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이스라엘-가자지구 사태, 대한민국, 그리고 핵무기 - 1편

 



이스라엘-가자지구 사태의 추이는 다음과 같이 예상해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하여 가자지구를 침공하지 않거나, 짧고 상징적으로 침공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경우
  2. 이스라엘이 최소 한 달 이상 가자지구를 침공하여 가자지구 무장세력의 거점을 초토화하지만, 헤즈볼라와 이란이 말로만 개입하는 경우
  3. 이스라엘이 최소 한 달 이상 가자지구를 침공하고 헤즈볼라와 그 뒤의 이란이 개입하는 상황


1.의 경우, 이스라엘은 국내외적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받는다. 하마스와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이란 친위조직에 가까운 헤즈볼라와 이란은 반드시 다음 공격을 일으킨다. 그리고 국민이 1,000명 넘게 죽었는데 제대로 된 보복을 못 한 이스라엘 정부가 멀쩡할 리 없다. 네타냐후 정권은 실각한다. 이스라엘 국민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완전히 분열된다. 이른바 이스라엘의 자살 시나리오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

2.의 경우가 국제 정세에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이번 분쟁은 중동에 한정되고, 시간이 지나면 이번 사건이 일으킨 파장도 진정될 것이다. 이란, 그리고 그 하위조직인 헤즈볼라가 엄청난 자제력과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경우다. 내 생각에, 이들에게 이를 기대하긴 힘들다.


안타깝지만 3.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스라엘이 국제 여론의 눈치를 봐서 가자지구를 침공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단 개입하면 인구 밀집 지역에서 시가전이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은 시가전에 상당한 노하우가 있다. 예측하지 못한 구역에 기습적으로 침투하고, 문이 아니라 벽을 뚫고 이동하고, 특정 건물을 파괴하여 시야를 확보하고, 당황한 적을 노출된 대로변이나 특정 건물로 몰아넣어 일망타진하는 방식은 미국에도 전수되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시가전에 능숙해도 이스라엘 군인의 인명피해, 이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인명피해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곳곳에 친아랍, 혹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서구의 카메라가 이를 전 세계에 송출할 것이다.

최소한 현존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을 괴멸하고, 그 근거지를 상당 기간 재건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하는 걸 한 달 이내로 끝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3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전쟁의 참상이 계속 보도되고 이스라엘 북부와 서안 지역에서도 단속적인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최소한 헤즈볼라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과 전쟁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순간이 이번 분쟁이 국제전으로 성격이 변하는 시점이다.

지금은 비교적 이스라엘에 적대하지 않는 이집트,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도 결국 국민 여론에 장기간 맞설 수 없다. 이들이 이스라엘과 열전을 벌이지 않을지라도, 이들은 점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외교 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다. 서구 언론도 언더독 도그마를 충실히 따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

헤즈볼라가 본격 개입하면 미국은 시리아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근거지를 공습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특수부대를 이용한 제한적인 지상전도 수행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과 충돌 위험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분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파쇄공격 하여 군사력을 재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고, 핵무기 생산능력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출구전략을 찾기 힘들다. 전쟁 당사자 훨씬 많고, 미국은 아예 전쟁 당사자가 되어 중재할 수도 없다. 그리고 분쟁의 근본 원인인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법을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도 더 선명하게 팔레스타인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분쟁 당사자를 불러 합의점을 도출할 나라가 사실상 없다.


