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수렁이다. 이스라엘은 이 수렁에 빠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다. 최소한의 인명피해로, 국제 여론이 악화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는 길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중동에 전장의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있다. 안개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이스라엘은 빠르면 한 달 안에 가자지구를 강하게 공격해 하마스를 비롯한 극단적 반-이스라엘 무장 조직을 궤멸시키고 철수하고 싶을 것이다. 이게 평화로운 세계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안 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입김 아래 있다. 사실상 지휘를 받는다고 봐도 아주 잘못된 평가는 아니다. 헤즈볼라의 정치적-군사적 힘은 하마스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레바논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고,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도 사실상 자치를 하고 있다.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하마스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밀한 무기도 가지고 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이란은 이번 기회에 이스라엘과 걸프국가 사이를 갈라놓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좌절시켜야 할 강력한 동기가 있다. 헤즈볼라가 이번 분쟁에 확실하게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이란이 확전을 부담스러워할 때 뿐이다. 큰 비용 없이 이스라엘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이란이 확신하면 헤즈볼라는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에서 전면적으로 개입한다. 즉, 이번 전쟁에서 가장 확실한 변수는 이란의 태도다.
만약 헤즈볼라가 이번 분쟁에 개입한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량의 탄도탄과 로켓을 이스라엘을 향해 날리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다음 이스라엘 북쪽 국경에서 도발하겠지만 아무리 헤즈볼라라도 이스라엘의 정규군과 정규전에서 대등하게 싸울 가능성은 없다. 즉 헤즈볼라가 바라는 현실적인 목표는 탄도탄과 로켓을 이용한 공포의 조성이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레바논과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도 지상전을 할 수밖에 없다. 즉, 레바논과 시리아 영토 일부를 침공할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과 이란의 국제적 대리전 성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2. 9월 글에서 임박한 전쟁 위험으로 지목한 곳이 있다. 바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지역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전쟁은 일어났다.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아르메니아가 여기에 개입을 단념함으로써 이번 분쟁은 너무 싱겁게 끝나긴 했다. 세계 여론의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였다. 관심 없는 지역에 관심 없는 분쟁이라 여긴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내륙에 완전히 고립되어 국가 존립이 위험해졌다. 약소국의 설움이 이런 것이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영토 일부를 더 병합하려 할 것이다. 분단되어 역외 영토처럼 되어 있는 나흐츠반 지역을 본토와 직접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내 생각에 이도 멀지 않았다.
3. 2차 세계대전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관습적으로 부르고 있는 이 명칭은 사실 유럽에서 나치 독일과 벌인 유럽 전역, 1930년대 초기부터 단속적으로 계속되었던 중-일 전쟁 전역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미국의 참전에 의해 융합된 것이다. 즉, 다른 이유에서 발생한 다른 갈등이 하나로 결합하여 진정한 세계대전이 된 것이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잘못하면 중동에서 이란과의 대리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위에 말했듯,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은 머지않아 다시 싸울 운명이다. 아제르바이잔 뒤에는 터키와 이스라엘이 있다. 서방도 대체로 아제르바이잔 편이다. 아르메니아 뒤에는 러시아와 이란이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세 지역에서 세 전쟁이 발생한다면 대단히 명확하게 편이 나뉜다. 러시아-이란 축과 미국-서방-이스라엘 축이다. 중국은 아마 전자 측에 우호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이익을 볼 것이다. 축을 따라 반-서방 국가가 정렬하고 있다. 대단히 불길해 보이는 양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미국이 기울면서 일어난 일이다.
4. 이제 암호화폐 이야기를 해 보자. 현 상황을 정리하자면 친서방-반서방 국가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잠재해 있던 다른 지역 분쟁의 불씨가 합쳐져 큰 불길이 일어날 위험에 처해있다.
