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극화(多極化)된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의미를 잘 곱씹어 보면 앞으로 여러 세대 동안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변화이다.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체제는 생각보다 빨리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급격히 붕괴 중이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미국이 비합리적인 관념에 입각해 불합리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적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초 강대국으로 부상한 뒤 지구상 존재했던 이전 모든 초강대국이 했던 현실적인 외교 정책인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정책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이상적이고 십자군적인 목표를 관철하고자 했다. 바로 모든 나라에 미국식 정치 제도를 이식(移植)하겠다는 것이다.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보편적 가치와 관용, 세속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퍼뜨리면 미국은 물론 세상이 더 안전하고 부유해지리라 생각했다. 국제 관계도 냉정한 현실주의를 극복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협상과 조율로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런 미국의 외교 전략을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이라고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기회만 된다면 외국에 민주주의 제도를 수출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독재 국가를 타도해야 한다. 미국은 보편적 가치가 공공연히 무시되는 곳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개조하는 사회공학적 계획은 성공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믿음이 수십 년간 팽배했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패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비현실적인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 이론이 외교의 현실주의와 각국의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각 국가의 최고의 원칙은 생존이며 세상의 모든 나라는 도망칠 수 없는 '강철 새장'에 갖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따위의 형이상학적 말장난이 들어설 곳이 없다.
스티븐 월트 교수는 반복해서 파국적인 결과만 보여준 이 이론이 미국에서 왜 사라지거나 수정되지 않는지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이 이념을 초당파적으로 강력하게 지지하는 언론, 정치, 외교, 학계의 강력한 이익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수에 따르면 '자유주의 패권은 자유주의 패권을 옹호하는 외교 커뮤니티의 영구적인 고용 정책'이다.
위 두 교수는 공저한 책에서 자유주의 패권의 가장 병맛스러운 실패 사례인 이스라엘 정책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국은 결국 자신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을 스스로 파괴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유럽, 동북아시아, 중동에서 강력한 패권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저지한다.
2. 핵무기와 핵무기의 장거리 투발 수단의 확산을 막는다.
3. 미국을 겨냥하는 테러 공격을 막는다.
이 세 가지 목표에서 미국은 확실하게 실패하고 있거나 실패가 거의 확실시된다. 이제 미국의 약화와 세계의 다극화가 우리에게 가져올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제를 박살 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까? 이 전쟁은 여러모로 많은 사람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예상외로 개전 당시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은 수준 미달이었고 서방의 대응은 단호했다. 시간이 지나자 러시아는 특유의 회복력을 발휘했고 서방은 생각보다 러시아 에너지에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기간과 비용, 승자를 예측하기 힘들다. 전쟁 하는 나라들은 이런 면에서 '전장의 안개' 속에서 '강철 주사위'를 돌리는 것이다.
내 생각이 이번 전쟁은 언제 끝나는가 보다는 어떻게 끝날지가 예상하기 쉽다. 미국과 서방이 물러서야 끝난다. NATO 대부분의 국가는 아마 당장이라도 물러서고 싶을 것이다. 폴란드와 미국의 사실상 보호국인 발트 삼국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따라서 전쟁 중단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9%를 넘어가고, 대통령과 행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감당할 수 없는 확전 위험이 있고, 적대국이 반사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면 이 무의미한 분쟁은 협상을 통해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누가 봐도 이게 미국의 현실적 이익에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의 행보는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전쟁이 계속되도록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물적으로 지원하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다.
혹자는 미국이 예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늪에 빠진 것처럼 러시아를 우크라이나로 유인해서 피 흘리기(baiting and bleeding)를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적 출혈은 에너지 가격 상승 덕분에 인내할만한 정도다. 정치적 출혈은 아예 없어 보인다. 오히려 러시아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높아졌다. 정치-경제적으로 피 흘리고 있는 건 미국과 유럽이다. 나는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황이 불리해지고, 전쟁의 이점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주의 외교정책'을 따른다면 빨리 출구전략을 찾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은 이런 외교적 해결책을 막는다. 이 전쟁이 현실적 이유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이거나 독재국가가 민주주의국가를 공격한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관념이 미국을 사로잡고, 그게 미국과 세계를 수렁으로 이끌고 가는 전형적인 예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야 끝난다. 이렇게 되면 유럽은 우크라이나 난민과 에너지 부족, 정치적 혼란으로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전쟁이 유럽으로 확산할수도 있다. 사실상 3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다. 똥은 미국이 싸고 피해는 유럽 국가가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중동으로 가 보자. 중동에서 미국이 얼마나 실패했는지는 논외로 하고 당장 풀어야 할 문제는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이다. 수많은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그나마 가장 세속적이고 정상적인 정부를 가진 나라다. 잠재적으로 중동에 패권을 휘두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국 입장에서 견제해야 할지는 몰라도 무턱대고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위에 소개한 책에서 말했듯, 이렇게 미국의 중동 정책이 망가진 것은 이스라엘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이란과의 화해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미국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중동 정책을 망친 이스라엘과 더욱 밀착하는 것도 모자라 발표 장소가 예루살렘이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행동이다. 당연히 이란은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인근 이란과 헤즈볼라 거점을 5년간 400여 차례 공습했다고 인정했다. 지금도 중동에는 이란-시리아-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에 저강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불씨가 잘못 튀면 중동에서도 지저분하고 파괴적인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중동의 불안은 러시아 같은 중동 밖 산유국 이외에는 모두 피해를 본다. 여기에 주둔 중인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본의 아니게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란을 절대적인 악이고 이스라엘을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보는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제 동북아 문제를 생각해 보자. 북한이 왜 핵무기와 ICBM, 핵잠수함이 필요할까? 왜 북한이 세상에 보기 힘든 광신적인 병영국가가 되었을까? 이는 북한이 미국이라는 무시무시한 나라로부터 수십 년간 존립을 위협받아왔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최고 원칙은 생존이다. 북한도 살아남기 위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한국, 일본)에 대량보복을 할 수 있는 무기를 필사적으로 개발했고 사실상 그 능력을 완성했다.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미국에 도달하는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동안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떠들며 북한이 얼마나 나쁜 나라인지 욕하는 것 외에 한 것이 없다.
