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coin Maximalist 입장에서 본 오늘의 세상 - 2026년 1월

 


  • 1년 전에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하고,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에 체포될 것이라고 말했다면 망상이라고 취급당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국제 정세는 통념과 상식,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한 시대의 종말이다.

  •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했던 작년 5월, 한 서평에서 나는 트럼프의 당선이 국제질서에 미칠 영향을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미국의 이른바 ‘세계 일등 지위(global primacy)’는 매우 위험하다. 가장 결정적 위험은 곧 닥쳐온다. 바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트럼프는 단순히 ‘체스’를 엉성하게 두는 인물이 아니다. 지정학적 전략으로서 ‘체스판’을 뒤집어엎어 버릴 사람이다. 그 결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맹과 연합의 정교한 체제에 의해 떠받쳐”지는 미국 패권은 단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머지않아 미국은 유라시아의 교두보로서 유럽과 극동 동맹국의 신뢰를 모두 잃을 것이다. 


  • 미국 패권의 기반과 정당성(?)은 이른바 "규칙 기반 세계질서"를 규율하는 동맹국의 의장 역할에서 나온다. 캐나다 총리 카니의 명연설에서 말했듯, 이 질서가 "부분적으로 허구"였더라도 말이다. 세계는 규칙 기반 세계질서라는 공공재에서 부분적으로 이익을 얻었다. 물론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미국이다. 트럼프는 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지금 그 질서의 파괴를 보고있다. 카니의 말대로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전환(Transition)이 아니라 단절(Rupture)"이다. 규칙 기반 세계질서는 지금 급속히 붕괴 중이다. 

  • 대서양동맹은 미국 패권의 척추다. 대서양동맹은 북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국가들의 문화, 사회, 제도의 유사성, 그리고 집단안보 체제로서의 NATO에 기반한다. 그린란드 사태는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파괴할 것이다. 단순히 안보 공동체로서 NATO의 붕괴뿐 아니라 공동의 이해관계 자체를 없애버릴 것이다. 유럽을 잃은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갇힌 지역 강대국일 뿐이다. 

  • 유라시아 대륙의 발판으로 아직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이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진 동아시아의 군사적 우위는 이미 사라졌다. 대만 문제를 상정한 미-중 군사 충돌 시나리오에서 미국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다는 예상은 이미 새로운 것도 아니다. 중국이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구축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 군사적 우위를 잃고, 동맹으로서 신뢰도 잃은 미국을 한국과 일본이 언제까지 존중할지는 확실치 않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과 서쪽의 기반을 모두 잃는다.

  • 이 모든 과정은 미국이 상식적으로 행동했다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악몽을 당장 현실화한 것은 트럼프의 독특한 인격과 세계관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객관적이고 추상화된 명제"를 이론이라고 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는 이런 이론에 기반해 행동한다. 하다못해 히틀러도 이론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동에는 이론이 없다. 트럼프는 자기 생각이 진실이고, 자기가 생각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악성 자기애에 휘둘리는 병든 인간 뿐이다. 

  • 국가의 정책 방향을 지도자의 정신적 결함에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에 한해서는 이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현재 미국의 국내외 정책의 특성은 트럼프 개인의 세계관에 기인한다. 물론 트럼프의 등장은 수십 년에 걸친 미국 민주주의의 퇴화 과정의 결과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 상실과 쇠퇴의 원인으로 트럼프만을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저 트럼프는 미국의 쇠퇴가 불러온 인물 중에 최악일 뿐이다. 더 나쁜 것은 트럼프의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았고, 그 이후의 미국 정치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이다.

  • 트럼프는 미국의 규칙 기반 세계질서가 사라진 다음에도 미국은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망상이다. 유럽과 한국-일본을 잃은 미국은 압도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 도움 없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할 능력도 없다. 그저 다극화된 세계에서 한 축을 형성할 수 있을 뿐이다.

  • 미국이 다극화된 세상에서 그저 강력한 국가중 하나로 퇴보할 때, 미국의 달러 패권도 지금과 같을 수 없다. 화폐도 필연적으로 다극화한다. 국제결제와 준비자산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달러를 포함한 모든 명목화폐는 지금 급속도로 가치를 잃고 있다. 베네수엘라 화폐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 전 세계 명목화폐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만 속도가 다소 느릴 뿐이다. 어느 시점에서 전 세계 모든 사람은 이를 모르는 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명목화폐는 필연적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 과도기적으로 금이나 기타 자원을 보증 자산으로 하는, 즉 보증 자산에 의해 발행량이 그나마 제한되는 화폐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화폐는 CBDC로 발행될 것이다. 이는 미국 국제결제 전산망에서 독립하고, 거래의 편의성과 비용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이미 브릭스 페이가 이런 과도기적 화폐의 전형적인 예다. 

  • 지금 화폐제도의 문제점은 기술적인 면이 아니다. 화폐의 발행이 발권자에 의해 남용되어 통화가치 하락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술적 불편함은 다음 문제다. 다음 화폐제도는 이 사실을 치유해야 한다. 즉, 발권자가 자의적으로 돈을 찍어낼 수 없는 것이 다음에 올 화폐에 요구되는 본질이 될 것이다. 

  • 위의 성질을 가진 화폐 한 종류가 달러를 대체하여 차세대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의 성질을 가진 다양한 화폐가 존재할 것이고 개인은 편의에 따라 화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나 국가집단이 발행하는 화폐 뿐 아니라 유력한 암호화폐, 금-은-자원에 기반한 화폐, 기타 채권의 성질을 갖는 토큰이 될 것이다. 이를 나는 화폐의 시장화라고 부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스마트폰, 혹은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단말기에서 다양한 화폐의 교환과 사용이 즉시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다. 

  • 위와 같은 세상이 오면 금-은-자원-기타 기초자산, 혹은 강력한 신용을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없는 약소국 통화는 사실상 없어진다. 당연히 각 국가가 가진 통화의 독립적인 통화 정책은 와해한다. 즉, 국가는 거시 경제를 조작할 목적으로 재정정책이나 통화 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 이는 영토 내에서 자국 통화의 사용을 강제함으로써 가능한 국가의 정치-경제적인 힘이 급속도로 약화된다는 뜻이다.

  • 근대 국민국가는 주권을 바탕으로 영토 내 거주하는 사람에게 공통의 문화와 규칙을 강요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한다. 즉, 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영토 내 다양한 계급, 다양한 소속감을 가진 집단을 균질화된 국민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엄청난 돈이다. 그 돈은 지금까지 국가가 독점했다. 국가가 돈을 독점하지 못하면 국민국가의 힘도 약화한다. 국가가 돈을 독점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의 개념도 앞으로는 변화한다는 뜻이다.

  • 국가 간의 경쟁이 첨예화하고, 국가가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는 마지막 남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지금 들으면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천천히 변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일이 평화롭게 온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질서가 평화롭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다음에 올 세계질서가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다른 패권국가로 바뀌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화폐가 시장화된 세상에서 어떤 국민국가도 세계질서를 새로 쓸 정도의 힘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국가적인 권력이 등장할 것이다.

  • 트럼프는 위에 예상한 변화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촉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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