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오스트리아학파가 현재의 불환 화폐를 보는 관점에 관해 썼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불환 화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끝날 운명입니다. 최종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기 전에 두 가지 시나리오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며 각 나라 사이에서 변동환율제와 고정환율제를 오가며 통화전쟁과 브레튼우즈 방식의 협력을 반복할 것이다.
- 주요 통화국 사이의 담합으로 IMF 특별인출권 방식의 국제 단일 기축통화가 나타난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보면 세계가 단일시장이 되고 뭔가 인류의 진보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불환 화폐의 최소한의 인플레이션 억제 장치 마저 사라지는 것입니다. 최소한 지금은 주변 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돈을 막 풀지 못하기라도 하지만 단일 기축통화가 나타나면 이제 주요 국가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에서 오는 이득은 발권국으로, 피해는 주변국으로 이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EU에서 보듯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것은 단일 정부를 전제하지 않고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EU의 불협화음을 볼 때, 세계 단일 기축통화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더 일어날법한 일인 듯 합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런 파국을 막을 방법이 '화폐의 시장화'의 회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전 처럼 특별한 시장성을 갖고 있는 상품이 자연스레 화폐로 인정될 것이며 아마도 금이나 은이 이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화폐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것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며 정부의 역할은 다른 경제 범죄를 처벌하듯 금 함량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을 제재하는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하이에크는 화폐는 '탈국가화(Denationalization)'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국가를 넘어서 가치가 인정되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금은 국가와 상관없이 가치를 지니고 반출만 가능하다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암호화폐에 호의적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오스트리아학파가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생각하는 화폐의 이상적인 특성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치저장, 교환, 분할 면에서 금보다 뛰어납니다.
금은 산업에 사용되고 장신구로 사용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용 면에서는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금을 재산으로 보유하려면 안전한 저장공간이 필요하고 소량으로 분할해서 사용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닙니다.
따라서 금보관증이 화폐 대용물로 사용되었고, 결국 정부가 금 보관과 유통을 독점하고, 그다음 금에게서 교묘하게 화폐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금의 가격은 금 거래의 증거금을 올리거나, 종이 금을 저가로 매도하는 방법으로 금 가격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운영과 소유, 교환에 정부가 개입할 요소가 금보다 훨씬 적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트코인은 정부의 화폐 통제에 저항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화폐로써 금이 가진 한계를 개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눈앞에 와 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가격의 상승은 피부로 느끼고 있으니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더 심각하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코로나가 일으킨 불황에도 말입니다.
코로나가 밀어 올린 세계 집값, 독일 7% 캐나다 6% 프랑스 5%↑
이게 최근 코로나 사태 때문에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긴 일일까요? 아닙니다. 코로나사태로 인한 돈 풀기와 상관 없이 몇 년간 지속해서 집값은 오르고 있습니다.
전 세계도 '미친 집값'…세계주택가격지수 역대 최고이제는 모든 식량부터 금속까지 모든 원자재 가격이 미친듯이 오르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준은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인플레이션도 합당한 수준에서 용인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용인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올라가면 말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금리 이외에 양적완화 수단을 먼저 조이기 시작할 겁니다.
내년에 시장이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재정정책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년은 인플레이션의 거품이 꺼지는 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다음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쓸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번 돈 풀기는 중앙은행을 뛰어넘어 정부가 주도할것이 확실합니다. 재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당면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불태환 화폐 통제에 직접 나서는 것이 하이퍼인플레이션 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아시나 지폐, 미국 남북전쟁기의 그린백 지폐 가 그런 파국을 맞았습니다. 이미 정부가 직접 돈을 무한히 풀어도 된다는 황당한 주장이 MMT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습니다. 다음 경제공황에서 주요국 정부는 중앙은행을 뛰어넘어 막대한 재정정책을 쓸 것입니다. 2007년 리먼사태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연습해 본 때였다면 지금은 본격적으로 정부에 의한 무제한 돈 풀기를 연습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현재 불환 화폐 시스템의 변화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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