북한이 잘했다는 말하는 게 아니다. 북한이라는 병영국가의 형성에 미국이 엄청난 영향을 줬다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잘 이용해 엄청난 성공을 한 나라다. 한국인은 서구적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인 사회를 건설했고, 내가 어렸을 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그렇지만 서구 덕분에 한국이 성공했다고 서구가 몰락할 때 같이 몰락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만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자해(自害)하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그 버릇대로 자해할 것이다. 여기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자해의 첫 번째는 북한을 대책 없이 위협만 하는 것이다. 우발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 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기 개발 이후에도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는 않고 있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협상장에 나오라는 시위이지 공세적 위협이라고 볼 수 없다. 북한식 대외발언이야 항상 상식을 넘는 것이지만 분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군사적으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지는 않다. 북한도 지금 내부가 복잡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쓸데없는 위협을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예전대로 '전략적 인내(?)'를 계속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정권 교체 후 한국에서 북한에 대해 공세적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전 정권의 저자세 대북정책은 아니더라도 지금은 북한과 대화하여야 할 시기다. 즉, '자유주의 패권'에 기반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휘말려선 안 된다.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한국에 큰 이해관계가 없다. 한마디로 남의 일이다. 중국이 위협적인 지역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은 막는 게 좋겠지만 중국은 비우호적인 접경국이 많은 나라다. 한반도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곳이 많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 같은 동북아 주요국은 중국이 회유해야 할 대상이다. 중국이 이성적인 나라라면 말이다.
안타깝지만 동북아에서 경제-군사적으로 힘의 균형은 중국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로 중국이 미국의 경제규모와 첨단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국방비가 세 배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미 중국의 GDP는 미국에 거의 근접했다. 첨단기술은 중국이 재빨리 추격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이 없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있다. 군사력도 그렇다. 미국은 군사력(특히 해군력)을 전 세계 여러 곳에 분산해야 하지만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 부근에 집중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미국에 불리하다. 남중국해와 대만은 중국 종심과 가깝다. 즉 중국은 집 앞에서 싸우면 되고 미국은 멀리 원정을 와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같이 자국 내에서 무기를 조달하는 나라는 실제 군사비가 축소돼 보인다. 첨단 군사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고, 심지어 초음속 미사일과 같은 분야는 미국을 앞서고 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동북아에서는 경제적 균형뿐 아니라 군사적 균형 또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우크라이나에서와 같이 어설픈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북아에서 자기와 대등한 적에게 살살 시비만 걸면서 화를 돋우고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로 전면 충돌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 전 국방부장관의 말이다. 우발적으로 대만에서 전쟁이 나면 한국도 전쟁에 참여하라고 강요받을 것이다. 한국인은 대만 문제에 한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10년 전에 생각이나 해 봤을까?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미국은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을 것이다. 원인은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교 및 국가 운영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실 인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게 쉽지 않다. 미국 핵심부뿐 아니라 미국인 대부분을 사로잡고 있는 진보주의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적 사고 때문이다.
진보주의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좋은 목표와 삶을 이성적인 판단과 합의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이 목표는 사회공학적 계획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이상주의다. 모든 이상주의가 그렇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게 문제다. 이 진보주의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인간 본성에 안 맞는다고 이상주의자가 자기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자기 이상에 맞춰 인간의 본성을 교정하겠다는 유서 깊고 자기 파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자유주의 패권'과 미국인의 전통적 가치관을 공격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이런 면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딸들이다. 즉, 자기 유리할 때만 떠드는 미국식 인권 옹호, 북유럽 설화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쓰는 넷플릭스의 짜증스러운 행동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사람의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 않듯, 국가의 정체성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한국의 사활적 이익은 상당히 엇갈린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핵 투발수단을 없애는 게 사활적 이익이지만 우리는 무력충돌 없이 북한을 개방하는 게 사활적 이익이다. 중국의 초강대국 부상을 저지하는 것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지만 우리는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중국이 강력해지는 것만 막으면 된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은 훨씬 쉽고 평화적으로 달성 될 수 있다. 즉,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미국을 이용해야 하겠지만 미국의 강경한 외교 전략이나 군사 도발에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당장 해결될 일이 없더라도 북한과의 대화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는 정권에 따라 중심을 급하게 옮겨서는 안된다. 미국 편인 척 하되 적당히 장단만 맞춰줘야 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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