우리를 포함해 전 세계의 글로벌 공급망이 분단되고 각국이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각지의 분쟁이 에너지와 자원, 상품의 수급을 불시에 막을 수 있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주요국, 특히 미국은 생존을 위해 막대한 군비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화폐 타락의 마지막 단계이자, 역사상 수없이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날 태세다.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거나 전쟁을 대비하는 와중에 화폐 가치를 지킨 예가 없다. 귀금속 화폐라면 귀금속의 함량을 줄였다. 신용을 최대한 끌어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다. 화폐 가치는 신속하게 타락한다. 결국 이전 화폐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화폐를 도입할 때, 기존 화폐 가치는 zero가 된다.
내 생각이 이런 일이 언제 본격화하고,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발동은 이미 걸린 듯 하다.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전 세계의 분쟁이 표면화하는 지금, 반-서방 국가들이 하나의 대오로 정렬하는 듯한 지금, 명목화폐의 타락은 막을 수 없다.
물론 명목화폐, 특히 달러의 가치가 일관성 있게 낮아진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지정학적 이유로 원유 가격이 뛰고 경기가 위축되고,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경제공황이 온다고 치자. 이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명목화폐 가치하락은 진정되고 달러는 오히려 다른 화폐 대비 강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다. 경기를 살리거나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처지가 되는 나라가 이곳저곳에서 나올 것이다. 이제 정말로 명목화폐로 가치를 저장하겠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명목화폐의 가치하락을 벗어나는 길은 환금성 있는 상품이나 다른 화폐로 교환해 놓는 길뿐이다. 환금성 있는 상품은 다양하다. 금-은, 부동산, 미술품, 기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상품 등이다. 한국 상황에서 부동산이나 미술품은 추천하기 힘들다. 부동산은 거품이 잔뜩 껴있고, 미술품은 워낙 불투명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도 추천하기 힘들다. 이 시장의 변화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금-은과 같은 귀금속 외에 딱히 추천할 만한 상품이 없다.
전 세계가 명목화폐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명목화폐를 명목화폐로 바꿔 놓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달러나 엔, 스위스 프랑 같은 통화가 훨씬 천천히 타락하겠지만 결국 가라앉는 다른 배로 갈아타는 것 외에 의미는 없다.
암호화폐의 본격적인 상용화는 이 시점쯤 되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5. 대부분 현 경제를 보는 경향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금리 인상, 지정학적 대외변수, 등의 이유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정도다.
내 생각에, 이번에 오는 경제위기는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실업자가 늘어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전의 경제위기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다음 위기는 명목화폐-중앙은행-정부 재정(財政)-달러 기반 국제결제 시스템, 등 현 경제질서의 기반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훼손될 것이다.
여러 번 말했듯, 명목화폐 제도는 화폐 타락에 예쁜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지금까지 버틴 게 오히려 예외적이다. 여기에 기반한 달러 기반 국제결제 시스템과 함께, 이 두 기둥을 버티고 있던 것은 미국의 패권이었다. 지금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고 있다.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고, 정부는 재정을 집행하여 경제를 조절하고 성장시킨다는 케인즈식 해법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이 이론은 이자율을 시장에서의 화폐가치 평가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마구 휘두를 수 있는 도구로 본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계획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빚에 허덕이고, 과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만연한 지금의 참상은 그 결과다. 지금 이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정책의 근본적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둘 다 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 돈을 쓰는 것은 미국이 강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스위스 프랑처럼 엄격한 통화정책을 써서도 아니고, 딱히 미국이 믿을만해서도 아니다. 미국의 힘과 통화정책의 원칙이 의심받는 시점에서 이 시스템의 약화는 필연적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신호가 나오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압력이 한 번에 터지는 순간이 다음번 경제 위기다. 예전에 나는 이 위기가 특정 국가의 자산 가격 붕괴로 촉발될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이 위기가 더 거대한 지정학적 충돌로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난 이걸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낡았다. 낡은 시스템은 사라져야 한다. 증기기관을 고쳐 컴퓨터를 만들 수 없다. 더 나은 시스템이 나올 때까지 혼란이 있겠지만, 인간의 인식이 더 확장되고, 기술이 더 발전하여 어느 순간 산업혁명을 능가하는 도약을 이루려면 지금 제도는 더 나은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아마 우리는 이번 생에 이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6. 앞으로 서구는 더 약화할 것이다. 미국은 국가가 분열되지 않는 한 정신 차리고 힘을 회복할 여력이 있고, 일본과 한국 정도도 쇠퇴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아마 예전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쇠퇴할 것이다. 이들은 동화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이질적인 이민자 집단 때문에 국민국가를 유지할 구심력을 유지할 수 없다. 숨 막히는 관료제는 악명이 높고, 새로운 산업 분야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있다. 더 안 좋은 것은 이들이 전략적 사고를 할 능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유럽인이 심각하게 "가축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축은 도축되기 전까지 세상을 안이하고 낭만적으로 본다. 밥은 제때 나오고, 세상은 평화롭다. 골치 아픈 문제는 울타리 밖의 일이다.
