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비트코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암호화폐로 바꿔 읽어도 상관없다. 비트코인을 만든 것은 명목화폐라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타락한 화폐다. 타락한 화폐는 휴지조각이 되는 것 외에 다른 말로가 없었다.
비트코인은 타락한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되기 전에 자신의 자산을 지키려는 필사적 노력으로 탄생하고 발전해 왔다. 만약 지금 세계가 중간상품으로 담보된 건전한 화폐에 기반하고 있었다면 기술로써 블록체인이 활용되는 것은 논외로 하고 화폐로서 비트코인은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화폐는 정부가 강제한 교환수단이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시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중간상품이다. '지구가 둥글다' 수준의 당연한 명제이지만 수십년간의 세뇌로 이를 대부분 사람이 이를 이해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언론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중간상품이라는 본질을 벗어나서 살아남은 화폐는 역사상 없었다. 어떤 것이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중간상품의 소유권을 표방하는 징표이거나(예를 들면 금 태환 지폐), 중간상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상품, 즉 사람들이 갖길 원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희귀하고, 함부로 만들어낼 수 없어야 한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중간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분할, 교환 및 소지가 간편하고 변질되지 않아서 다른 상품과의 교환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비트코인은 본연의 가치가 없는 데이터 쪼가리이기 때문에 화폐가 될 수 없다'라는 바보 같은 소리를 10년째 듣고 있다. 그 데이터 쪼가리를 많은 사람이 가치 저장수단으로 원했다. 분할, 교환, 소지하기 너무 간편하면서도 희귀하고, 함부로 만들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중간상품이 된 것이다. 애초에 화폐의 대명사인 금도 일부 산업 수요만 제외하면 반짝여서 예쁘다는 것 외에 '본질적인' 가치는 없다.
비트코인은 점점 중간상품이자 화폐의 지위를 굳혀가고 있다. 비트코인은 앞으로 명목화폐가 알고 보니 화폐 타락 현상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폭로될 때마다 강력해질 것이다. 이 사실이 지금 조금씩 폭로되고 있다. 이런 진실을 가장 확실하게 폭로할 것은 바로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다.
40년 만에 찾아온 악성 인플레이션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듯,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다.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인플레이션이 호경기와 불경기 사이클에서 디플레이션과 번갈아 나타나는 경기 순환현상으로 봐선 안된다는 말이다. 경기가 순환한다면 어째서 짜장면과 과자 값은 30년에 비해 10배, 강남 집값은 20배가 되었는가? 물가가 올랐다 떨어졌다 하며 평균 가격을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이렇다. 국가가 시장규모보다 훨씬 많은 화폐를 발행해서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생긴 것이다. 그 결과는 한가지다. 국민 모두에게서 몰래 세금을 걷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비겁한 징세다. 이 현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지라도 이 본질을 부인하는 진지한 경제학자는 한명도 없다.
나는 틀림 없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일어난다고 이야기해왔다. 이미 2년 전부터 인플레이션의 징후는 뚜렷했다. 근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돈을 풀다 못해 재정정책으로 직접 국민에게 돈을 직접 나눠줬는데 돈의 가치가 유지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으며 일본식 장기 디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최근까지도 수두룩했다. 나이가 50이 안된 사람은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본 적이 없거나 기억이 없다. 본적이 없으니 인플레이션이 진짜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무서운지도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연준도 작년까지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했으니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연준은 금리를 올리고 양적완화도 줄여가고 있다. 올해만 6번의 금리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이다. 원래는 2024년에서야 한번쯤 금리를 올릴 계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 심각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맞을 것이고, 심각하지 않더라도 달러의 위상은 크게 흔들린다.
그나마 명목화폐의 잔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지금 연준이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폴 볼커가 했던 대로 물가와 경기부양 두마리 토끼 중 물가라는 토끼만 잡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1970대 후반과 상황이 달라졌다. 수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며 연준의 독립성은 약해졌고, 정책수단은 고갈되었고, 경제의 기초체력은 훨씬 더 약해졌다.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볼커가 했던 독립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실행할 공간이 줄어들었다. 볼커가 했던 것처럼 기준금리를 15%까지 올릴 여지는 없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멀지 않은 시기에 파국적인 경기침체를 맞이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불붙인 화폐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가뜩이나 분열된 국제분업체제를 완전히 단절할 태세다. 경제가 단절되면 화폐의 사용도 단절된다. 미국은 러시아를 달러 결제체제에서 고립시키려 하고, 러시아는 달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유럽은 국제적 결제수단으로서의 달러의 신뢰성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가할 자해행위를 했다. 바로 러시아의 보유 외환을 일방적으로 동결한 것이다.
