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트럼프 현상에 대한 미국 좌파의 시각


 

이 책은 2016년에 발행되었다. 이미 10년 전에 쓰인 책이라 그동안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고려해가며 읽다 보면 책을 더 재미있고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일단 이 책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저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정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선거, 의회 제도, 다수결의 원리 등 국가 권력을 형성하고 행사하는 공식적인 통치 절차와 제도로 좁게 정의하지 않는다. 저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런 불완전한 절차적 형식을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로 보완하는, 극단적인 정치투쟁과 이로 인한 사회불안을 피하는 운영시스템 전체를 말한다.

 

둘째, 저자들은 차분하고 중립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의 원인을 고찰하지 않는다. 완전히 정파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에서 미국 공화당과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내 과장이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후퇴, 즉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파괴되는 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공화당에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전제적 독재자다.

 

저자들은 다음 네 가지 기준을 전제주의적 행동의 신호로 판단한다.

  •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및 적대시
  •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 억압

트럼프는 이 기준 모두를 충족한다. 따라서 트럼프는 전제적 독재자다. 미국은 트럼프와 트럼프 현상을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딱히 틀린 말 같지는 않지만 뭔가 기분 나쁜 위화감이 든다. 이 불쾌한 위화감의 원인은 저자들의 당파성에 필연적으로 내재한 편협함 때문이다. 편협한 인간이 현실을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 리 없고,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할 수도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은 현재 민주적 규범 파괴의 원인을 전적으로 공화당과 공화당에 침투(?)한 극우-기독교 분파들, 이런 공화당을 지지하는 저소득 백인에게 돌림으로써 현실을 타당하게 평가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건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정파성, 편협성에 내재한 본질상 '치우치고()' '좁아서()' 자신이 아는 것만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 공화당 때문이라면, 바뀌어야 할 것은 공화당이다. 트럼프는 독재자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런 관점이 부분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저자들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런 길을 따른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논리는 모순에 봉착하고, 주장은 공허한 좌파적 이상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언지 궁금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저자들은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정당이 너무 민주화(?)되었다는 점을 지목한다. 이는 내가 곡해한 것이 아니라 본문에 정확히 나오는 내용이다. 미국은 과거 대통령 후보를 민주적 절차 없이 결정하고, 정당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던 밀실정치의 반작용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와 같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더욱 민주화된 당내 절차가 확립되었다. 이 결과 포퓰리스트가 당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저지했던 정치 엘리트의 입지가 사라졌다. 이는 인기영합적인 인물이 대중과 당원의 지지만으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에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입장으로 볼 때, 저자들이 보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란 적당한 민주주의. 유권자의 뜻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제도가 아니라, 정치 엘리트가 적당히 잘못된유권자의 뜻을 걸러내는 것이 좋은 민주주의다. 이 정도면 저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저자들의 당파성은 이미 언급했다. 앞에서 말했듯,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 공화당 때문이라면, 바뀌어야 할 것은 공화당이다. 이런 태도는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적 양극화의 구조적 원인을 발견하지도, 발견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트럼프는 1기 정권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미국 유권자는 트럼프의 연임을 거부했다. 민주당 정권을 경험한 후 미국 유권자는 다시 한번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로 불러냈다. 트럼프가 저자들의 말대로 전제적 독재자라면 미국 유권자는 전제적 독재자를 다시 한번 소환했다. 이 모든 과정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이를 얼버무린다.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와 별도로, 트럼프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이 책의 저자들만 빼고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세계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이 두 가지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미국에 있어서 세계화의 결과는 부()를 미국 중산층에게서 미국 부유층과 제삼 세계로 이전한 것이다. 미국 중산층 노동자는 가난해졌고, 미국 최상층과 제삼 세계는 부유해졌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미국을 들끓게 하는 이민문제도 미국적 가치나 미국의 정체성 문제 밑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경제다. 이민으로 노동시장에 외국 인력을 공급하는 것은 미국 최상층과 기업에는 이익이고 가뜩이나 직업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중산층 노동자에게는 손해다. 이를 둘러싼 문제가 미국 이민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지금까지 소외된 미국 중산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정치세력은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멕시코나 아시아로 쫓아낸 세계화의 피해자다. 이들이 바라는 미국은 자족적이면서 고립적인, 문화적으로 균질한 곳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미국 주류 정치와 언론은 이들을 촌뜨기나 인종주의자, 깨어나지(woke) 못한 인간 정도로 치부했다. 냉혹하고 잔인한 태도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 이른바 진보적 매체의 행태는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삼자가 보기에 기괴한 면도 있었다. 이 모든 비극적인 과정의 반작용으로 지금의 트럼프 현상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모든 것은 공화당과 공화당 지지자, 트럼프의 탓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저자들은 공화당 탓만 하는 게 자기들이 생각해도 약간 민망했는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미국 민주당이 가야 할 길(현 상황에 책임은 없지만)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요약하자면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미국에 적용하는 것이 그 해법이다. 복지를 잘해서 양극화가 줄어들고, 정신 나간 공화당이 정신 차리고, 정치 엘리트가 제구실하는 정당정치가 복원되면 민주화가 회복될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해법이다. 이쯤에서 저자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적 가치가 고도로 실현되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내가 볼 때, 저자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란 미국 민주당이 우세한 가운데 양당정치의 현상이 계속 유지되는 것에 불과하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민주주의는 '총칼'이 아니라 '규범의 침식'에 의해서도 점진적으로 붕괴할 수 있다. 다만 미국 민주주의 규범의 침식은 저자들 말대로 공화당과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걸 모르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길게 쓴 남에 탓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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