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 ; 근대의 발명품인 전통

 



이 책의 요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오래된 역사와 관습의 자연스러운 계승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전통은 실제로 비교적 최근에 특정한 사회적·정치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정 목적은 무엇인가? 사회적 결속과 집단 정체성 형성하고, 어떤 권위와 제도를 정당화하고, 특정 가치·신념·행동 규범을 내면화-사회화하기 위한 것이다. 

왜 이런 목적이 필요한가? 근대화 이후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서 기존의 전근대적인 정당화 논리가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대중 정치의 성장, 대중교육의 확산은 기존의 정당화 논리를 미신적이거나 부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근대화에는 근대화에 맞는 규범과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즉, 전통은 근대화사회가 만들어낸 도구다. 그리고 이 전통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근래에 만들어졌다. 

근대 민족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의 중요한 특징은 새롭게 형성된, 국가와 민족 전통의 기원을 먼 과거에서 전래한 것처럼 암시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근대에 형성된 정치 공동체가 고대부터 이어진 자연스러운 공동체였던 것처럼 위장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민족’과 같이, ‘민족국가’의 발명품이다. 이런 점에서 어니스트 겔너,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과 비교해볼 만한 지점이 많다. 물론 이 책의 어조는 겔너나 앤더슨의 책보다 훨씬 비판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폭로적이다. 특히 논문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전통에 관한 내용이 그렇다.

물론 이 책이 “전통은 가짜다.”라고 폭로할 목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래된 역사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실제로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과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분명히 알면 근대화-산업화 이후에, 새로운 정당화 논리가 필요한 누군가에 의해, 사회를 통합하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즉,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형성한 역사적 과정과 권력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대단히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전통의 역사성"을 해체하는데 이바지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이 책의 방법론과 요지를 한국에 적용할 여지는 없을까? 한국에서 아직은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한민족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심지어 날조된 것)이라고 말했다가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류의 연구는 좋게 풀려야 차갑게 무시당할 것이고, 나쁘게 풀리면 전 국민의 감정적 역린을 건드린 죄로 곤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만 예외일 리 없다. 한민족을 만든 것(혹은 앤더슨의 말처럼 상상하게 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족국가(국민국가)이다. 그 역이 아니다. 민족국가 대한민국은 민족을 창조하면서 그 목적에 맞게 오래전부터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전통과 의례를 창조하거나 재발견했다. 이런 주장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한글 문자 해독자 대부분에게 상당히 불편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대로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동안 설명할 수 없어서 외면했던 많은 문제가 설명된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 민족주의에 반명제로, 일본 점령기에 나타났다. 신생국가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기타 계급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으며 사회 통합, 국가의 정당성확보를 위해 민족주의를 고도화한다. 한민족은 단군의 후손으로 거의 반만년(?)을 이어진 단일민족으로 상상된다. 독립운동가 이외에도 오래전 역사적 위인도 민족주의의 화신으로 발굴된다. 사회 통합의 원리로 두레와 향약 같은 전통도 재발견된다. 

고유의 전통이 없다면 민족이 아니다. 따라서 민족국가는 전통을 재발견해야 한다. 만약 찾아야 할 전통이 미비하거나 부족하다면 전통을 새롭게 창조-보충해야 한다. 이에 맞게 부채춤, 강강술래, 수문장 교대식, 왕실 행차, 차례와 제사 같은 의례나 행사도 재발견되거나 창조된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근대 이전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의 혈통적-역사적 후계자가 된다.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잉글랜드 민족주의에 맞춰 전통과 의례를 발명한 것처럼, 우리도 많은 전통을 발명했다.

이는 한민족이, 참조할만한 근대 이전의 사례나 의례가 부족한 급조된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를 오랜 시간 하나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운명체이자 공동체라고 믿게 하는 그 사고방식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전 세계에는 통일된 언어도, 문자도, 전근대의 역사적 경험도 없는, 가진 거라고는 서구의 식민지배 경험밖에 공유하지 못하는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민족이 수두룩하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국가, 아프리가 대부분 국가가 그렇다.

오히려 우리는 전통을 만들기 위한 소재가 너무 넘쳐서 문제다. 전근대 대단히 풍부한 활자화된 역사기록, 상당히 높은 인구밀도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근대 이전 국가, 통일된 언어, 쉽게 재발견할 수 있었던 독립적인 문자체계와 맞물려 대한민국은 고도로 민족 국가화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세계에서 근대 이후에 민족국가에 도전할 만한 세력이나 이데올로기는 남아있지 않다. 한국의 경우는 민족과 국가가 너무 강하게 결합하여 민족과 국가를 분리하여 생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다.


민족은 한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정당성의 출처다. 즉, 한국인에게 민족은 새로운 종교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한국을 대단히 고립적이고 배타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 사고의 한계를 좁힐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도전받을 수 없는 신성한 종교가 아니라 근대의 발명품이자 도구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도구는 이용하는 것이지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국가가 만들어낸 전통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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