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제는 ‘The Lord of Easy Money’다. easy money는 ‘쉽게 번 돈’이란 뜻이다. 이 책은 명목화폐제도 아래서 위기 대응과 화폐량 조절을 위해 제한적인 임무를 부여받은 연준이 어떻게 경제 전체를 조율하는 막강한 비선출 권력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경기 불황과 위기에 대응한다는 목표가 어떻게 화폐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를 왜곡하게 되었는지도 신랄하게 보여준다.
연준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는 내용만 빼면, 이 책은 연준이 1970년대 이후, 경제 위기와 자산 거품의 해결사가 아니라 원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1년 금본위제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후 일어난 최초의 인플레이션은 1970년도에 있었다. 이 책은 1970년도 인플레이션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보다 완전고용, 혹은 실업률 감소에 훨씬 더 방점을 둔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연준은 이 시기 大인플레이션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반복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변주다. 중앙은행은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부응하여 자신의 설립목표가 아닌 거시경제적 목표를 조율하는 기구로 천천히 변형되었다.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과 인플레이션 방지라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정치-경제적 목적을 떠맡았을 때 이런 비극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연준이 실업률을 줄이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푸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상당 기간 기준금리는 제로였다. ZIRP(Zero Interest Rate Policy)라고 불리는 정책이 시행된 기간에 낮은 금리를 이용하는 금융사, 은행, 사모펀드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반대로 실물경제는 완전히 왜곡되었다. 기업은 더는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이율로 자사주를 매입하였다. 기업은 경쟁과 이윤이 아니라 레버리지를 일으켜 기업의 규모를 키워서 되파는 방식의 금융공학의 도구가 되었다. 실물경제와 자산은 완전히 탈구되었다. 이런 체제의 가장 잔혹한 결과는 정직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저축하는 사람들의 부를 빼앗아, 기회주의적이고 모험적인 투자자와 은행, 금융권에게 분배한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부의 불평등을 일으킨다. 이는 능력과 실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불평등이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미덕은 파괴된다.
저자에 따르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였다.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의 긴 여파에 갇혀있는 것이다. 제로금리에 적응한 금융, 경제, 사회는 어떤 대가 없이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명목화폐제도의 긴 침몰과정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