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어그로같은 느낌은 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국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 바로 결혼 및 출산 적령 층이 의-식-주 문제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느냐고, 그런 이야기를 누구는 못 하느냐고 비웃을 수 있다. 그러나 위의 해결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지금, 이 순간에 실천할 수 있는 대단히 간단하면서도 결정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쓸 기회가 있다. 이 해법은 내 생각에 세상을 보는 관점과도 상관없는 직관적이고 상식적이다.
위 뼈를 때리는 커뮤니티 글은 내가 앞으로 하려는 말을 요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위 글의 지루한 사족일 수도 있다.
우선 세속화와 도시화에 따른 근대사회의 출산율 감소는 별론으로 하자. 이 문제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 '텅 빈 지구'의 논지는 링크에 남겨두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이 책이 설명하는 근대사회의 특징으로서 출산율 하락을 넘어서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이건 이제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위에서 나는 출산 및 결혼 적령 층이 의-식-주 문제의 부담을 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 우선 입는 문제와 먹는 문제는 그 질과 사회적 만족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덜 심각하다. 만약 누가 먹을 밥이 없고, 입을 옷이 없어서 결혼도 출산도 못 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출산율 문제가 아니라 극도의 곤궁에 처한 인간에 대한 구제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람을 좌절하게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주(住)다. 여우도 돌아가 몸을 눕힐 굴이 있어야 새끼를 기르고, 닭도 쉴 수 있는 닭장이 있어야 알을 낳는다. 결혼 적령기의 20-30대의 주거가 불안하고, 결혼을 결심해도 신혼집을 꾸밀 집을 마련하는 게 엄청난 부담이라면 결혼은 늦춰지거나 단념된다. 아래는 한국의 출산율 통계다.
2020년까지 나온 통계다. 알다시피 2021 출산율은 더 내려가 0.81, 2022년에는 0.78이다. 계속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다. 위 통계에서 눈여겨볼 것은 낮은 출산율 자체가 아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도 처참한 출산율이었지만 그래도 저출산 국가들 중에 하나 정도로 비벼볼 수 있는 정도였고, 수단만 잘 쓰면 다시 상승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2014년 이후에 일어난 일은 어떤 나라에서 일어난 것도 아닌 한국적인 것이다. 이른바 특정 사회의 '집단 자살'이다.
아래는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 통계이다.
서울 부동산 통계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냐는 반론은 일단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 소득으로 주택을 마련하기 쉬운가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며 이는 도시 단위로 통계를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고 넘어가겠다.
2014년부터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가? 2022년 소득대비주택가격은 32.3으로 세계에서 13번째로 높다. 혹시 13등이면 서울보다 집 사기 힘든 도시도 그래도 13개나 있지 않냐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서울보다 더 집을 구하기 팍팍한 도시의 절반은 우리만큼 출산율이 박살나고, 부동산 붕괴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국의 일선급 대도시이거나 화폐가치와 기본적인 경제활동이 파괴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같은 도시이다.
위 표의 뜻은 32.3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이전의 PIR도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서구 선진국으로 보는 나라의 알만한 도시의 대략적인 PIR은 7-9 정도이다. 통계는 여기에 링크를 남긴다.
기존에도 극도로 높던 주택 마련 비용이 2014년을 기준으로 아예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수준이 되자 20-30대는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제 이들은 정부나 사회가 맞춤형으로 내놓는 잡다한 미봉책을 비웃는다.
거주 불안이 없어진 이후에나 사람은 결혼, 출산 같은 인생의 목적을 찾고 중요 결정을 한다. 위의 표가 보여주듯, 한국의 주(住)는 비상식적이다. 그리고 이게 출산율 저하의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이다.
혹시 위의 비상식적인 주택가격 지표는 한국인의 삶을 퍽퍽하게 만들어 결혼과 출산을 단념하게 하는 다양한 사회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할까? 한국 사회가 학벌-재산과 같은 외적이고 물질적인 단일한 가치를 두고 무한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출산 및 육아에 투입하는 비용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 내 생각에 아니다. 결혼하는 것과 자기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인간의 본성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무언가가 위협받을 때 뿐이다. 예를 들면 여우가 굴이 없거나 닭이 닭장이 없는 것, 사람이 주거가 불안한 것과 같은 것 말이다. 정말 한국인이 속물적이고 단일한 기준을 쟁취하려 무한 경쟁하는 괴물같은 존재이고, 경쟁과 외적 자기만족에 방해가 되느니 차라리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는 신종 인류라면 한국인은 인류를 위해 그냥 집단 자살을 계속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주택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라기보다 20-30대의 소득이 높지 않은 것이 더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내 생각에 이것도 아니다. 20-30대가 소비를 줄이고,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고, 미래에 불안을 느껴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이유, 즉 소득이 높지 않다고 상대적으로 느끼는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주거의 불안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소득 때문에 팍팍한 것이 아니라 주거비가 소득 대비 너무 높아 삶이 팍팍해진 것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는 산발적이고 근시안적인 출산율 대책은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위 내용에 동의한다면 해결책은 너무 간단하다. 집값이 내려가면 된다. 그리고 지금 집값이 내려가고 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 일본 정도인 13.3까지만 되어도 출산율을 높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진 다음 출산율이 서서히 올라갔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한 사회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한참 망각한 것이다.
