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The Roman Market Economy, Peter Temin이 말하는 로마 부강함의 근원.

 


로마는 역사에 기록된 다른 강대국이나 제국과 다르다. 법과 규칙에 기반한 통치체제와 유연하고 관대한 사회구조, 1,200년 넘게 지속한 전무후무한 기록은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어떤 국가도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서구 중심의 역사교육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Per si)다. 로마의 정치적, 로마가 무너졌을 때, 서구는 암흑기였다. 암흑기에서 벗어나 르네상스의 기지개를 펼 때, 그 모델 또한 로마였다. 이후 로마의 문화적 유산은 서구를 통해 근대화의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들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는 셸리의 시 오지만디어스(Ozymandias)에 나오는 폐허처럼 한때 위대했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국이 아니라 법, 철학, 사상, 제도, 다양한 면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듯하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답은 로마의 경제적 토대를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생산성의 기반 없이 문화와 사회제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의외로 로마의 경제구조를 다루는 책은 번역된 것이 거의 없다. 억지로 찾아보다가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질문을 하는 책을 찾았다. 바로 Peter Temin이 쓴, ‘The Roman Market Economy’다. 2012년에 발간된 책이나 한국에 번역될 것 같지는 않다. 내용이 관심분야가 꽤 좁을 뿐 아니라 내용이 대단히 학술적이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 관점에서 로마 강력함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가 보기에 로마 힘의 근원은 경제력이다. 우리가 고대나 중세 국가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달리, 로마는 탄탄한 노동시장과 상품시장, 토지나 재산에 대한 소유권, 근대 유럽에 필적할 만한 금융 중개 시스템이 존재했다. 로마의 경제제도는 노예나 자급자족적인 농업 노동에 기반한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농업경제체제가 아니었다. 로마는 최종적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로마의 호수로 만든 이후 지중해의 해운, 잘 깔린 도로망, 강을 이용한 수운을 이용하여 강력한 교역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곡물과 기타 상품의 탄탄한 시장이 형성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근대 이후 국제분업체제와 교역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의 추정에 따르면 전성기 로마의 금융 시스템 수준은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 수준에 필적했고, 곡물가격으로 추산한 일 인당 GDP는 16세기 후반 네덜란드에 필적했다. 말 그대로 산업혁명 전단계까지 왔던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로마가 조금만 더 발전했으면 2,000년 전에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반역사적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추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로마가 근대 유럽 국가에 필적하는 부유함을 누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런 개인적 결론에는 엄밀한 경제학적 추정이 필요 없다. 기원 전후에 만들어진 로마의 예술품, 건축물, 상품을 박물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의 정교함과 예술성은 르네상스 이후 만들어진 그것과 비교해도 흠잡을 것이 없다. 로마는 정말로 초기 근대 서구에 필적하는 부를 누렸다.

아.. 여기서 로마가 초기 서구에 필적하는 부를 누렸다는 말은 지배층이 그런 부를 향유했다는 뜻이 아니다. 평균적 로마 시민이 이런 부를 누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로마에는 노예제가 있었다’라는 사실이 상기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의 노예제는 우리가 기억하는 미국의 흑인 노예와도, 조선의 노비제도와도 다르다. 로마 노예는 수시로 해방되고, 주인의 중대한 업무를 대리하고, 로마 시민 여성과도 빈번하게 결혼했다. 당시 유력한 인물의 묘비에 자랑스럽게 해방 노예 출신임을 밝히는 이유다. Temin과 여러 연구자의 의견에 따르자면, 로마의 노예제는 대단히 개방적이어서 호주 이주민에게 빈번히 부과되었던 계약 노동과 유사하다. 즉, 로마의 노예제는 대단히 유연하여 경제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역사의 다른 노예제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의 힘의 근원은 결국 시장과 교역이다. 서구 근대화의 힘이 시장과 교역이었던 것과 같다. 이는 현재에 강력한 시사점을 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로마의 부가 급격히 쇠퇴한 것은 4세기 이후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촉발했다.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로마의 금융 중개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이는 무역을 축소시켰고, 지중해와 수로, 도로를 이용한 개방된 시장을 위축시켰다. 결국 경제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했다. 로마의 부흥이 시장에서 비롯되었듯, 쇠망도 시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일어난 이민족의 침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는 사회의 부강에 건전한 화폐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다. 각국이 국경을 닫아 무역을 제한하고, 관세를 높이고, 명목화폐로 화폐를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로마의 쇠망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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