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는 손꼽을 만한 소규모 분쟁을 제외하고 70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다. 이 평화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힘의 균형, 냉전 종식 후에는 미국의 단일패권에 의존했다. 냉전 중뿐 아니라 팍스 아메리카나의 가장 혜택을 받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한미동맹이 주는 안보뿐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경제질서에서도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이런 평화가 지속되는 동안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외부의 힘은 경제였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향방, 수출과 GDP, 경제 동향, 내 직업의 안정성과 급여 같은 것이다. 공습이나 해상봉쇄, 배급제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미래의 계획을 짜는 일은 없었다. 내 생각에 이런 평화의 시기는 저물어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지을 키워드는 미국의 쇠퇴, 핵무기의 확산, 그리고 혼란스럽고 다극화한 세상이다. 이런 변화에 결정적 사건이 될 것이 중국의 대만 침공일 것이라 예상한다.
나는 미국이 초강대국임을 모두에게 보여준 1991년 이라크침공을 목격하였다. 기술과 군사력, 동맹과 같은 소프트파워까지, 당시의 위세로 보면 미국의 패권은 최소 100년은 갈 것처럼 보였다. 코딱지만 한 네덜란드의 패권도 100년은 갔는데 규모가 다른 미국이 다를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미국의 쇠퇴는 너무 빨리 다가왔다.
첫째, 쇠퇴의 가장 명시적 모습은 생산력의 감소이다. 미국 싱크탱크가 인정하듯(CSIS: 전시 환경에서 텅 빈 무기고), 미국 군수산업은 현재 안보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 세계화의 여파로 주요 생산시설은 거의 사라졌다. 당연히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와 같은 핵심 생산시설의 경쟁력은 예전에 사라졌다. 최근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다시 건설하려 하고 있어 우려와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의 GDP의 68%는 서비스에서 나온다. 3차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 국가를 물리적으로 강하게 하는 것은 서비스업이 아니다. 중국 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율을 54% 정도이므로 실제 산업생산력에 기반한 국력은 이미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둘째, 국민이 정치적으로 단절되고, 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공교육의 수준 저하는 미국 자신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나마 고등학교 이수율도 제3세계 수준이다. 대학도 우수한 이공계 인력과 사회지도층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고등교육기관 유학생 비율은 12%도 되지 않지만 STEM(과학, 공학. 기술, 수학 분야)의 석박사 학위 취득자의 절반이 유학생이다. 실제 미국인은 이공계 분야가 아닌 인문-사회 분야에서 대학 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으며 교육의 질과 편향성 등의 문제로 대학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절반이 넘고 있다. 대학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하고 균형감각 있는 리더를 길러내는 곳이라면, 미국의 교육 수준은 퇴보하고 있다. 내 눈에는 미국 국민의 지적-도덕적 수준이 저하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
셋째, 국민 간 정치적 단절과 국민 자체의 절적 저하의 필연적 결과로 리더십이 무능력해지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아래서 미국 정치는 더욱 파편화하고 있다. 외국과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외교라고 했을 때, 근 6-7년간의 미국 외교는 참사와 지리멸렬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 세계 모든 곳에 이해관계가 있는 패권국의 외교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논지에 벗어난다. 하지만 그 결과로 쓸데없이 적을 만들었고, 동맹을 실망시켰고, 스스로의 평판을 깎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패권을 파괴할 감당할 수 없는 분쟁에 휘말렸다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냥 서곡일 뿐이다.
그래서 중국이 대만을 가까운 시일 내에 침공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꽤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4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 1, 2, 3 물론 예전과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에서 중국이 군사적-정치적으로 패배할 것이라고 봤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중국이 군사적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상당한 정치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사이 중국 군사력이 비약적 발전했고, 지정학적 환경이 중국에 매우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1, 2022년 단 2년 동안 군함 28만 톤을 취역시켰다. 단 2년간 취역한 군함 건조량이 한국 해군이 가진 모든 군함(약 26만 톤)을 합친 것보다 크다. 2019년에 취역한 15만 톤을 합치면 최근 3년간 전력화한 중국의 군함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모든 군함 톤수에 맞먹는다. 당연히 모두 최신의 방공구축함, 핵잠수함, 강습상륙함 등이다. 이전에 취역한 군함까지 합치면 태평양 서부에는 이미 최신예 중국의 군함으로 득실득실하다.
