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간기(前間期) 세계에 꽂혀있어서 이 시기를 다룬 책을 탐독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 인류의 황금기를 끝장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가 후퇴하고, 돈의 가치는 불안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치적 경제적 담을 쌓다가 파국적인 전쟁을 다시 겪었다.
세계화가 후퇴하고, 돈의 가치가 불안해 지고, 세계가 블록화 되는 상황은 지금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경제블록을 쌓으려 하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등장은 1차 세계대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독일의 부상이 일으키는 경제적-지정학적 긴장을 아득히 넘어서는 충격이다. 돈의 가치는 지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리더십은 각 지역에서 시험받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비슷한 변주를 한다고 하던가. 지금 전간기(前間期)의 변주곡이 연주되는 듯하다.
혹시 지금이 1950년대 이후 진행된 ’2차 세계화 시대‘가 종말을 맞고 있는 시기는 아닐까. ‘1차 세계화 시대’(1913년 이전 경제적 황금기)의 종말은 파괴적인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만성적인 정치-경제적 불안, 민주화의 후퇴를 불러왔다. 만약 지금이 그런 때라면 미래가 예전처럼 성장과 진보가 당연한 꽃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이켄그린의 '황금 족쇄’와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황금 족쇄가 경제와 금융문제를 좁고 깊게 다룬다면 이 책은 정치 사회적 함의까지 더 넓게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전간기 경제의 특징을 경제활동의 침체, 국제 무역의 감소, 높고 구조적인 실업의 발생,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시기에도 노동생산성은 지속해서 향상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간기 무역과 경제의 암울한 퇴보의 원인은 인간의 기술발전과 혁신 노력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 전간기 경제활동의 침체, 국제 무역의 감소, 높고 구조적인 실업의 발생 원인은 결국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지정학적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상금과 전시채무는 이 시기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마비시켰다. 각국은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여겼다. 그러니 당연하게 전쟁 이후 수요감소와 화폐의 대량발행으로 일어난 경기침체와 환율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협조는 없었다. 각자 자신의 전망대로 해법을 실행했다. 영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이전 가치로 금본위제를 도입하려 했다가 고통스러운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독일을 비롯한 중유럽국가처럼 재정적자를 해결할 방법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려운 나라는 파괴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영국은 리더십을 잃었고 미국은 리더가 될 준비가 안 되었다. 결국, 대공황 이후 정치 불안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을, 일본에서 군국주의를, 영국과 영연방국가에서 배타적인 경제블록을 낳았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다시 한번 파괴적인 전쟁을 겪은 다음에야 미국의 리더십 아래 경제활동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되살아났다. 이를 우리는 ’2차 세계화라고 한다..
저자는 앞으로 ‘2차 세계화’를 위협할 국제적, 국내적 위협에 대해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국내적 위협은 국제화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빈부 격차에 의해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등장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위기이다. 이는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국제적 위협은 경제적 균형을 무너뜨리는 세력이 등장(중국)하여 세계의 균형이 재편될때 일어날지 모르는 여러 갈등을 말한다. 이는 강력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협조적인 국제적 공동체에 의해서 관리될 수 있다.
세계화에 소외된 국내 취약층을 설득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국제적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게 지금은 가능할지는 각자 판단해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제화의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는 비현실적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에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적으로 될지 의문이다. 피해를 본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럽다. 어떤 사회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약한 존재는 없는 존재 취급을 받지 않던가.
중국의 부상이 불러오는 갈등을 국제적 협력으로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더욱 난망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 혹은 좌절이 전쟁 없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제 공동체에 의해 평화적이고 협조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경제력의 역전을 동반한 패권의 전환과정이 평화롭고 협조적으로 이뤄진적은 없다.
결국, 위협받는 ‘2차 세계화’는 ‘1차 세계화’와 같은 길을 갈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변주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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