히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융합한다는 것이다. 기후학,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적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진정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밝힌다는 목적이 있다면 필수적인 일이다. 기후학은 비교적 장기간의 기후변화와 그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 인간사에 관심이 적기 마련이다. 고고학은 발굴된 유적과 유물로만 이야기함으로 편파적인 이념에 오염되기도 쉽고, 통사적 이야기를 풀어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학은 언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인구 집단의 분화와 이동을 보여줄 수 있어도 그 연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 모든 도구에 최신 유전학적 수단을 통한다면 훨씬 입체적이고 생생한 사실을 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 책 옆에 한국 고고학회에서 펴낸 ’한국 고고학의 이해’라는 책을 펴놓고 같이 보길 권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기원‘이 보여주지 못하는 다양한 삽화와 사진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도 ’한국인의 기원‘의 내용을 보충한다. 그리고 일부 다른 내용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여 다른 근거를 찾게 만든다. 두 책은 같이 볼 때, 시너지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한국 신석기시대 제주도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산리 토기‘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후 2000년 후에야 동해안 부근에서 이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토기가 출토된다. 이는 뭘 말해주나? 위 책에서 말하는 조몬인과 아무르강 집단의 이동을 염두에 두면 단번에 풀린다. 제주도 고산리식 토기는 순다랜드에서 당시 해안을 타고 일본에 도달한 조몬인 집단이 만들었고, 그 후 동해안의 토기는 8.2 ka 이벤트(8천2백 년 전 일어난 극심한 기후 한랭화)에 자극받아 아무르강 유역에서 동해안을 타고 한반도로 남하한 집단의 토기다. 즉 한반도는 다양한 인구 집단의 끊임없는 이동의 장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 결과다.

저자가 인구이동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기후변화‘다. 한국인의 형성도 이런 기후변화에 자극받은 여러 집단의 이주 결과라고 본다. 근거와 이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단순히 한국인의 기원뿐만 아니라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이주에 대한 통찰력도 얻을 수 있다.

책이 대략 말하는 현생인류의 이동 경로를 보자. 아프리카를 탈출한 현생인류는 대략 5만 년 전쯤 서유라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유전적으로 일부 섞인다. 이후 서쪽, 북쪽,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동쪽으로 이동한 집단은 추위를 피해 해안선을 타고,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가 연결돼 형성된 ’순다랜드‘에 도달한다. 순다랜드에서 북진한 무리는 신석기시대 라오스와 말레이반도에서 호아빈 집단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북으로 더 전진한 사람들은 티안유안 집단이 되었다. 호아빈 집단 중 육지가 아니라 열도를 따라 일본과 한반도에 도달한 무리가 조몬인이다. 티안유안 집단에서 더 북진하여 아무르강 부근에서 계통을 달리한 무리가 아무르강 집단이다. 이 집단에서 EDAR 변이를 통해 두꺼운 모발, 삽 모양 앞니, 많은 땀샘 등 동아시아인의 유전자가 처음 발견된다. 이 변이는 인류가 ‘마지막 빙하 최전성기(Last Glacial Maximum)’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지금의 동양인의 해부학적 특징과 외모는 순다랜드에서 아무르강까지 흘러들어온 인구 집단이 2억 5천만 사이에 가장 심각했던 추위(LGM)에 적응한 결과다. 그리고 그 집단이 아무르강 집단이다.

티안유안 집단의 후예들은 황허-랴오허 강 유역에서 조/기장 농경사회를, 양쯔강 유역에서는 벼 농경사회를 형성했다. 특히 황허강 집단은 동아시아인의 유전자 구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랴오허강 부근에 정착한 황허강 집단은 아무르 집단과 섞이면서 랴오허강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 중 랴오둥에 존재하던 집단은 후에 현대 한국인과 일본인 형성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양쯔강 집단은 유전적으로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한반도에 벼농사를 전달한 사람들로 추정되면서, 혹시 반도 일본어 사용자가 아닌가 생각되는 집단이다.

동북아시아 인의 형성은 대략 이런 경로를 따랐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한국인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유전학,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대략 유추해 보면 이렇다.

