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진행 상황 - 2022년 3월 9일 개전 13일차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미국과 서방 모두 개전 13일 차를 맞이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정규전과 회색 전쟁이 지속되는 것과는 별개로 본격적인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얕잡아본 것과 더불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상황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러시아의 공세 종말점 도달이다.


러시아의 공세 종말점 도달

러시아의 이른바 특별 군사작전의 목적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중립화, 크림반도와 동부 자치국의 독립 확보이다. 사실상 러시아는 이런 전쟁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전쟁 2주차가 다 된 상황에서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주변에 동원한 전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키예프에 대한 공세는 더뎌지고 있다. 여러 전선에서 지속해서 출혈을 일으키고 있다. 공군은 아직도 완벽히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고, 해군은 오데사 앞 항구에서 둥둥 떠 있는 게 전부다. 

하루에 러시아가 쓰는 전비가 200억 달러로 러시아 1년 국방비의 절반에 가깝다는 추산이 있다. 이게 과장된 것이라도 실제 전비가 엄청나다는 것과 러시아가 장기전을 수행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2주 가까이 전쟁을 수행했다.

단순히 돈이 드는 것을 넘어 물리적 한계도 다가오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한 전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키예프조차 점령 못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병력은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지상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이 병력이 소진되면 사실상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 병력은 지금까지의 교전과 보급 부족 등으로 이미 상당히 소모되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탄약, 식량같이 전쟁에 사용되는 소모품의 재고도 고갈될 것이다.

급하게 극동에 있는 병력을 끌어모으고 있고, 민간 트럭 같은 장비도 징발하고 있지만, 전쟁이 조금만 지나도 경제력이 아니라 군사력 그 자체로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군은 역량을 총 동원하여 키예프를 포위하고 최후의 대공세를 준비중이다. 러시아가 결국 키예프를 점령한다고 해도 자력으로 우크라이나 군사력을 와해하고 항복을 받아내는 것은 요원하다.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 에서 인용


이제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민간인 피해를 감수하고 키예프, 하리코프같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대도시에 시리아와 체첸에서 했던 방식으로 무차별 포격을 퍼부을 것이다. 

또, 벨라루스의 참전을 강요하여 폴란드, 헝가리와의 접경지대인 우크라이나 서부를 차단하려 할 것이다.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시리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들로부터 자원병, 혹은 의용군 형식의 참전도 종용할 것이다. 



이전 글에서 푸틴이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철군하거나, 적당히 강화조약을 맺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이 가장 평화롭게 정리되는 길은 푸틴이 실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장기집권한 독재정권을 외압으로 실각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서방의 따돌림과 압박을 받은 러시아인이 결집해 푸틴의 권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번 전쟁은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러시아는 위에 말했듯 장기전을 견딜 경제력도 군사력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푸틴은 더 모험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이상 러시아가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푸틴은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을 막고 유리하게 종전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푸틴도 강수를 둘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막을 것이 확실시된다. 러시아도 비 우호 국가에 공급하는 가스를 줄이거나 잠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구의 반(反)러시아 대오를 약화할 수는 없어도 서구에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핵으로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도 반복할 것이다.



러시아는 다시는 오지 않을 절묘한 타이밍에 전략적 선택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선택 자체만 보자면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사활적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가 EU, 궁극적으로 NATO에 가입한다면 러시아는 서구와 미국에 대한 완충지를 잃고 자국 방어가 대단히 취약해진다. 이를 완전히 좌절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게다가 2035년 이후에는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은 크게 줄어들고 낙후되어 다른 나라에 개입할 능력을 상실한다. 그 전에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유가와 가스 가격이 올라 러시아의 지갑이 두툼해졌고,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NATO 가입국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러시아는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철군하면 서방이 경제제재만 하다가 지리멸렬하게 분열될 것이라고 예상한듯하다.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한가지 착오가 푸틴의 모든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건 바로 러시아의 허접한 전쟁 수행 능력이다. 이건 누구도 예상 못 했고 푸틴도 예상 못 했던 것이다. 이제 러시아가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렸다. 미국은 덫에 빠진 곰을 이번 기회에 없애버리기로 마음 먹은 듯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는 미국 입장에서 지정학적 악몽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라는 덫에 걸려 꼼짝 못 하자 미국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바로 러시아 정권을 해체하거나 재기 불능으로 파괴할 기회 말이다. 

미국은 푸틴을 실각시켜 러시아에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거나, 러시아 경제를 완전히 파괴해 당분간 세계에 어떤 위협을 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러시아의 경제적 목줄을 죌 것이다. 이게 동맹국의 피해를 감수하고 러시아 원유까지 제재하려는 이유이다. 모처럼 모든 주요 국가에서 반러시아 단일대오가 형성되었다. 러시아가 외국에 재래식 전력을 투사할 능력은 이번에 거의 파괴되었다. 러시아가 핵으로 도발하는 것만 피해 러시아를 무력화한다면 최종 도전자인 중국은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다. 러시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 금상첨화이지만 러시아 내부가 소련 붕괴 때 정도로 혼란스러워지기만 해도 된다.

미국의 패권을 약화하고 서방을 분열시킬 뻔 했던 사건이 잠재적 적대국인 러시아를 파괴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며, 미국 밑으로 동맹국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역설적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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