군함의 숫자로는 중국은 2021년에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 선박 건조 능력으로 볼 때,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운용 노하우와 검증된 성능에서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미국도 양적 격차를 질적 우위로 극복하겠다는 계획인듯 하다. 그러나 미국 해군전쟁대학의 교수가 말하듯, 해군력 우위의 결정적 요소는 질보다 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해군의 질이 중국보다 압도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며 그 차이가 있더라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모든 군사 역량을 대만해협에 투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군사력은 전 세계와 본토에 흩어져 있다.
첨단 타격 능력의 정수인 미시일 기술을 보자. 중국이 첨단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에서 미국보다 앞섰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미국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하는 초음속 미사일 기술은 단순히 전략 둥펑 시리즈처럼 ICBM 전략핵무기 용이 아니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초음속 대함미사일까지 실전 배치해 놓고 있다. 즉 중국 근해에 접근하는 미국의 군사자산은 중국의 위협적인 해군 뿐 아니라 요격하기 난감한 다양한 미사일에도 위협을 받는다.
다시 정리해 보자. 중국 해군의 양적 규모는 미국,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규모를 압도한다. 게다가 전장은 머나먼 태평양 공해상의 어딘가가 아니라 중국 해안에 가까운 대만해협 부근이다. 따라서 중국은 해군뿐 아니라 지상에서 발사하는 다양한 거부 수단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거부 수단은 사실상 미국이 요격하기도 힘든 초음속미사일도 포함된다. 즉, 미국은 열세인 군사력으로 적의 홈그라운드까지 가서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간신히 중국의 군사적 목적인 대만 병합을 저지했다고 해도 미국이 예전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가능성은 없다. 수천 명의 미국인이 죽고, 막대한 장비가 파괴되는 것이 방송에 나오는것 만으로도 미국의 패권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중국은 이번에 대만 합병에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군사력을 건설하여 도전해 올 것이 명확하다. 미국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은 '피로스의 승리'일 뿐이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는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재래식 무기로 파괴하거나 결정적 패배를 안겨줄 수는 없어도 대만해협 부근에서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능력은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최근 대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중국이 대만 침공에 앞서 북한을 사주하여 한반도에서 군사도발을 하도록 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늘었다. 대표적으로 이 철이라는 중국 전문가와 조선일보 주필 등이 있다. 이런 예상을 근거로 각각 전자는 만약 이런 도발의 조짐이 있다면 한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결론, 후자는 중국은 이미 적이기 때문에 미국을 따르는 것 외에 독자적 외교 전략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위 주장의 전제로, 중국이 북한에 정권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매수할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 대체로 위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염두에 두는듯 하다. 이는 북한 정권의 최우선 목표를 망각한 뇌내망상이다.
북한은 자기 정권의 보존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북한 이미지가 광기에 찬 무법자인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목적 추구에는 대단히 일관성 있고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북한은 이미 사라졌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과 미사일 방어를 무력화하는 투발 수단을 다양하게 만들어 낸 이유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으로 압력으로부터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남의 전쟁을 위해 전위대를 자처할 이유가 뭔가? 대만 침공이 임박했다면 이미 동북아에 미국의 군사자산이 잔뜩 집결해 있을 것이고, 한미일의 군사적 긴장이 팽팽할 텐데 북한이 거기에서 불장난을한다고?