  • 첫째. 2만 5천 년 전쯤 LGM이 한참일 때 아무르강 집단이 아무르강 유역에서 동해안을 통해 남하했다. 이들은 수렵채집민이다.

  • 둘째. 1만 9천 년 전쯤 LGM이 끝나가자 한반도의 아무르강 집단은 다시 초원을 따라 아무르강 유역으로 돌아간다. 한반도 인구는 희박해진다. 당시 수렵채집민은 초원을 선호하고 빽빽한 삼림을 싫어했다.

  • 셋째. 8.2 ka 이벤트라는 세계적 한랭 건조화 사건에 아무르강으로 돌아갔던 수렵채집민이 다시 남하한다. 이때부터 한반도에 본격적인 토기가 나타난다.

  • 넷째. 5.7 ka 부근에 기후 최적기에 한반도 수렵채집민의 수가 증가하고 단속적으로 농경도 전파된다.

  • 다섯째. 3.2 ka 이벤트로 유럽과 근동의 후기 청동기 문명이 ‘바다 민족’의 공격을 받고 몰락할 때, 한반도도 샤자덴 하층 문화가 붕괴하고 이 인구 집단이 요동지역 농업 집단을 압박하여 한반도로 밀어낸다. 이들은 한반도 금강하구에 자리를 잡고 한반도 최초로 쌀농사를 기반으로 ‘송국리 문화’를 만든다.

  • 2.8 ka~2.3 ka 철기 저온기에 송국리 문화는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다 한반도에서 소멸한다. 이 시기에 일본에는 송국리 문화를 계승한 야요이 문화가 번영한다.

  • 여섯째. 3~6세기 요서와 요동, 만주에서 투쟁에서 밀린 랴오허 집단과 북부 기마 집단이 한반도로 남하한다. 이 시기에 맞춰 일본으로 대규모 인구이동이 일어난다. 이 시기에 맞춰 일본에는 고훈문화와 아스카문화가 번영한다.

즉 한국인은 8.2 ka 이벤트에 추위를 피해 남하한 아무르 집단, 3.2 ka 이벤트에 산둥, 랴오둥에서 이주한 벼농사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허 부근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런 대규모 인구이동을 촉발한 것은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기후변화, 즉 동아시아의 한랭화다. 한국인은 다양한 인구 집단의 이동과 접촉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유전적으로 따지자면 우리의 기원은 랴오허강 유역과 아무르강 유역이다. 오히려 한반도 남쪽은 삼국시대까지 꽤 오랫동안 조몬인의 땅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인의 기원을 탐정처럼 추적하는 지적 흥분뿐 아니라 역사에 굵직한 사건을 기후변화와 연계하여 보는 즐거움이 있다. 현재 동아시아인의 해부학적-유전적 특성을 만들어낸 2만 오천 년 전 LGM, 얌나야인(인도-유럽어족)의 이동을 촉발한 4.2 ka 이벤트, 이집트 고왕국, 히타이트 왕국, 메소포타미아 통일왕국과 모헨조다로 문명까지 동시 몰락을 촉발한 3.2 ka 이벤트, 로마와 중원 통일 제국, 한반도의 고대국가 몰락을 촉발했던 중세 저온기까지, 역사적 사건으로만 배우면 파편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건을 기후적 위기로 묶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 책의 주제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기후가 인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 그리고 한국인 형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것이다. 기후 위기라는 지금 이 시점에 앞으로 인구이동에 대한 통찰도 보여준다. 만약 인류가 미치는 영향이 불가역적으로 되어 빙기로 돌아가야 하는 지구의 사이클이 교란된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기온 상승이 일어난다면? 막대한 영토와 비교적 낮은 인구밀도, 미개척지를 가진 러시아와 캐나다는 큰 이득을 보겠지만 동남아 국가, 높은 인구밀도에 고통받는 인도는 막대한 인구 유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서울 기온이 서귀포와 비슷해지고, 몬순의 영향력이 더 강해진다면?

전 세계적으로 국민국가는 약화하는 듯 보인다. 실패하여 사실상 붕괴 상태인 국가도 많아진다. 예전 방식은 아닐지라도, 대규모 인구이동은 근대적 국가와 국경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한국인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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