최악의 경우, 이 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결되어 진정한 세계대전으로 비화한다. 그 연결고리는 미국이고 그 연결지점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일 것이다.. 그리고 양측에 외교적-심리적으로 고립된 핵보유국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있다. 난 2022년 2월쯤에 전 세계적인 핵확산, 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염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몇 년이 흐르면 핵무기를 정치적-상징적 무기가 아닌, 실제 전장에서 사용 가능한 무기로 보는 견해가 많아질 것이다. 그 결과, 핵무기의 실제 사용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 보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잘잘못을 평가해 누구 편을 드는 것은 의미 없다. 인간의 인권 운운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없다. 지금은 이 분쟁의 본질적인 문제, 그리고 이 본질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다.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동물이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이 줄어들고, 인내심이 늘어나며, 신체가 여성화되는 등, 일련의 행동과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의 탄생과 자기 가축화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사회적 가축화(社會的家畜化)"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개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규모는 훨씬 높아졌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균일한 보통교육을 받고, 동일한 매스미디어를 접하고, 보복적 자기구제를 억제하고, 촘촘한 사회적 맥락과 규범을 존중하며 살아간다. 이는 균일한 '국민'을 형성하여 국민국가 형성을 강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이 국민 국가를 넘어서 적응하고 생존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을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겔너(Ernest Gellner)는 근대인을 '온실 속의 식물', '어항속에 물고기'로 비유한 바 있다. 

산업화가 고도화하고 문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위와 같은 경향은 강화된다. 1980년대보다 지금 한국인이 훨씬 온화하고 비폭력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면, 1980년에 학교에선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의 폭력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1980년 군대와 지금 군대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와 산업이 고도화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가축화"는 심화한다. 가축은 보호받는 영역 내에서 놀라운 생산성을 보인다. 그러나 야생에서의 생존성은 극히 떨어진다. 야생동물에 비해 현실 인식 능력이 떨어지고 수동적이다. 야생에 위험이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의지도 부족하다. 이게 강아지가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소가 도살장까지 크게 저항하지 않고 끌려가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 가축화가 심한 나라는 냉혹한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을 훨씬 낭만적으로 본다. 


서구 유럽 주요 국가를 보라. 동화되지 않는 대규모 난민 문제로 사회 기초가 흔들리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내 이슬람 인구는 8%에 육박한다. 2050년까지 주요 서구 국가의 이슬람  비율이 25-4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과 법치, 기타 서구적 가치로 이들을 동화하거나 최소한 평화로운 공존을 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하고 낭만적인 생각에 별다른 정책을 쓸 수도 없다. 만약 난민 유입을 제한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보존하자는 소리만 해도 극우 프레임이 씌워진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동화되지 않는 대규모 인구 유입 후 국가의 존립을 유지한 예가 없다. 

이런 나라 국민은 누군가 자신의 안전 뿐 아니라 생활도 보호해주는 것에 익숙하다. 즉, 국가의 사회보장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 막대한 재원이 어디서 오는지 관심이 없다. 그 재원은 미래에 누군가 갚아야 하는 부채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국가 부채의 탕감에서 온다. 아니면 기업과 진취적인 인간에 대한 세금 징수에서 나온다. 즉, 폰지사기와 갈취에서 온다. 구조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야성을 가진 인간, 혹은 독립심이 강한 인간은 이물질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은 체계적으로 무력한 어린아이가 된다. 무력한 어린아이가 투표로 뽑은 지도자는 엄격한 아버지가 아니라 잘 놀아주는 삼촌이다. 이런 정부는 사실상 어떤 장기적 전략을 추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이게 심해지면 도시에 돌아다니는 쥐와 빈대에 대한 방역조차 하지 못한다. 이게 지금의 대부분 서구 국가의 현실이다. 

이렇게 가축화된 서구사회가 지금까지 생존한 이유는 그나마 덜 가축화된, 사나운 목양견(Herding dog) 같은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이다. 양을 지키던 개의 힘이 약해지자 서구가 여기저기서 야생동물의 공격받고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과 일본도 이질적이지만 서구의 일원이다.


이 맥락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을 보자. 이 전쟁의 본질은 그나마 가축화된 이스라엘이 야생성이 살아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이런 단순한 해석을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는 극도로 단순화하고 추상화했을 때 더 명확히 보이기 마련이다. 