때문에 가축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다. 국가 경제는 물론 국민국가의 유지도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인권, 문화적 다양성 운운하는 것이 그 증거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언더독 도그마에서 한치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가축은 엄연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할 능력이 없다. 서구의 병맛짓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오히려 유럽의 힘을 조금이나마 유지하는 것은 서유럽이 아니라 동유럽일 것이다.
7. 중국은 근 20년 동안 가장 저평가 받은 국가다. 예를 들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던 라구람 라쟌은 10년 전 중국이 다시 국민소득 3,000불 정도의 가난한 나라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미래학자라고 주장하는 조지 프리드먼은 15년 전에 중국이 내부 모순으로 붕괴하고 일본이 다시 미국을 위험하게 할 정도의 초강대국이 된다고 했다.
이런 예가 아니더라도 주요 서구 국가의 리더는 대체로 중국의 산업, 기술, 국민의 응집력을 포함하여 중국이라는 나라의 전략적 사고력과 행동력을 낮춰봤다. 자기들이 전략적 사고를 못 하니 남도 못 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싱가포르, 대만, 한국, 일본,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동북아 국가는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 국가를 부흥시켰다. 비교적 유능한 임명직-선출직 공무원의 계획과 역동적인 시장의 힘이 만나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런 일은 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분명한 문화적-인종적 공통성이 있다. 요즘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말이지만 문화적-인종적 차이는 한 사회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다. 중국이 위의 나라를 따라 강력한 산업 국가가 됐다. 이 길을 따라서, 아마도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이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할 것이다. 어찌 보면 중국의 초강대국화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에 말한 동아시아 모델은 단점이 있다. 시장의 역동성과 탄력성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섣부른 정치가 경제에 치명적인 정책을 쓸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괴상한 규제가 많은 것, 시진핑이 상해를 정치적 이유로 봉쇄하다 나라가 거덜날 뻔한 것이 이런 예이다. 이른바 국가자본주의의 한계다. 미국이 건강한 상태에서 중국 모델과 경쟁한다면 아마 중국은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경제모델은 점점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국가가 막대한 재정을 집행하고,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 방벽을 쌓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모델로 미국은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말(馬)이 원숭이와 나무 타기로 경쟁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을 비롯해 서구의 힘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폭발력을 이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와 국민성이다. 앞으로 미국이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경제체제로 돌아간다면 예전의 힘과 영향력을 회복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주(州) 경계와 정치적 지형, 인종에 의한 분열과 대립으로 약화할 것이다.
8. 수십 년이 지난 새로운 세계에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기술, 자본이 이동할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직업을 얻고, 일본에서 은퇴를 즐기는 세상 말이다. 화폐는 다양하고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 정치적 힘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재산권과 자유를 누리는 개인에게 더 많이 넘어간다. 국가는 국민을 선동하여 전쟁터로 내몰 힘과 동기를 잃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유토피아라고 말하지 않겠다. 빈부격차와 지역 격차는 오히려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더 큰 자유를 누리고, 국민국가의 억압이 줄어드는 환경에서만 다시 한번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명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 조선시대 사람이 지금의 문명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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