[부동산 돋보기] 1·3 부동산 대책과 분양률 저조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물론 부동산 가격의 급락이 금융권을 비롯하여 다른 시장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범강남권 아파트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삼으라고 부추기는 것이 그렇게 선제적이고 시급하게 필요했을까?
정치는 이해관계의 조율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도 아니고, 국민을 아기처럼 돌봐주는 행위도 아니다.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해관계를 피를 보지 않고 해결하려는 장치다. 집값이 많이 떨어지면 건설사와 이에 연결된 다양한 관련자, PF에 관련된 금융회사, 부동산 투자자는 손해를 보고, 실거주 목적의 무주택자는 이득을 얻는다.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 앞에서 정부는 전자의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느껴지자 정말로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개입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부동산 가격이 상식선으로 돌아가는 동안, 정부는 다시 사회 전체에 미칠 파급을 막는다는 이유를 대며 더 강력하고 유례가 없는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무슨 정책이 나오든, 그 내용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서 건설사와 시행사가 부실화되고 이게 PF와 연결된 금융업계를 부실화하기 전에 주택을 투자목적으로 보유하려는 다주택자에게 팔아넘겨 가격 하락을 방어하는 것이다. 여기에 부동산 실수요자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 정치라는 이해관계의 조율에서 집을 실거주 목적으로 구하려는 사람의 이해는 다뤄지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서 건설사가 망하고, 부실한 금융권이 무너지고, 갭 투자자가 망하고, 전세금 채권자와 불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면 어쩔 거냐고? 젊은이가 애 낳을 여유가 없어서 나라가 작살나는 것은 어쩔 건가?
건설사는 그동안 부풀려진 부동산 가격과 건설사에 유리한 제도를 이용해 잘 먹고 잘살았다. 어려울 때 회사가 망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누가 말했듯,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구원 없는 카톨릭이다. 이건 충분한 고려 없이 건설 PF에 투자한 금융회사나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에 갭 투자한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다 자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안타깝지만 빨리 대응하지 못한 전세금 채권자나 기타 2차 피해자도 거품이 터질 때는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진정한 피해자는 이들뿐이다.
내가 이전부터 누누이 말해왔듯, 한국 경제의 역대급 경제공황이라면 부동산 때문이 아니더라도 곧 온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할 일이다. 중국 부동산, 일본 국채, 미국 경기, 유럽의 지정학적 위기, 이들 중 아무거나 삐끗하면 곧 빚으로 쌓아왔던 허상은 무너진다. 한국 경제를 위해 부동산 가격을 적당히 방어하겠다는 말은 니들 실수요자들보다 힘센 금융, 건설사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부동산 관련한 한국 정치, 즉 이해관계 조절의 결과이다.
이제 정말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정치를 할 때다.
지금이 기회다.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이 맞물려 말도 안 되게 높았던 부동산 가격이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다. 이는 전 세계가 다 겪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이 특히 심할 것이다. 이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누구의 피해를 줄일 것인가 선택해야 할 때, 건설사와 그 관계자-PF에 참여한 금융권-부동산 투자자의 편에 서서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국 부동산을 비롯해 금융-경제가 한번 무너져야 한다면 무너지게 내비두라. 그 폐허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터전이 나타날 것이다.
상식에 맞는 원칙 이외에, 기이한 제도를 남발하는 관료체제와 그 기생충들에게 막대한 세금이 낭비되는 것은 비극이다.
그나마 세금으로 출산율을 기계적으로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쓸데없는 저출산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아이를 낳는 가정에 일 인당 200만 원 정도 현금을 통장에 넣어주는 것이다. 웃기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저출산 대책으로 사용되는 세금보다 이 제도가 훨씬 저렴하고 효과적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외에 실제로 출산율을 올릴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가 쓰는 저출산 대책 상당수도 결국 아이를 낳는 가정에 인센티브(결국 경제적 이익)를 주는 것이다. 훨씬 잡다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점만 빼면,,, 이외에 저출산 대책은 그저 관료제와 그 기생충들의 자리와 예산 나눠먹기에 불과하다.
만약 아이를 낳는 가정에 직접적으로 돈을 주는 이런 저출산 제도가 전격적으로 실행된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를 자신의 연금이나 소득원으로 보는 가장 무능하고 비인간적인, 정부와 사회에 의존하는, 부모이자 양육자로서의 능력과 의지가 가장 떨어지는 인간들부터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 사회에 출산율만 높아지면 다 해결된다면 다행이지만 출산율을 올리려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의 인구수와 인구구조를 유지하려는 게 아니다. 그 사회를 책임질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다. 내 말이 틀렸다면 저출산 대책은 사실상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든 동남아든 아랍 난민이든, 한국에 살기 원하는 30대 이하 젊은이를 능력과 자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전 세계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게 이런 것인가?
그렇다면 단순히 아이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책임감 있고 지적-도덕적 능력이 있는 부모에게서 아이가 많이 태어나고 양육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직접 아이를 낳는 부모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모든 출산율 대책은 가정을 강아지공장으로 보는 잔혹하고 인간존엄을 헤치는 것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이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아이를 낳고 길러낼 수 있다. 국가와 정치가 할 일이 있다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뭔가를 하는게 아니다. 뭔가를 안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안 해야 할 것은 적대적인 주거환경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카르텔과 시장의 강자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제발 정상적인 인간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인 삶을 꾸려가도록 내비두라. 그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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