만약 어떤 은행이 특정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예금 지급을 거부한다면, 즉 채무의 이행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할 것이다. 이걸 미국과 유럽이 했다. 이제 서구와 관계가 불편한 나라는 달러나 유로를 서구권 은행에 예치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우선 중국이 그럴 것이고, 그 외에도 중동국가를 포함해 상당수 제삼세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나라가 급하게 다음 세 가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 달러와 유로를 서구권 은행에서 인출하여 자국 은행에 예치한다.
- 보유 외환을 다각화한다.
- 달러와 유로 이외에 결제수단으로 금 실물을 자국 은행에 보관한다.
위안화도 대체 통화로 영향력을 키울 수는 있어도 근시일 내에 국제결제수단 지위를 얻을 수는 없다. 중국에 개방된 위안화 외환시장도 없고, 부채를 감수하고 위안화를 세계에 공급할만한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당분간은 국제결제수단으로써 금의 귀환을 보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자국 통화가치를 금과 연동하려는 신금본위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러시아는 달러와 유로를 공격하기 위해 5,000루블을 1g에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 6월까지 한정적으로 시도하는 것이지만 효과가 있으면 이를 연장할 것이다. 러시아는 비우호국이 자원을 구매할 때 루블화로 결제해야 한다고 선언했으므로, 러시아의 에너지와 식량을 구매하려면 금으로 사거나, 금 가치와 연동된 루블화로 사야 한다.
만약 러시아의 시도가 먹힌다면, 제삼세계에서 루블은 매력적인 비축통화로 비칠 것이고 여러 나라가 에너지와 식량을 사기 위해, 또 보유 외환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로 루블화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루블화는 이미 이전 환율을 회복했다. 나라가 부도 등급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러시아가 대체 불가능한 자원 수출국이라는 점과 막대한 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 달러와 유로의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먹히고 있다는 반증이다. 러시아의 최근 결정 중 가장 교묘하고 현명한 처사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결과와는 별도로, 서방과 러시아의 화폐 전쟁은 러시아가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와 식량은 서방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나라가 많다. 즉, 실물 가치가 있다. 러시아는 실물 가치가 있는 자원을 실물 금에 고정된 돈으로 사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반면 서구 화폐는 실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재멋대로 찍어내다 못해서 아예 자기 마음대로 동결까지 한다. 여러분이 서구와 관계가 불편한, 혹은 불편해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중국이나 중동의 어느 나라라면 어떤 돈을 갖고 싶겠는가? 아니, 지금 당장 당신의 금고에 어떤 돈을 갖고 싶은가?
물론 러시아가 언제까지 루블과 금의 고정을 유지할 능력과 생각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의 시도는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바로 신뢰할 수 있는 금 본위제 화폐가 나타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파장이다.
이미 현재 달러 기반 명목화폐 시스템은 너무나도 취약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외환보유고의 절반을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 상당수를 국제결제망에서 퇴출하고, 자국 신용평가사를 동원해 러시아 신용을 바닥으로 깔아놓고, 강력한 무역제재를 시행하고서도 러시아 루블화 가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루블화로 실제 가치가 있는 에너지와 식량을 살 수 있다는 이유, 그리고 루블화를 금 가치에 고정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단 명목화폐라는 허구가 폭로되는 동안에, 금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명목화폐가 아니면서도 준비자산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화폐가 금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후, 최종적으로 화폐가 지녀야할 모든 장점을 갖춘 비트코인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나타날 것이다.
내 예상으로 3년 내에 모든 명목화폐의 심각한 타락이 일어날 것이고 과도기적인 화폐 혼란을 거쳐 10년 안에 화폐의 시장화와 암호화폐의 번영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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