북한이 적당한 군사적 도발을 통해 주한미군만 한반도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깐마늘처럼 필요한 만큼 적당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철로 된 주사위'를 돌리는 것이다. 1이 나올지 6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신경이 곤두선 한-미-일이 북한의 도발을 전면적 공격, 혹은 핵 공격의 신호로 받아들여서 전면적인 공습이나, 선제 핵 공격을 가한다면? 북한이 바보라서 이걸 모를까? 북한은 생존과 기회포착에 관하여서는 전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하리라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현실에 대한 유치한 이해의 산물이다.
혹시 중국이 북한에 모종의 안보이익을 약속하지는 않을까? 핵무기와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가진 나라에 더 제공할 안보 이익은 없다. 우리가 수십 발의 소형 핵탄두가 있고, ICBM을 비롯해 추적과 요격이 불가능한 다양한 핵 투발 수단이 있다면 미국이 우리에게 보장할 수 있는 안보가 뭔가? 똑같다. 북한은 현재 미국으로부터 위협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을 뿐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진 것이다.
북한은 대만 문제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중국이 미국에 타격을 줘 태평양에서 몰아낸다면 북한은 훨씬 안전해진다. 중국이 미국에 패배를 안기지 못한다고 해도 상당한 타격을 줄 테니 미국의 군사적 관심은 북한에서 멀어진다. 한마디로 누가 이겨도 북한은 승자가 된다. 그리고 그 균열점에서 외교적 승부수를 던질 공간도 생긴다. 중국이 패배한다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의 군사력을 재건해 줄 동기가 생긴다. 미국이 패배한다면 북한과 중국을 이간하거나, 최소한 동북아에 적을 줄이기 위해 북한과 전향적인 협상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한이 자신의 운명에 관하여 필부도 할 수 있는 이런 뻔한 계산도 못 하고 돈 받고 중국을 위해 전장에 나설 것이라고?
비상시에 북한은 쥐죽은듯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섣불리 한국과 미국이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대만 문제에서 우리가 직면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아니다. 중국이 한반도의 미군기지가 공격하느냐는 것이다. 중국 공격의 거점으로 사용될 일본 내 여러 기지는 공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국은 공격받을 수도 있고, 공격받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안보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차이에 의해 우리의 수십년 간의 번영과 안보가 결정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방위 지역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위 조약에 따르면 "한-미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에 관하여 발동된다. 해석에 따르면 북한이 우리를 침공한다면(한국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 적용되지만, 이후 우리가 북진을 할 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위 조약에 따라 제공된 것이 주한 미군기지이다. 대만해협에서의 갈등을 뭐라고 부르던, 이는 미국이나 우리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곳이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최근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는 주한미군을 유연하게 다른 지역에 배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 영토를 유용한 출격 거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한국의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이 없는데도 주한미군 기지에서 출격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우리의 영토와 안보를 침해하는 것은 분명한 조약위반이다.
이런 점이 조약에 명확하므로 유사시 한국에 주둔하는 전력, 특히 공군과 해군 전력은 일본으로 기지를 옮겨 작전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 방어에 복무해야 할 미군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지만 이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 만약 이것도 선제적으로 파괴하겠다고 중국이 미군 기지를 공격한다면,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 대만 전쟁에 우리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다.
대만 분쟁시 주한미군을 일본이나 기타 미국의 거점으로 차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중국도 미군 전력을 사전에 파괴하겠다고 주한미군기지를 선제적으로 공격해서는 안된다.
내 생각에 중국도 주한 미군기지를 선제적으로 타격하지는 않는다. 사소한 전술적 이익을 얻겠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에 따라 주한미군이 직접 중국을 타격할 수 있는 근거와 한국의 참전을 불러올 명분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 미군이 주한 미군기지에서 직접 중국을 타격하지만 않는다면... 이 지점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선이다.
지정학적 미래로 지목한 미국의 쇠퇴, 핵무기의 확산, 그리고 혼란스럽고 다극화한 세상 중 뒤의 두 개는 아직 다루지도 못했다. 다음 글에서 핵무기의 확산과 다극화한 세상에서 우리의 전략에 대해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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