가축과 야생을 나누는 가장 큰 속성은 '생존을 위한 투쟁 본능'이다. 생존을 다른 가치보다 최우선으로 놓는 것이 야생성이다.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은 가장 덜 가축화된 서구 국가다. 그럼에도 이번에 무력하게 공격당했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 나온다. 서구 국가, 최소한 그들의 언론과 상당수 국민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이다. 양 무리 바깥쪽에서 어떤 양이 늑대에게 공격받았는데 양들이 늑대 편을 드는 것과 유사하다. 자기가 양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덕적 공정성과 사건의 복잡성을 내세워 이를 비판하기 전에 다시 한번 본질을 보기 바란다. 하마스는 힘만 있다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구의 어떤 나라도 파괴해 버릴 것이다. 서구인뿐 아니라 그들의 가치와 문화, 역사 모든 것을 파괴하는데 어떤 죄책감도 느끼 않을 것이다. 이게 산업화-문명화 수준이 낮은 사회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신념이다. 이 세상에는 인권, 세속주의, 법치, 다양성, 기타 서구의 근대화 이데올로기 따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가축화한 서구사회는 다양한 방면에서 공격받고 있다. 

  1. 이슬람 축: 이란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의 부흥, 난민과 높은 출산율로 인한 서구 국가 내의 이슬람 인구 증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
  2. 러시아 축: 러시아, 벨라루스와 같은 국가주의적 준(準)서구 국가
  3. 중국 축: 중국식 국가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 

위의 세력은 모두 이질적이고, 심지어 서로 적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존'을 다른 가치보다 우위에 둔다는 점이다. 강철 새장에 갇힌 모든 나라들, 제한된 자원을 두고 투쟁해야 하는 나라들에, 냉혹하지만 더 현실적인 관점인 것은 분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때는 생존보다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끝나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걸 빨리 알아채는 양이 가장 잘 살아남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이스라엘-하마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번 분쟁으로 이스라엘-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힘이 줄어드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럽, 그리고 우리의 생존에도 큰 문제로 돌아온다. 이 문제를 도덕적 감상에 젖어 팔레스타인인의 고통과 이스라엘의 불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 진정성과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고, 자신의 생존이 완전히 보장되어 있다는 가축적 착각에 기인한 것이다. 이 착각이 서구의 몰락을 급속히 촉진할 것이다.

양이 다른 양이 공격받는 것을 보고 "늑대가 얼마나 배고프면 저러겠어.. 저 양만 잡아먹으면 저 늑대도 순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다음번 사냥감이다. 우리를 노리는 늑대는 궁핍하고 광신적인 북한,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다. 목양견 노릇을 하던 미국이 정신 못 차릴수록 서구로 묶여있는 나라들의 생존은 위협받는다.


한국 입장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꼬리 내리거나, 이스라엘-미국이 헤즈볼라-이란을 억제하거나 무력화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느니 차라리 미국이 이란을 파쇄공격 하여 파괴하거나,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하여 이란을 포함해 적대 세력을 무력화하는 게 낮다. 도덕적 정당성을 떠나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미국이 이란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약하고, 이스라엘은 종이호랑이였고, 서구 국가들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도덕적 훈계나 하는 멍청이였다는 걸 세상이 다 알게 되었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


여기서 가축화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를 인간을 동물로 격하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련의 신체-정신-사회적 변화로 봐주길 바란다.

우리도 야생동물과 대치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주의와 북한이다. 북한과 우리는 정말 개와 늑대의 비유가 잘 맞는다. 공통 조상을 갖는 가축과 야생동물이다. 

위에 말했듯, 인간은 종의 탄생부터 "자기 가축화"와 연관 있다. 인간 문명의 비약적 발전은 "사회적 가축화"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여러 가치가 앞으로도 존중되고, 인류의 인식과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 우리와 미국, 서구 문명은 최소한의 야생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 야생성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생존과 안전이 다른 가치보다 앞선다는 것, 국가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현실적 인식에서 나온다.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 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핵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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